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나타는 귓가에 울리는 거친 고동과 이명 속에서 혼란스러운 감정을 억눌렀다.

지옥에서의 기억이 발끝부터 옭아매어 기어올랐다.

10년이 넘게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도

아직도 이렇게 괴로운 이유는 뭘까.

..................

"오야, 또 만났네~?"

"쇼요, 안녕?"

"헤이헤이헤-이! 설마했던 까마귀라니, 항상 기대 이상이야?"

복잡한 감정울 품고 다이치를 찾아온 히나타의 앞에는, 37구역에서 만난 사람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켄마? 켄마가 왜...?"

"어-이, 쿠로오상도 있거든?"

'쿠로오? 닭벼슬이 스트레이 캣츠의 보스였어?!?!'

"야차, 수고했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세사람이랑은 안면이 있는 것 같더라?"

당황한 히나타의 귀에는 다이치의 말도 잘 들리지 않았다.

"뭐, 보면 알겠지만? 이 쿠로오상은 스트레이 캣츠의 보스님이시고, 켄마는 우리의 최고 브레인이지."

"쿠로, 창피하니까 3인칭 그만둬."

"그래서, 이쪽이 너희들이 그렇게 궁금해하던 야차군이야."

다이치가 크게 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호? 투기장에서도 범상치 않더라니, 소문의 야차였어? 진짜로 우리쪽으로 안올래? 너무 탐나잖아!"

보쿠토는 잔뜩 흥분한 투로 말했다.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와중에 히나타는 보스를 찾아온 목적을 상기해냈다.

"보스, 저 보고할게 있어서..."

"음, 안그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뒷처리 중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왔길래."

"저기, 개인적인 보고인데요. 아마도."

히나타가 회장에 모인 사람들을 슥 살폈다.

드물게 안절부절하는 히나타에 다이치와 스가와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래, 어차피 회담도 무사히 마쳤으니, 일단 차 한잔 마시고 있어. 아사히, 배웅해드려."

"오야, 사와무라군? 난 야차 군과 대화를 좀 나눠보고 싶은데?

"나도 마찬가지야! 드디어 만났는데, 벌써 헤어지면 아쉽지."

다이치의 말에 쿠로오와 보쿠토가 히나타의 양 옆에 찰싹 붙으며 말했다.

그때 갑자기 켄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히나타 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아니, 우린 갈 거야. 쇼요, 싸우는 거 봤어. 굉장하더라. 더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뭔가 해결해야 될게 남은 것 같으니 다음을 기약할게."

"어? 어.. 고마워 켄마."

히나타와 켄마를 제외한 회장의 사람들은 그 코즈메 켄마의 태도에 깜짝 놀랐다.

저렇게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며 대화를 하다니...

"가자, 쿠로."

히나타는  보스도 아닌 켄마의 말에 아무말 없이 따르는 스트레이 캣츠의 간부들과 쿠로오에 깜짝 놀랐다.

"다음에는 22구로 놀러와."

작게 손을 흔들며 말하는 켄마에게 히나타도 멍하니 손을 흔들었다.

'닭벼슬, 엄청 투덜거릴 줄 알았더니 말 없이 따르네...? 켄마 대단해!'

"뭐야, 이쪽까지 남기 힘든 분위기가 되어버렸네? 거참, 코즈메, 쓸데없는 짓을... 가자 아카아시! 그럼 또 보자구, 야차군?"

'부엉이들도 가버렸어...! 켄마 효과 엄청나...!'

히나타는 켄마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감탄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다이치의 말에 히나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카게야마가 전투 중에 주워온 건데..."

히나타는 꽉 쥔 손울 펼쳐 작은 초록색 알약을 보여주었다.

의아해하는 다이치와 아사히 옆에서, 스가와라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었다.

"히나타, 이건..."

살짝 떨리기 시작한 스가와라의 목소리에 다이치와 아사히는 화들짝 놀랐다.

"이건... '투견장'에서 사용하던 거에요."

히나타의 말에 다이치의 표정이 싸늘히 굳어갔다.

아사히도 크게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

사와무라 다이치가 17살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선셋 레이븐의 보스였던 그의 아버지는 수많은 여자를 거느라고 살았고, 다이치의 어머니도 그 중 하나였다.

수많은 정부 중 하나에게서 얻은 세번째 아들.

현명하고 똑똑한 아들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는 했지만 형들의 세력에 항상 억압받으며 살아왔다.

어릴적 부터 스가와라와 아사히, 그 둘만이 유일한 자기편이었다.

유일한 친구이자 형제, 다이치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스가와라와 아사히의 부모님은 모두 다이치 어머니 쪽 사람이었고 그것 또한 세사람이 서로 똘똘 뭉치는 이유가 되었다.

그들이 17살이 되던 해에는, 레이븐의 보스인 아버지가 앓아누움으로서 후계자 전쟁의 서막이 열렸고 형들의 견제가 더욱 심해졌다.

다이치도, 스가와라도, 아사히도 암흑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아이들이었기애 더 힘들었다.

가시방석에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비가 오던 날, 세사람은 어둑한 골목에서 작은 아이를 끌어안은 채 바들바들 떨고있는 소년을 만났다.

빗속에서도 짙음 혈향과 살이 썩어들어가는 악취가 느껴질 정도로 소년의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너덜너덜한 몸에도 어둠속에서 형형히 빛나는 눈으로 세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사히가 손을 내밀자 소년은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저리 꺼져! 오면 죽여버릴꺼야!"

품 안에 안긴 아이는 몸이 안좋은 건지 색색거리는 소리를 내며 눈도 뜨지 못했다.

"해치려는게 아냐. 치료해줄게."

"더러운 수작 집어쳐!"

다이치의 말에도 소년은 더욱 힘을 주어 품 안의 아이를 안았다.

"동생이야? 많이 아파 보이는데... 치료해 줄 수 있어."

다이치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을 위협하는 아이에게 계속 손을 뻗었다.

"당신들을 어떻게 믿어."

"자, 총을 줄게. 위험할 것 같으면 쏴. 제대로 실탄 들었으니까."

소년은 다정하고 고요한 다이치의 음성에 몸을 움찔 떨었다.

망설이던 소년은 품 안의 아이가 기침을 하기 시작하자 울상을 짓더니 결심한 듯 총을 받아들었다.

"...내 동생만은, 날 나중에 어떻게 하든 상관없으니까 내 동생은 건들지마."

작은 소년은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아사히가 동생을 들겠다고 해도 완강히 거부하며 넝마같은 몸을 억지로 세워 세사람을 따라갔다.

소년은 동생이 치료를 받고 안정된 숨소리를 뱉으며 잠이 들 때까지 옆에 꼭 붙어있다가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기절한 소년의 몸상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몹시 왜소함 소년의 몸에는 채찍 자국이 가득했고, 손목과 발목 그리고 목은 살이 너덜너덜해져 반쯤 썩어가고 있었다.

칼에 맞은 상처, 총에 맞은 상처.

온 몸에 상처가 가득했다.

소년은 눈을 뜨자마자 발작을 일으키듯 동생을 찾았다.

상처가 벌어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날뛰는 소년에 다이치는 바로 동생에게 데려더 주었다.

"자, 동생은 열도 다 내렸고, 뭣 좀 먹고 기운 좀 차리면 될 거야. 넌 쟤를 지켜야하니까, 이젠 니가 다 나아야지."

다이치의 말이 들리는지 아닌지, 소년은 안도한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잠든 동생의 손을 뺨에다 부볐다.

"무언가 필요한 것을 말해. 뭐든 해 줄테니."

소년은 세사람에게 말했다.

"청소든, 아무 잡일이든 뭐든지 할게. 동생이 낫기 전까지만... 그때까지만 머물게 해줘."

소년은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우리 사용인들 많고, 굳이 아픈 어린애를 부려먹을 이유가 없어."

다이치의 말에 소년은 얼굴빛이 어두웠다.

이내 소년은 떨리는 손으로 다이치의 앞에 무릎을 꿇더니 그의 바지 지퍼를 내리기 시작했다.

"뭐, 뭐하는 거야!!?"

"나 잘해요. 배웠어."

소년의 말에 셋 모두 얻어맞은 듯 충격에 빠졌다.

"하지마! 필요없어!"

다이치가 허둥지둥 소년을 밀어 내었다.

"...그럼 박을래요?"

결국 아사히는 눈물을 터뜨렸다.

담담하게 말하는 소년이 도대체 어떤 끔찍한 곳에서 온 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소년의 비참함이 자신들을 너무나 슬프게 만들었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아사히에 소년은 오히려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라했다.

이내 자신을 껴안고 들썩이며 우는 아사히의 품 안에서 소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이치와 스가와라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아무것도 하지마... 아프잖아! 다쳤으면서... 엉망인데! 동생보다 네 쪽이 더 심각한데 왜!"

스가와라는 울먹이며 말했다.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면 죽어. 그리고 난 오빠고, 동생은 아프니까 두배로 해야 하는데..."

다이치는 생각했다.

이 도시는 미쳤어.

마피아 아버지를 두고서도 세력도 약하고 기본적으로 마음이 여린 다이치는 그다지 암흑가의 어두운 면에 노출될 기회가 적었다.

자신의 반도 안되는 이 작은 아이가 죽다 살아난 몸뚱이를 끌고서는...

"남자라서 싫어? 나 싸움 잘하는데, 나 호위로 쓸래? 나 총도 칼도 많이 맞아봐서 안 무섭고."

소년의 말에 다이치는 할 말을 완전히 잃었지만 그나마 그 제안을 수락하는게 소년에게 가장 나을 것이라 생각하여 소년에게 알았다고 했다.

'조직의 호위가 있으니까, 이 아이가 나설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사히의 품에 안긴 소년의 머리를 슥슥 쓸었다.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

"이름이 뭐야? 나이는?"

"없어. 나이는 8살. 동생은 5살."

스가와라의 물음에 소년은 이름이 없노라고 말했다.

"이름이 없어?"

"아무도 우리가 태어나는 걸 원하지 않아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어."

소년은 담담하게 말했다.

스가와라는 소년의 하나하나가 모두 가슴이 아팠다.

"내가 지어줘도 될까?"

스가와라의 말에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해했다.

"당신이 왜?"

"부를려면 이름이 있어야지."

히"마음대로 해."

"너도, 네 동생도 태양이랑 똑같은 색의 머리카락을 가졌으니까 성은 히나타라고 하자. 이름은..."

스가와라는 소년에겐 쇼요, 소녀에겐 나츠라는 이름을 주었다.

스가와라가 이름의 뜻을 설명해 주는 것을 들으며 소년은, 아니 히나타 쇼요는 가슴 언저리가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다이치는 아이가 8살이라는 것에 크게 놀랐다.

히나타가 또래보다 너무 왜소했기 때문이다.

그래사 그는 남매의 식사에 신경을 많이 써 주었고 틈틈이 간식거리를 주었다.

히나타는 밤마다 저택을 돌며 만약의 경우 나츠를 데리고 도망갈 경로를 확인했다.

아직 그들을 완전히 믿기엔 히나타가 가진 악몽들이 그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히나타는 여전히 집착적으로 쓸모를 증명하려 했고 도움 받기를 극도로 꺼렸다.

다만 그는, 세명이 불러주는 히나타 쇼요라는 이름에 서서히 익숙해졌다.

어느날 밤에, 다이치는 갑작스러운 총성에 눈을 떳다.

눈을 떳을 땐, 피투성이가 된 히나타가 어떤 남자와 싸우고 있었다.

히나타가 호위를 한다고 한 것은 허풍이 아니었다.

히나타는 순식간에 사내를 헤치웠다.

총을 떨군 사내가 휘두른 칼에 맞아도 공격을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작은 단도를 휘둘렀다.

마치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시체가 돤 사내 위에서 눈가로 흐르는 피를 훔치는 히나타의 눈이 짐승의 것처럼 형형한 빛으로 번뜩거렸다.

"괜찮아요?"

그건 내가 할 질문이야.

다이치는 생각했다.

다이치는 굳이 파헤치지 않았던 히나타의 과거를 물었다.

"넌 도대체 뭘 하며 살아온 거야?"

히나타는 칼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때로는 사냥개, 때로는 투견."

8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다이치는 사람을 불러 죽어버린 킬러의 시체를 치우도록 하고 다른 방으로 가 히나타의 상터를 치료해 주었다.

"쇼요, 네가 내 목숨울 구했어. 고마워."

다이치는 히나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히나타는 쓸모를 증명해서 기쁜 모양이었다.

"또 이렇게 상처가 잔뜩 나서 어떡해..."

"참을 수 있어요. 뛸 수도 있고 칼도 쥘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다이치의 말에 히나타는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고 그의 소매를 잡았다.

"아니, 네가 필요없다는 게 아니야. 아프잖아. 걱정되서 그래."

다이치의 말에 히나타는 주춤하더니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왜요? 왜 날 걱정해요?"

"넌 아직 작고 어리니까, 그렇게 많은 상처를 짊어지는 것이 걱정되는 건 당연하지."

"당연...? 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당신은 나에게 돈을 걸거나 한 것도 아니면서 왜 나를 걱정해요?"

"돈을 걸다니...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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