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지마는 지금, 전례에 없을 정도로 놀란 상태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전례에 없을 정도로 흥분한 상태이기도 했다.
...
"우시와카상, 저 부탁이 있어요."
"우시지와 와카토시 둘 중 하나만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에에, 하지만 우시와카가 어감이 제일 좋은데..."
우시지마 와카토시와 히나타 쇼요는 연인 사이다.
어찌 된 영문이냐 물으면, 불도저 마냥 직진으로 밀어 붙이는 우시지마에 히나타가 홀랑 넘어가 버렸다-라고 설명할 수 있다.
아무튼, 지금 두 사람은 서점에서 배구 잡지를 보며 나름의 데이트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래서, 부탁이란 건 뭐지?"
우시지마가 원간배구의 이번호를 꼼꼼히 읽으며 물었다.
"음, 뭐라고 할까. 저기, 안 입는 셔츠 하나만 빌려 줄래요?"
우시지마는 순간 자기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 셔츠를 빌려달라고 말한 건가?"
"네, 우시지마상의 셔츠."
"그건 어디에 쓰려고 그러지?"
"에, 그거는... 다음주가 축제인데요. 조금 필요해서."
"? 축제에 왜 그런게 필요하지?"
"에잇, 안 빌려줄 거에요?"
"나는 그저 이유를 묻는 것 뿐이다."
"궁금하면 와서 확인하세요! 그래서 빌려주실 거에요? 아니면 츠키시마나 아사히상한테..."
"빌려주지."
"앗, 아싸! 고마워요!"
그래, 이때까지는 우시지마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축제날, 무대에 선 히나타를 보기 전까지...
...
"자, 그럼 카라스노 고교 반별 여장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뜨거운 함성과 함께 강당의 무대에 빛이 들어왔다.
"자, 우선 1반 대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까지 카라스노 축제에 온 거야?"
세미가 투덜거리며 기지개를 켰다.
"하지만 와카토시군이 안 어울리게 다른 학교 축제에 간다고 하잖아?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아니, 애초에 카라스노 10번이랑 사귀는 사이니까, 애인 구경 온거 아냐? 우리는 무슨 상관이야?"
"세미세미, 재미없게 굴지마."
"텐도, 시끄러! 그나저나 여장 대회라니, 이상한거 하네, 카라스노는."
세미는 흥미 없다는 듯 무대를 슬쩍 바라보았다.
어설프게 치마를 입고 가발을 쓴, 그러나 사춘기 남학생의 덩치를 채 가리지 못한 여장한 남학생들이 하나 둘 나와 이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뭐, 몇명은 그럴싸 한데?"
텐도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우시지마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무대를 응시하는데, 그 표정이 흥미로운 표정인지 지루한 표정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5반 대표! 히나타 쇼요!"
"풉- 뭐, 뭐라고?"
마시던 음료를 뿜은 세미가 입가를 닦으며 무대를 보니, 크고 헐렁한 흰 셔츠 하나만 입은 히나타가 서 있었다.
"와, 와카토시군? 알고 있었어?"
텐도가 황당해 하며 물었다.
"...몰랐다. 하지만 저 셔츠는, 내 것이다."
"뭐라고? 10번 굉장하네-!"
허리까지 오는 주황색 가발을 쓴 히나타는, 무릎의 살짝 위를 덮은 커다란 셔츠 한장만 입은 것 처럼 보였다.
"우와, 파격적인 패션인데요. 바지, 안 입으셨나요?"
사회자가 히나타에게 마이크를 건내며 물었다.
그러자 히나타는 셔츠 끝자락을 잡고 살짝 올려 속에 입은 짧은 체육복 바지를 보여주었다.
"제대로 입었습니다!"
씩씩하게 말하는 히나타에 장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웃음소리와 함께 귀엽다, 예쁘다 등의 감상도 섞여 나왔다.
히나타의 가늘고 하얀 다리가 조명 아래에서 빛났다.
제대로 화장까지 했는지 긴 속눈썹엔 검은 마스카라가 발려 있었고, 입술은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자, 그럼 순서대로 댄스타임을 가져 볼까요?"
이번엔 순서대로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치마를 입고 비보잉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귀여운 걸그룹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폭소를 이끌어내는 가운데 이내 히나타의 순서가 되었다.
"자, 그럼 이번 차례는 히나타 쇼요!"
장난스러운 얼굴로 총총 뛰어나온 히나타는 맨발이었다.
맨발에 셔츠 한장, 운동으로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하게 뻗은 맨 다리는 시각적 파괴력이 엄청났다.
"노래 주세요~!"
장난스럽게 나온 것과는 다르게, 어딘가 끈적한 느낌의 팝송이 나오기 시작하자 히나타의 눈빛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러고는 크고 동그란 눈을 살짝 나른하게 뜨고 부드럽고 우아한 동작으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우와아... 우와..."
세미는 할 말을 잃고 어버버거렸다.
텐도도 별 다를 바 없이 충격에 빠져 멍하니 입을 벌렸다.
다리를 쓸며 웨이브를 하다가 또 엎드리기도 하고, 바닥에 가볍게 앉아 다리를 관능적으로 움직이는 히나타에 장내는 노랫소리를 제외하고는 조용해졌다.
세미는 옆에 우시지마가 있었다는 걸 상기해 내고는 옆을 살짝 보았다.
우시지마는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무대를 뚫어버릴 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히익, 뭐람...!"
세미는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려 모른 척 했다.
머리카락 외에는 온통 하얀 히나타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요염하게 춤을 추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손끝의 움직임 하나하나 우아하게 떨어져 더욱 아름다웠다.
마무리로 히나타는 바닥에 앉아 한쪽 다리를 굽히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춤을 끝냈다.
노래가 끝나고 히나타가 옷을 툭툭 털며 일어나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히나타는 원래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반의 친구들에게 입모양으로 나 잘했어?-따위를 묻고 있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5반의 히나타 쇼요군! 정말로 남학생이 맞습니까? 우와, 저까지 반할 뻔 했습니다."
사회자가 진심으로 놀랐다는 투로 말했다.
"에, 또. 정보에 따르면 운동부, 그것도 무려 배구부의 레귤러네요! 굉장합니다. 게다가 저번 체육대회에서도 전 학년 포함 MVP 자리를 꿰찬 학생이네요. 아, 정말로~ 예쁘기까지 하면은, 반칙 아닙니까?"
"헤헤, 고기뷔페 회식권은 저희 5반이 접수하겠습니다."
히나타는 체육계다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럼 반 별 대표 학생들이 신청할 때, 닉네임을 적어 주셨는데요, 나와서 자기 소개와 함께 매력 어필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저는 1반 이쁜이에요~"
근육질의 남학생이 이상한 목소리로 말하자 장내에 장난스러운 야유가 쏟아졌다.
"예, 저는 2반의 공주님이에요."
그리고 히나타의 차례, 히나타는 어째서인지 의자 하나를 질질 끌고 나왔다.
그러고는 그 위에 턱 하고 앉더니 다리를 꼬았다.
"제대로 여왕님이라고 부르라고? 잔뜩 귀여워해 줄 테니까."
라고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관객들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엄청 리드미컬하고 섹시한 목소리로.
세미는 옆에서 우시지마가 쥐고 있던 물병이 아작나는 소리를 들었지만 애써 모른척 했다.
관객들은 꺄꺄 소리를 지르며 벌써 여왕님을 부르고 있었다.
"워어어... 10번 저런 캐릭터였던가?"
텐도가 탄식하듯 말했다.
"나도 몰라, 임마..."
"자, 매력 어필을 할 차례인데... 아무래도 한 분이 나오시는 게 좋겠네요. 남자가 두근할 정도가 되어야 완벽한 여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는 사람이면 별로 재미 없으니까, 타학교의 사람으로..."
순간 세미는 사회자와 눈을 마주치고는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살해당한다...!
그러니 이내 스태프들에 의해 질질 끌려나온 세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
세미는 완전히 혼이 나간 채 남학생들의 매력어필을 온 몸으로 받았다.
무대에 서서 관객석을 보자 형형한 눈빛의 우시지마와 다이렉트와 눈이 마주쳤다.
죽어, 나 죽는다구...!
이내 히나타의 차례가 되자, 세미와 맞먹을 정도로 당황한 히나타가 반 친구들을 향해 안된다고, 아는 사람이라고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친구들은 단호하게 밀어 붙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눈을 질끈 감은 히나타는 세미에게만 들릴 정도로 죄송해요-라고 사과를 했다.
그러더니 세미의 교복 넥타이를 손에 한번 감아 쥐고 세미를 의자가 있는 쪽으로 끌고 갔다.
넥타이를 놓고 의자에 세미를 퍽 밀쳐 앉힌 히나타는 아까전 여왕님 발언을 할 때의 표정을 짓더니 세미의 무릎에 몸을 돌려 옆으로 앉았다.
완전히 돌이 된 세미의 목부터 턱까지를 손가락으로 쓱 쓸은 히나타는 다시 넥타이를 콱 잡고 세미를 자기 얼굴 쪽으로 끌어 당겼다.
"내가 누구라고?"
"여, 여왕님..."
도도하게 말하는 히나타의 눈빛에 압도된 세미는 더듬더듬 대답했다.
세미의 대답에 히나타는 만족했다는 듯 씩 웃고는 세미의 턱을, 앙하고, 깨물었다.
그 이후로 세미의 정신은 완전히 페이드 아웃, 히나타는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다.
...
"우, 우시지마상...? 저기, 잠깐 진정을..."
"여왕님이라... 그럼 어디 봉사를 해 볼까?"
"잠깐! 우시지마상! 여기 학교라고요? 아직 축제 안 끝났어요!"
"여왕님의 허벅지를 깨끗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만."
히나타는 허벅지 안쪽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올리는 우시지마의 머리를 퍽퍽 쳤다.
"놔요! 에로영감! 변태와카!"
"이런 걸 입고 사람들 앞에서, 게다가 세미에겐 어떻게 했지?"
"그건! 대회니까, 우승하려고..."
"난 그런거 모른다. 애인이 이렇게 야한 차림으로 날 찾아왔는데, 내가 왜 그냥 참아야 하지?"
"아니, 우시지마상이 불렀잖어요! 흐아, 으아앗! 거기 빨지 말아요! 자국, 흐으, 만들지 마!"
우시지마는 하얀 허벅지 안쪽을 약하게 깨물었다.
하얀 허벅지에 생긴 붉은 잇자국이,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셔츠 때문인지, 자신의 체취에 감싸인 히나타가 더욱 야살스러웠다.
뜨거운 혀가, 이내 히나타를 잠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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