그렇게 우리는, 나는 너를 잃아버리고 만 것이다.
너의 소식에 졸업한 선배들까지도 찾아왔지만 너는 이제 더이상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언제나 다정하던 스가와라상은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아마 그가 나와 너의 관계를 알았기 때문이겠지.
내 멱살을 잡고 죽일 듯 노려보던 스가와라상은, 다이치상이 그를 끌어내자, 이내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래, 너는 나로 인해 괴로워 할 때마다 스가와라상에게 상담을 하곤 했었다.
연인이라는 이름을 인정해 놓고, 너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던 나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하고 그의 질책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의 말에 무엇 하나 틀린 것이 없었으므로.
딱 한번, 너는 제왕과의 만남을 허락했다.
그 누구도 만나주지 않던 네가, 제왕의, 카케야마 토비오의 방문 만은 딱 한번 허락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병실의 밖에서, 못난 나는 질투심과 자괴감에 질척질척 절여져 갔다.
너를 믿어주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결과이기에 나는 누구의 탓도 하지 못하고 나 자신을 저주할 따름이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카게야마는, 완전히 무너저 내린 얼굴로 너의 병실에 들어갔다.
백년 같았던 10분이 지난 후, 그는 발간 눈을 벅벅 문대며 나왔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결연한 표정이었다.
그는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나를 보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휙 던젔다.
그것은, 네가 나에게 주었던, 내가 너에게 던졌던 시계였다.
손 안에 들어온 물건을 인식하고는 정말로 내 발이 디디고 있는 지면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는 듯 해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보고 버려달라는 데. 넌 이게 뭔지 알지?"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제왕은, 카게야마는 그 자리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깨져버린 시계 속에서, 떨어져 나온 시침이 덜그럭 거렸다.
유리조각이 손가락을 찔러 피가 나기 시작했지만 가슴의 통증이 너무나도 커서 손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이 더 컷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나는 매일 너의 병실을 찾았다.
한번도 들어가지 못했지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리지 않을 사과를 했다.
용서를 구할 자격도 없는 주제에, 나는 나를 잠식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쳤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렇게 구역질나는 놈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너는 더이상 병실에 없었다.
아니, 어디에도 없었다.
타케타 선생님은 네가 전학을 갔다고 말했다.
어디로 갔는지는 말 해주지 않았다고.
더이상 제왕은 화내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냥 묵묵히 연습만 했다.
선배들과 내가 재기불능이라면 후배들과 경기에 나갈 것이라고 했다.
카게야마 토비오와 1학년들로 이루어진 팀은 나날히 강해졌다.
망가져 버린 선배들을 비웃으며 연습에 몰두하는 카게야마에게 키요코상이 뭐라고 하자 그는 툭히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약속했습니다. 그녀석의 몫까지 하겠다고, 일본 최고가 되겠다고. 그렇게 약속했습니다.그러니 발목을 잡겠다면... 그냥 나가주시죠."
그렇게 말하고 녀석은 다시 연습에 집중했다.
결국 선배들은 다시 복귀하지 않았다.
나는 부를 그만 두었다.
그해, 카라스노 고교의 배구부는 전국에서 준우승을 했다.
오직 승리를 위해 달리는 천재는 누구도 막을 길 없이 빠르게 성장했다.
카게야마 토비오의 삶에서, 배구와 승리 이외의 즐거움이 모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후, 쿠로오상에게서도, 보쿠토상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이유를 묻는 그들에게 나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일에 대해서 나는 내 스스로의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할 용기가 없었다.
네코마의 세터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쇼요한테 무슨 짓을 했어?"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감히, 쇼요의 사랑은 받은 네가 감히..."
그에게서 듣기 힘든 격한 목소리였다.
고요하지만 분노로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의 잘못을 물었다.
이번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기 전에 작게 흐느끼는 듯한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배구도, 사랑도 잃은 나는 공부에 몰두했다.
머릿 속에 뭐라도 집어넣지 않으면 내가 너를 죽이는 악몽이 머리를 잠식했다.
나는 졸업후 도망치듯 미야기를 떠나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했다.
카게야마는 우시와카가 있는 팀에 스카웃 되었다.
너가 떠났듯이, 나도 떠나고 싶었다.
그리그 도쿄에 온지 2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너의 꿈을 꾼다.
처음에는 너와의 행복했던 추억이 펼쳐지다가, 이내 네 목을 조르는 나의 환상을 본다.
울며 발버둥 치던 너는 이내 실소를 짓더니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네 앞에 무릎꿇고 사과 할 수 있다면, 머리를 짓이기며, 너의 경멸을 한 껏 받으며 사과할 수 있다면.
용서 받지 못하더래도, 너에게 사과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너는 편린조차 남기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 오늘도 그저 악몽에 시달릴 뿐이다
(켄히나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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