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연회를 마치고, 히나타는 조용히 현오궁으로 향했다.
현오궁의 가장 큰 방, 카게야마는 날개를 크게 펼치고서는 수많은 등불들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토비오."
히나타는 나즈막히 그를 불렀다.
"아무말도 하지마. 이미 너의 혼인을, 신탁으로 보았어."
여전히 눈을 감은 카게야마에 히나타는 그의 뒤에 조심스레 앉았다.
"미안해."
"하늘의 뜻이야. 네가 미안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난 알고 있어."
 "토비오..."
"모레, 중추에 갈 채비는 마쳤어? 아침 일찍 떠나야하니, 미리 끝내는 편이 좋아."
"...오늘, 현오궁에서 자도 될까? 옛날처럼, 둘이 같이."
히나타의 말에 카게야마는 천천히 눈을 떳다.
창으로 들어온 달빛에 카게야마의 흑발에 푸른기가 감돌았다.
"너가 정말 보고싶을 거야."
"응, 나도."
"난 우리가 서로의 반쪽이라고 생각했어. 너도 날개가 있고, 나도 있고. 너가 나를 찾아주었고, 나는 너를 따라 이곳으로 왔고... 이번대에 날개를 가진자가 둘이나 있었던 것은, 하나가 떠나야하기 때문이었나봐."
"우리는 형제야. 그치?"
"응. 하늘이 맺어준 유대로 이어진, 형제야."
그날밤, 두사람은 두 손을 꼭 잡고 같이 잠들었다.
어린 시절,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모두를 거부하던 카게야마를 달래며 같이 잠들었던 그 시절처럼.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될 밤이였다.
...
"잠을 설쳤습니까?"
히나타는 눈에 띄게 퀭해진 오이카와의 안색을 살폈다.
"아아, 동생 사랑이 넘치는 형님들에게 차례차례 당하느라,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지."
"형님들께서...?"
"흐아암, 뭐,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피곤한 건 어쩔 수 없군."
"죄송해요. 형님들이 저를 많이 아끼셔서..."
"너가 사랑스러운 사람이란 건, 그냥 보아도 알 수 있는데, 평생을 같이 살아온 형님들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지."
오이카와의 말에 히나타의 얼굴이 빨개졌다.
"으아아, 그런 말을 어찌 아무렇지도 않게 하십니까..."
"거짓도 아닌데,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히나타는 더욱 붉게 물들어 민망함에 꾸역꾸역 밥만 먹었다.
"그보다도... 내일 중추에 간다고?"
"아, 네."
"5년을 기다려 이제야 만났는데, 어찌 내일이면 또 안녕인가..."
"황자님..."
"황자님 말고, 토오루라고 불러."
"예? 그게 무슨..."
"나는 너처럼 신이 내려주신 이름이라던가 하는 특별한 것은 없지만, 너에게 특별하게 불리우고 싶어. 토오루라는 이름은, 어머니만 부를 수 있는 이름이야. 그러니 나의 짝인 너에게만, 그 이름을 허락하고 싶어."
"정말로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히나타는 기쁜듯이 손뼉을 쳤다.
"그래, 어서 불러줘. 토오루-라고."
"그, 그럼... 토오루..."
"나의 비가 되실 분은 목소리가 너무 작군."
"토, 토오루!"
오이카와가 놀리듯 말하자 히나타는 눈을 질끈 감고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래, 히나타."
오이카와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히나타를 보며 자신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으로서 응답했다.
히나타는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히나타는 붉은 옷을 좋아해?"
오늘 히나타는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붉은 천에 금실로 까마귀가 새겨진, 화려하고 품위있는 옷이었다.
"예, 태양과 같은 색이기에, 하지만 이제는 푸른색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푸른색을?"
"토오루를 처음 만났을 때, 푸른 옷이 정말로 잘 어울린다고,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이번에는 오이카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늘의 연이란 건 정말로 대단한 것 같아. 널 만난지 겨우 이틀인데, 이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다니."
"저도요."
...

"혼인은 그대의 뜻대로 대관식날, 4황자의 도착일은 그 전날로 정했네."
다이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2황자, 3황자가 따라갈 예정이고."
"그래, 고마워."
오이카와는 다이치 뒤에 앉은 황자들의 살기를 온 몸으로 받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식 바로 전날에 온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런 불만을 내었다가는 살해당할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제 부터는 혼인 이후에 대하여 논하고 싶은데."
다이치의 흉흉한 눈빛에 오이카와는 몸을 흠칫 떨었다.
"뭐, 뭐를..."
"여러가지 논할 것이 있겠지만... 우선 쇼요의 호위에 대한 걸 먼저 이야기 했으면 좋겠군."
"호위? 호위라면 당연히 황후의 호위이니, 적당한 실력자를..."
"쇼요는 달마다 시라토리자와에 가는데, 그 길을 제대로 호위할 수 있는 자를 뽑아야하네."
"하긴, 신관들은 항상 표적이 되지... 신력을 악행에 이용하려는 무리들이 있으니..."
"그래서, 호위의 수준을 좀 확인하고 싶은데..."
다이치가 조용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수준을 확인한다? 어떻게?"
"아오바죠사이에서 가장 강한 건, 이와이즈미지. 그래서 차기 황제인 자네를 호위하고 있고... 그렇다면 앞으로 쇼요의 호위가 누가 된다고 해도, 이와이즈미 보다는 약하다는 소리 아닌가?"
"화,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그래서 일단은, 이와이즈미의 실력을 좀 보고싶은데?"
"이와이즈미의?"
"그래. 어려운 부탁인가?"
"뭐, 이미 부탁이 아닌 것 같지만... 이와이즈미, 괜찮을까?"
"카라스노의 황자꼐서 하시는 말씀에 그른 것이 없으니... 명하시면 따르지요."
이와이즈미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상대는 누가...?"
오이카와의 물음에 다이치는 씨익 웃었다.
"쇼요."
"뭐라고?"
다이치의 말에 오이카와는 깜짝 놀라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위가 지켜야지 지킴을 받으면 안되지 않은가? 그럼 쇼요보다 강한 사람을 뽑는 게 맞지."
"이래뵈도 우리 나라 최강 검사라고?"
"자네는 내가 농으 하는 걸 보았나?"
"언제나 진지한 자네가 하는 말이니 더 황당해..."
"쇼요는 이미 대련힐 채비를 갖추고 있을 걸세."
"하지만 4황자께서 다치기라도 하시면..."
이와이즈미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카라스노의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데 말이지."
조용히 차를 마시던 츠키시마가 불쑥 말했다.
"확실히, 궁 내에서 무예 좀 익혔다는 자들을 죄다 쑤시고 다녔으니."
엔노시타도 즐거운듯 말했다.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황자들의 반응에 그저 황당함 뿐이였다.
"4황자께서 드십니다."
태감의 말이 끝나자 마자 가벼운 대련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히나타가 신나는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왔느냐? 오늘은 창이 아니라 검이구나."
다이치의 인자한 표정에 히나타는 해맑게 웃었다.
"아오바죠사이 최고의 검사라고 하시니, 굉장히 두근두근합니다."
"목검이 아니라 진검으로 하는 겁니까?"
"네!"
이와이즈미의 물음에 히나타는 밝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어, 어찌..."
"일단 빨리 시작하는 게 좋겠군."
다이치가 말했다.
이와이즈미는 황당하고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저렇게 작고 가녀린 소년을, 한참 큰 자신이랑 붙이려 하다니.
실은 4황자를 싫어했던 것인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 한 수 부탁드립니다."
"예? 아, 예..."
히나타가 정면에 서 자세를 취해오자 이와이즈미는 얼떨결에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걸 지켜보는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미친듯이 흔들렸다.
스릉-하고 검을 뽑는 소리와 함께 시작을 알리는 다이치의 음성이 들렸다.
시작과 동시에, 이와이즈미는 검을 든 팔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뭐야, 이 힘... 저 체구에서 이런 무게가 나온다고?'
히나타는 유연하고 재빠른 움직임으로 공격을 해왔다.
'보통 이런 속도와 유연성을 무기로 하는 검사들은 기술로 승부를 보는데... 완력도 엄청나.'
이와이즈미는 감탄과 함께 검사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이 일었다.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지, 저건."
엔노시타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2황자님도 더 강해지셔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 훈련을 조금 더 늘리도록 하죠!"
엔노시타의 호위, 니시노야가 씩씩하게 말했다.
"아니, 그건 좀..."
검과 검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히나타는 작은 신장에도 눌리지 않고 높이 뛰어올라 오히려 이와이즈미를 눌러왔다.
"탄성이 엄청나군..."
오이카와는 넋이 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에 다이치는 조용히 웃었다.
공격 하나하나가 잔뜩 무게가 실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유연성과 속도 덕에 공격 사이사이에 빈틈이 없었다.
"어떤가?"
"어떻긴 뭐가... 아무 말도 나오질 않네..."
다이치의 말에 여전히 넋이 나간 오이카와가 대답했다.
"쇼요가 작정하고 덤비면 나도 못 이긴단 말이지... 후쿠로다니에서 놀다 온다더니, 무예를 배워왔어. 굉장하지 않은가? 하하하..."
즐거운 듯 말하는 다이치에 오이카와는 아주 혼이 나갈 것 같았다.
히나타와 이와이즈미 둘 다 막상막하로 겨루고 있었지만, 누구하나 지친 기색이 없었다.
"저렇게 무리가 많이 가는 움직임을 하면서, 숨 찬 기색하나 없다니... 체력이 굉장하군."
"저 체력을 케이에게 반절만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다이치의 말에 츠키시마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쇼요는 오래 전부터 무예를 하지 않았습니까. 저 아이와 비교하지 말아 주세요."
"둘이 같이 후쿠로다니에 보냈는데, 하나는 무예를 배우고, 하나는 공부만 하다가 왔어.
"아카아시공의, 아니, 대승상과 공부한 것은 지금도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으니, 괜찮지 않습니까..."
"하하, 그래. 뛰어난 동생이니, 건강하길 바란 것 뿐이다."
날붙이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히나타는 평소와는 다른, 형형하게 빛나는 맹수의 눈으로, 즐거운 듯 검을 맞대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도 처음의 황당함은 어디로 갔는지, 흥분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검에 반사된 빛이 반짝반짝 거렸다.
그때, 카앙-하는 소리와 함께 히나타의 검이 부러졌다.
"아, 부러졌다. 제가 졌네요."
히나타는 아쉬움을 듬뿍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와이즈미는 부러진 검을 슬쩍 보았다.
초심자들을 위한 가벼운 검, 그런 검으로 자신의 검을 몇번이나 받아내고 그런 엄청난 무게를 실어 공격하다니, 이와이즈미는 히나타의 실력에 감탄했다.
"저런 장난감 같은 검으로 저를 이렇게까지 몰아 붙이시다니... 제대로 된 진검이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니요, 어떤 검이라도, 설사 나뭇가지여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네요."
"무서운 스승이군요. 스승의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아, 제 스승님은, 정식은 아니지만...후쿠로다니의 현 황제이신 보쿠토 코타로 공... 아니, 이제 후쿠로다니 코타로였지."
히나타의 말에 이와이즈미는 또다시 경악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발전된 무예를 뽐내는 후쿠로다니에서 신동으로 불리우다 이내 무신의 칭호를 얻은 어린 황제.
그런 사람에게 검을 배웠다니,
"아오바죠사이가 엄청난 귀인을 국모로 뫼시게 되었군."
이와이즈미는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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