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슬슬 보여줘도 괜찮지 않아?"
쿠로오의 물음에 다이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선셋 레이븐의 세력 확장에 명실상부한 공을 세운, 그 '야차'말야. 꽁꽁 숨겨놓고 보여주질 않으니, 궁금해서 잠이 안온단 말이지?"
"왜 그에게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는데, 게다가, 숨긴적 없어. 그저 네가 만날 기회가 없었던거지."
여유롭게 웃으며 말하는 다이치에 쿠로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흐응, 소개라도 시켜주는 건 어때? 조화파 연합인데, 각 조직 지휘부의 간부들끼리는 안면 트는게 좋잖아?"
"우리애한테 관심이 지나친 거 아냐?"
"다 무너져가던 까마귀 둥지가 이렇게 번쩍번쩍하게 다시 태어났는데, 그것도 전대 보스의 아들 중 가장 열악학 상황에 있었던 사와무라군에 의해서 말야? 그 미약한 세력으로 내부 전쟁을 죄다 휩쓸더니, 보스 자리를 차지했고."
"그래서?"
"그래서라니? 사와무라군과 레이븐 부활의 전설을 이뤄낸 주요 간부 셋, 스가와라군도 알고, 에이스 아즈마네군도 아는데, '야차'군만 모르는 건 섭섭하다 이거야."
쿠로오는 실실 웃으며 몸을 숙여 다이치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떻게 키워냈는지, 비결을 알고싶기도 하고?"
다이치는 쿠로오 옆의 단발머리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눈동자에 유희를 탐하는 욕망이 서려있었다.
"어린아이는 잘 안건드리는 상냥한 까마귀들이, 소문의 괴물을 키워내기 위해 무슨 짓을 했을까~?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지."
쿠로오의 말에 다이치 뒤에선 스가와라와 아사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가 뭘 상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는 우리 가족이고, 괴물도 아냐."
다이치는 뜨거운 커피잔 속에 녹아가는 각설탕을 바라보며 말했다.
"헤이헤이헤-이! 시작부터 텐션 너무 떨어뜨리잖아, 쿠로오!"
드물게 조용히 두사람의 대화를 듣던 보쿠토가 불쑥 소리를 질렀다.
"넌 조울증 아닌가 검사 좀 맡아봐라. 텐션이 널뛰듯 바뀌냐?"
쿠로오의 짜증난다는 말투에도 보쿠토는 헤이헤이헤이를 연발했고 그의 뒤에 선 아카아시는 싸늘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쿠로오의 말도 맞아! 서로의 '머리' 정도는 파악해야지?"
장난스러운 얼굴이지만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에 다이치는 짜증이 치밀었다.
"우리쪽의 아카아시, 코노하, 사루쿠이, 스트레이 캣츠의 코즈메, 야쿠, 케이까지 주 간부들이 다 모였는데... 공평하게 하자?"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참다 못한 다이치가 버럭하자 보쿠토와 쿠로오는 겁먹은 척을 하며 꺄아- 따위를 외쳤다.
"아니, 그냥! 마피아 보스 정도 되는 인물이 누굴 그렇게 싸고 돌면, 호기심이 생기잖아?"
"호기심이냐!"
"으아아, 스가! 본심이 튀어나왔어!"
쿠로오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른 스가와라에 아사히가 화들짝 놀라 그를 말렸다.
"회담 진행은 안하는 겁니까?"
아카아시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뭐, 어차피 친교를 위해 모인거 아니였나?"
"보쿠토상,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는 반복되는 신생 조직의 습격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모인겁니다."
"아카아시군, 지적 고마워. 실은 얼마전에 스파이 하나를 잡았는데, 그녀석이 이 건에 얽혀있었던 것 같아."
"허술하네~ 스파이라니."
"스트레이 캣츠는 정보가 넘쳐나서 별로 필요 없나보지?"
"와우, 사와무라군, 얼굴 표정으로 욕하는 건 반칙이야."
깐족거리던 쿠로오는 켄마의 한심하단 눈빛을 보고는 조용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무튼, 마약, 무기 밀수 등등, 잡다한 걸 가리지 않는 녀석들인데,중요한 건 본거지가 해외라서, 국제 조직인 만큼 아오바죠사이가 간섭하게 될 거야."
"벌써 피곤하다. 그놈들 짜증나는데!"
보쿠토가 질색이라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목적은?"
쿠로오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독수리 놈들이 잠잠할 때 조화파를 들쑤셔서 세력을 키우려는 것 같아. 평화주의라고 완전히 얕보인거지. 게다가, 몰락한 혼돈파의 잔당들을 모아서 최종적으로는 도미넌트 이글에 맞서려는 것 같던데."
"하! 우리를 털어서 독수리 놈들이랑 싸울 자원을 마련하겠다?"
쿠로오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얕보여도 너-무 얕보였네."
보쿠토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턱을 괴고 커피잔을 티스푼으로 휘저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게 남았어."
다이치가 갑자기 싱글벙글 웃자 보쿠토와 쿠로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스파이놈이, 회담 장소를 여기저기 흘렸더라고. 다섯? 여섯이던가? 신생 조직이랑, 괴멸 직전의 잔당들?"
"뭐...? 혹시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
설마하는 마음에 물은 쿠로오는 다이치의 밝은 표정에 소름이 오소오 돋았다.
"이번에 들어온 신무기들, 화력이 얼마나 되나 좀 보려고."
"온화한 까마귀는 개뿔! 완전 악마잖아! 우리는 전쟁하러 온 거 아니라는 어필을 위해 간부들만 모였는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쿠로오 뒤로 설마 다이치가 그럴 줄은 몰랐다는 표정의 야쿠가 스가와라와 눈이 마주쳤다.
환하게 웃어주는 스가와라에 야쿠는 황당함에 말을 잃었다.
"왜, 너희들이 자랑하는 경호원들, 밖에 몇명 있잖아?"
"그래도 미리 언질은 줘야지!"
"헤이헤이헤이! 뭔가 타오르네! 나도 출전한다!"
"보스, 제발 가만히 계세요."
"하하, 개판이네."
손뼉까지 치며 깔깔거리는 스가와라에 아사히는 조용히 눈을 돌렸다.
"화면 준비했는데, 볼래?"
다이치가 리모콘의 버튼을 누르자 커다란 화면에 건물의 입구가 보였다.
"쿠로, 리에프 카드 게임 하는데?"
켄마의 말대로 화면에 비친 은발의 장신남은 긴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 어느새 친해진 문라이즈 아울의 조직원과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저자식, 데려가 달라고 징징거려서 데려왔더니, 놀고 있어?! 어이, 야쿠! 저녀석 재교육이다!"
"멘탈 게이지가 남아나지 않으니까 다른 시람한테 맡길래?"
야쿠는 아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이, 리에프! 놀고 있냐!"
쿠로오가 품에서 무전기를 꺼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화면 안의 리에프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으앗, 보스! 어디서 보고있어여?!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쿠로오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적습이 있을거다. 옆의 부엉이군한테도 알려라. 죽지말고, 지켜라?"
-에? 뭐가 있어요?
"까마귀 놈들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만, 휘말리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우어어어... 완전 무책임하네여... 뭐, 상관 없지만. 좋을대로 때려부숴도 괜찮나여?
"괜찮냐는데?"
"전투중에 부숴먹는 거, 이쪽은 일상이야."
"레이븐 보스가 직접 허락했다. 맘대로 해."
-조금 신나기 시작했네여! 언제 온데여?
"쟤 시끄럽다. 스트레이 캣츠는 다들 조용한 편 아니였나."
스가와라의 말에 야쿠는 좀 쪽팔렸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여기는 야차! 적의 접근을 확인! 5분 내로 전투를 시작합니다!
치직거리는 소리에 아사히가 품에서 무전기를 꺼내자 히나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야차라는 단어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스트레이 캣츠와 문라이즈 아울의 사람도 확인했나?"
-확인했습니다! 저격조 준비 완료! 신무기 테스트조 정비 완료! 1분 내로 전투가 시작됩니다!
화면에 적들이 포착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커다란 폭음이 울려퍼졌다.
"저격조가 있는데, 굳이 전투를 하는 이유가 뭐야?"
보쿠토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저격조는 적의 총기를 무효화하는 용도야. 전투를 해야 신무기도 시험해보고, 조직원들 훈련도 시키지."
"너 성격 완전 버렸다."
쿠로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실전 경험 해보는게 최고라니까?"
-꺄하하하하핳ㅎ! 저놈 도끼 들었어여! 꺄핳ㅎ하핳
"야, 니네 거신병은 입으로 싸우냐?"
보쿠토의 말에 스트레이 캣츠의 모두가 일순 고개를 숙였다.
"잠깐! 그 도끼든 사람, 우리..."
화면을 보고 흠칫 놀란 아사히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리에프는 그에게 달려갔다.
"우리 조직원이야!
-어이, 고양이씨? 타겟 설정 다시해. 아군이야.
순간 화면에 뭔가 나타났다 싶었더니, 히나타가 불쑥 나타나 리에프를 저지했다.
자기 몸의 3분의 2크기의 거대한 총을 들고 서있는 히나타의 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그것도 잠시, 이내 화면에서 사라진 히나타는 미친듯이 총을 갈기며 뛰어다녔다.
총알이 다 떨어지자 총을 거꾸로 들고 휘두르기 시작하는 히나타에 적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이야... 모시고 있다는게 사와무라군이구나?"
갑작스런 보쿠토의 말에 다이치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스카우트하려고 했는데, 거절당했거든."
"뭐?"
"어라, 저게 누구야~ 37구역에서 만난 꼬맹이잖아?"
쿠로오는 다 알고 있었음에도 모르는 척 말했다.
또다시 화면에 잡힌 히나타는 거의 날다싶이 점프해서 적들을 내려치고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접이식 의자로.
"저게 바로 체어샷!"
보쿠토는 두근두근~이라는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화면을 응시했다.
"살벌해라. 19살의 파괴력이 아닌데?"
"19살이야?!"
쿠로오의 말에 보쿠토가 화들짝 놀랐다.
"14살 같은데...! 사와무라군, 쟤 굶기나?"
다이치도, 스가와라도, 아사히도, 도대체 어떤 매커니즘으로 히나타가 태어나서 처음 가본 37구역에서 마피아 보스 둘을 다 만났는지 황당해하고 있었다.
-여기는 '달무리', 다 죽이지 마세요, 야차. 정보를 뽑아내야 하니까.
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여기는 '파수꾼', 야차, 3시 방향 인물 생포하세요. 그늘, 11시 방향 생포 부탁합니다.
"'그늘'이 걔지? 오이카와한테 스토킹 당하는... 벌써 코드네임을 받았어?"
보쿠토가 말했다.
"능력이 된다면 누구라도 인정하는게 우리 룰이라."
"흐응... 암만 그래도 정부의 개였던 놈을 너무 쉽게 믿는 거 아냐?"
쿠로오의 말에 다이치는 자신감에 잔 미소를 지었다.
"절대로 배신 못할걸? 고삐를 쥐고 있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견딜 수 없어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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