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토비오. 무슨 일인데 형님들 다 있는데서 이렇게 끌고 와?"
4황자, 쇼요가 얼굴에 그려진 문양을 젖은 천으로 닦아내며 물었다.
"너, 아오바죠사이의 황자와 뭔가 했어?"
카게야마가 험악한 얼굴을 하고 물어왔다.
"에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난 오늘 그분을 처음 뵜다고?"
"전에는, 전에는 만난 적 없어?"
초조한게 묻는 카게야마에 쇼요는 의아함을 느꼈다.
"없다니까? 그보다, 뭐가 문젠데? 뭔가 느꼈어?"
"...아니, 내 착각일 거야."
"신관에게 거짓말은 가장 큰 금기야. 알지?"
카게야마는 낯빛이 어두워져서는 손톱을 씹기 시작했다.
"순간..."
망설이던 카게야마는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이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붉은 실을 봤어. 너와 그사람 사이에서."
"뭐...?"
"너도 신관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알겠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하지만 아오바죠사이의 태자는 천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했어. 하지만 내게는... 설마..."
"설마라니, 너 이름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아니... 왜, 나 등에, 날개뼈 쪽에 있는 그거... 혹시 이름인가?"
"뭐? 하지만 그런 글자 본 적도 없고, 모르는게 없으신 3황자께서도 뭔지 모르시는데..."
"생긴지 꽤 되었지만, 이게 뭔지 기도로 물어보아도, 기다리라는 응답 밖에는 받을 수 없었어. 만약 이것이 이름이라면... 나, 그분께 여쭈어 볼게."
"뭐? 너, 그사람이랑...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아는 거지? 만약 그 사람이 너와 이어져 있다면... 그는 곧 황제가 될 사람이야. 그러면 너는 타국의 황후가 되는 거라고."
카게야마가 쇼요의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왜 울 것 같은 표정 짓는 거야. 토비오, 만약 그게 하늘의 뜻이라면, 따라야 해. 넌 대신관이 될 사람이니까, 무슨 말 하는지 잘 알잖아."
"아니였음 좋겠어. 네가 떠나버리면, 나는... 나에겐 가족도 뭣도 없어. 너가 사라지면, 난 완전히 혼자야..."
쇼요의 어깨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카게야마. 아니, 토비오, 너 역시 나에게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너는 내가 첫번째로 사랑하는 이 나라를 수호하는 대신관이 될 사람이야. 내가 어디에 있든 나의 뿌리가 카라스노라는 것은 바뀌지 않아. 그렇다면 우리의 유대도 끊어지지 않는 거야."
"그렇게 말해 봐야, 전혀 위안이 안되는 걸..."
쇼요는 오랜 친구를 꼬옥 끌어안고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괜찮아, 넌 혼자가 아니니까..."
"내가 대신관이 될 사람이란 것이, 처음으로 싫어졌어. 신관이 아니라면, 널 따라갈 텐데."
"토비오... 어차피 나는 한달에 한번, 중추로 가서 우시지마님의 일을 돕잖아? 넌 아직 교육중이고. 그러면 한달에 한번은 만날 수 있을 거야."
4황자와 카게야마 모두, 확신의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본 것이라면 틀릴리가 없다는 것을.
반 확정된 것을 확인하는 것만 남은 것이다.
"그럼, 난 옷 갈아입으러 갈게. 그분의 처소에 가기로 했으니까."
"...아니길 기도하고 있을거야."
"갈게."
신관들이 현오궁을 나서는 쇼요를 배웅했다.
푸른 하늘이 눈부시게 빛이 났다.
...

"야치, 어떤 옷을 입을까."
쇼요의 말에 4황자의 일향궁의 궁녀, 야치 히토카가 이옷 저옷을 잔뜩 늘어 놓았다.
"저번에 2황자께서 주신 천으로 지은 옷은 어떨까요? 요즘은 날이 따뜻하니, 즐겨 입으시는 붉은 옷감보다 푸른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것도 예쁘다."
"황자님, 무언가 고민이 있으세요?"
야치는 보기 드문 4황자의 멍한 얼굴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 아니야. 그냥 좀..."
"야치, 야치는 내가 혼인을 하면 어떨 것 같아?"
"혼인이요? 누군가 맘에 드신 분이 계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흐음... 우리 황자님께서 혼인을... 그렇다면 제가 아기씨들도 완벽하게 돌봐야지요! 일향궁에 아이들이 있으면 활기가 더하겠네요!"
"벌써 아이를 생각하는 거야? 아니, 만약에 내가 혼인을 해서 멀리 떠나야 한다면 말이야."
"떠, 떠나다니요? 황자님께서 친왕이나 군왕이 되신다면, 출궁하여 사가에 머무르시는 게 당연하지만, 아직 폐하꼐서 살아계시고, 게다가 황자께선 현오궁의 일을 같이 하고 계시니 신관의 자격으로 궁에 계속 머무르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만약에 말이야."
"음... 그렇다면, 저도 데려가세요!"
"뭐?"
"전 어렸을 때 부터 황자님을 모셨으니, 애기씨도 제가 돌볼 거에요! 꼭입니다. 꼭!"
"나를 따라 너의 고향을 떠날 수 있어? 너는 궁녀이니, 내가 떠나도 계속 여기 머물 수 있어."
"그런 건 싫습니다. 약조해주세요. 황자님의 애기씨의 애기씨까지, 제가 돌볼 수 있게 하겠다고."
"야치... 그래, 약속할게. 고마워."
"그럼 이제 빨리 갈아 입으셔야죠. 아오바죠사이의 황자께서 기다리시니까요. 아, 귀걸이도 하시겠습니까?"
"으음... 아니, 케이 형님이 주신 파란 산호 팔찌 하나만 하고 갈래."
"그럼 그걸로 준비하겠습니다."
...

"4황자."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이카와의 처소로 온 4황자는 옅은 푸른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전의 너풀너풀한 붉은 옷과는 다른, 단정하고 깔끔한 느낌의 옷이었다.
"4황자는 푸른색도 무척이나 잘 어울리시는 군."
"형님과도 편히 이야기 하시니, 저에게도 편히 이야기 하세요. 저부터가 이미 궁중 법도를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편히 하셔도 됩니다."
"아, 그럼 그냥 쇼요라고 부를까."
"말도 편하게 하세요."
"그래, 일단 차를 좀 내오도록 할까."
오이카와는 쇼요를 처소 안쪽의 자리로 안내한 후, 차를 손수 따라 주었다.
"우리 나라에서 이맘때에만 잠깐 생산되는 차야. 마셔봐."
"향이 아주 좋네요."
오이카와는 두 손으로 차를 마시는 4황자를 바라 보았다.
하얀 얼굴, 커다란 눈, 작은 코와 붉은 입술.
어디하나 못난 부분이 없었다.
차를 마시면서 내려간 소매 사이로 푸른색의 팔찌가 보였다.
"예쁨 팔찌네. 산호?"
"아, 네. 케이 형님께서 주셨어요."
"헤에, 꽤나 귀한 물건으로 보이는 데..."
"서역에서 황가에 진상해 온 물건인데, 형님이 자기보단 저한테 더 어울릴 거라면서 주셨어요."
"정말로 사랑받고 있구나."
"이 옷도 둘째 형님이 주신 비단으로 지은 거에요. 아끼느라 잘 입지 않지만... 아오바죠사이에서 오신 손님을 만나려면, 푸른 옷이 더 나을 것 같아서요."
4황자가 살풋 웃으며 말했다.
맑고 반짝이는 사람이구나-하고 오이카와는 속으로 되내었다.
"그런데 황자님은, 이름을 받으셨다죠?"
"아아, 카라스노에 까지 소문이 났군."
"워낙 드문 일이 아닙니까. 저기 혹시... 괜찮으시다면 어떤 이름이 세겨져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름을?"
오이카와는 갑작스러운 물음에 조금 놀라며 말했다.
"네."
"안될 건 없지만..."
한눈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운명의 이름을 보인다니.
하지만 4황자는 꽤나 간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히나타. 히나타라는 이름이야."
오이카와는 나즈막히 말했다.
"그 이름이, 정말로 그 이름이 적혀 있습니까?"
그 이름이면 이젠 절대로 부인할 수 없다-라고 쇼요는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이름을 들은 후 매우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가 이제는 무언가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으로 변한 4황자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아는 이름이야?"
"야치, 궁인들을 모두 물려줘."
그는 야치에게 그리 이르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위분도 잠시 나가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는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아무리 4황자시더라도, 이분은 한 나라의 태자이십니다. 호위도 없이 단 둘이라니, 안될 소리십니다."
"그러면... 야치, 일단 너도 나가 있어."
"어째서... 네, 알겠습니다."
야치는 무엇인가 물으려다가 주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채고는 밖으로 나갔다.
지금 처소 안에는 오이카와와, 4황자 쇼요, 이와이즈미만이 남았다.
"지금 뭐하는 거야?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었던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일단 그냥... 일단 먼저 이걸 봐 주세요."
쇼요는 복잡하게 겹쳐진 옷들을 상체만 풀어 허리까지 옷을 내렸다.
푸른 옷이 골반에 겨우 걸쳐 하얀 몸을 드러냈다.
작은 체구지만 탄탄하게 잔근육이 밖힌, 군살 하나 없는 몸이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앞에 드러났다.
"이게 무슨... "
"잠시만 그냥 계세요."
그는 조심스럽게 오이카와에게 등을 돌렸다.
"이것을 봐 주세요."
"뭘, 보라는 거야?"
"날개뼈 위의..."
검은 날개가 새겨진 날개뼈의 위에, 글자라기엔 문양에 더 가까운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아오바죠사이의 고대어로군. 읽지는 못하지만."
이와이즈미가 말했다.
오이카와는 굉장히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이건..."
"오이카와, 읽을 수 있어?"
"이거, 내 이름... 내 이름은 고대 문서에서 따 온거야. 바로 이 글자에서.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알려 주셨지. 그래서 한동안은 내 이름을 고대어로 쓰고 다녔지."
"그러면... 4황자님이...!"
히나타가 조용히 옷을 추슬렀다.
"하지만 4황자의 성은 나츠노, 였잖아?"
"제게 이름을 보여주세요."
4황자의 말에 오이카와가 조심스레 왼쪽 손목을 내밀었다.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새겨진 이름 위를 쓰다듬었다.
"히나타, 이 이름은 신께서 저를 부르는 이름이에요. 신탁은 이 이름을 통해 내려오죠. 누구도 모르는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황자님은 확실히..."
오이카와는 말없이 그를 확 껴안았다.
"드디어 찾았다. 내 정인..."
4황자는 갑작스레 껴안겨 눈만 껌뻑거렸다.
시원한 풀향 같은 체취가 따스한 품속에서 피어올랐다.
쇼요는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만족감이, 편안함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저 닿아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감이 마구 피어올랐다.
조금 전까지는 혼자 남을 카게야마의 생각에 운명의 상대를 만날 거라는 기대감 보다는 불편함이 더 컸는데, 이제는 가슴 깁숙히 열기가 퍼져 나간다.
하늘의 연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것이구나-라고 그는 생각했다.
"히나타, 히나타라고 부를게. 오직 신과 나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니까."
"네. 그 이름, 잔뜩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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