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투견이었어요. 사람들은 돈을 걸고, 나는 싸우고, 죽이고. 상대는 약먹은 짐승일때도 있었고, 나같은 투견들도 있었고."

히나타는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울고 있다는 것을 다이치는 알았다.

"다이치상, 당신은 왜 날 도와줘요? 죽거나 죽이거나인 이 도시에서, 부모조차 버린 나를?"

"스가와라상은 우리에게 이름을 줬어요. 왜요? 왜, 난 항상 인간 이하의 존재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왜... 난 여전히 당신들을 믿을 수 없어요. 그러니 내가 기대하게금 하지마세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아이는 침대 시트를 꽉 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쇼요. 약속할게. 네가 우리를 떠나지 않는 한, 널 버리지 않겠다고."

히나타는 다이치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상냥한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여기는 이제 너의 집이야. 우란 너의 가족이고."

"당신은 후회할 거에요. 잠시의 동정심에 착각하지 말아요. 당신이 나에게 잘 해줄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데..."

"가족을 돕는데 이유는 원래 없는 거야."

"나를, 나츠를 투견장에 버린 건 나의 부모와 형제들이었어요. 그들은 나를 부를 이름조차 주지 않았고..."

"스가와라가 너에게 이름을 주었지? 그 사람들은 진짜 가족이 아니었던 거야. 내가, 우리가 이제 네 새로운 가족이 되는 거야."

"나는..."

히나타는 울먹거림을 참았다.

작은 가슴이 차오르는 눈물로 울컥거렸다.

"괜찮아. 이제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돼..."

다이치의 말에 히나타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차라리 죽고 싶었던 지옥같은 나날.

오직 여동생을 위해 필사적으로 연명하던 목숨이었다.

그거면 되었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꽉 안아주는 따뜻한 온기와 단단한 팔 속에서 히나타는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울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힘만 빠질 뿐이라고 깨달은 이후 절대 울지 않던 히나타는 그날, 온 몸으로 울었다.

..................

히나타의 태도가 다음날 부터 바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히나타는 세사람이 베푸는 호의를 조금씩 받아들였다.

스가와라는 자주 책을 읽어 주었고, 아사히는 나츠를 데리고 공놀이를 하거나하며 놀아주었다.

상냥한 손길이 자신의 곱슬머리를 부드럽게 헤집는 것이 좋았다.

히나타는 이제 니츠 다음으로 이 세사람이 좋았다.

소중했다.

지켜고 싶었다.

히나타는 상냥하고 다정한 다이치가 마피아 보스의 아들이라는 것에 놀랐지만 그 말에 자신이 그를 지켜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를 노리는 세력들이 암살자를 보내오거나 공격할 때 마다 히나타는 몸을 날렸다.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지킨다.

그렇게 새겨넣었다.

히나타 남매가 세사람과 지내게 된지 반년이 조금 넘었을 때, 히나타는 그들을 나츠와 동급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소중한 가족.

가족이란 단어를 혼자 되내일 때는 가슴이 간질간질 따뜻했다.

그때는, 다이치를 향한 위협이 점점 심해질 때였다.

암살 시도가 이어졌고 히나타는 일이 없을 때마다 아사히와 훈련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스가와라가 사라졌다.

스가와라가 사라진 자리에 남아있던 작은 엠블럼.

히나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도망쳐 나온, 아직도 악몽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투견장'의 징표.

죽고 죽이고, 고문 당하고, 가시 박한 쇠사슬에 묶여 몸부림치던.

히나타는 온 몸에 새겨진 과거의 공포에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그곳에, 그 지옥에 스가와라가 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지켜야 한다.

상냥한, 내게 이름을 준, 나의 가족.

히나타는 제 발로 지옥으로 되돌아 갔다.

죽어도 되는 것은 자기 하나 뿐이었다.

만약의 상황에 붙잡히게 된다면... 다이치도, 아사히도 그 지옥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괴물이니까, 익숙하니까.

'스가와라상 반드시 돌려 받을게요. 나츠를 부탁해요 고마웠어요.'

히나타는 쪽지 한장을 남기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투견장에서 배운 것들로, '사육사'에게 배운 것들로, 그들을 부수러 다시 돌아갔다.

........................

스가와라는, 투견장에서 도망쳐왔다는 히나타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 이런 산지옥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목줄에 달린 굵직한 가시들이 움직일 때마다 여린 살가죽을 찔렀다.

하나타를 처음 만난 날, 반쯤 썩어가던 목과 손목, 발목의 상처를 떠올렸다.

처음 '경기'에 나갔을 때, 스가와라는 자신과 같이 겁에 질려 떨고있는 소년을 죽였다.

상냥한 그의 첫 살인이었다.

가끔 '사육사'들은 그에게 알 수 없는 초록색 알약을 먹였다.

그 약을 먹고, 정신을 차리면 울컥거리며 피를 뱉어내는 소년, 소녀들이 눈 앞에 있었다.

스가와라의 몸에도 생긴지도 몰랐던 상처들이 가득했다.

무섭고, 고통스러운,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었다.

'크루엘라'라는 이름의 여자 사육사는 가끔 스가와라를 자신의 침실로 데려왔다.

약에 취해 꼼짝도 못하는 그를 희롱하거나 주름진 그녀의 몸을 애무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절대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차라라 죽어버릴까.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만이야, 크루엘라."

뾰족한 그녀의 힐이 스가와라의 가슴팍을 밟고 있었을 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크루엘라의 작은 머리통이 산산조각이 났다.

히나타가, 피에 젖은 도끼를 들고 서 있었다.

"스가와라상. 여기서 나가요."

겨우 행복을 찾은 소년이, 악몽을 채 잊기도 전에 자신을 구하려 지옥으로 돌아왔다.

스가와라는 기쁨과 안도 속에서 심장이 짖이겨지는 죄악감이 혼란스럽게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히나타는 묶여있는 스가와라를 풀어주고 그에게 총을  주었다.

"조용히, 빠르게 따라와요."

......................

다이치는 어질어질한 머리에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뭐야, 확실히 치웠다더니... 왜 아직 여기에 있니? 하하, 친구 목숨을 밟고 살아 남았구나?'

첫째 형, 증오스러운 첫째형.

스가와라는 다이치 대신 끌려간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로?

어디서 그를 찾아야 하지?

형에 비하면 조직내에서 자신의 위치는 완전 바닥이었다.

아버지가 앓아누운 지금,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이치!!!"

거칠게 문을 열어쟂힌 아사히는 숨을 몰아쉬며 다이치에게 종이쪼가리를 내밀었다

'스가와라상 반드시 돌려 받을게요. 나츠를 부탁해요 고마웠어요.'

히나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다이치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살아 돌아오겠단 의지가 전혀 없는 쪽지였다.

"어, 어떡해...!"

패닉에 빠진 아사히는 손 끝에서 피가 베어나올 정도로 손가락을 뜯었다.

다이치는 머리에서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

히나타를 따라 나오자 스가와라의 앞에는 말 그대로 피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사육사'들도 '경비견'들도 여기저기 뭉게진 채로 피 웅덩이 속에 누워 있었다.

히나타는 발목을 절었고 옆구리에서는 울컥울컥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빨리 나가요. 이곳의 투견들을 죄다 풀어놨어요."

안쪽에서 사육사들이랑 전쟁을 벌이고 있을 거에요."

초점 잃은 지친 얼굴로 히나타는 조용하개 말했다.

스가와라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을 다잡았다.

반드시 같이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게 누구야? 우리 사랑스러운 멍멍이잖아?"

갑자기 들려온 걸걸한 목소리에 히나타는 스가와라에게 바싹 붙어 주변을 살폈다.

"...개새끼"

히나타는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하하, 하늘같은 형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스가와라는 형이란 단어에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사라져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밤마다 아들래미가 괴로워서 참을 수가 없었단다?"

사내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기껏 도망가 놓고 여기로 다시 돌아오다니... 사실은 형님의 물건이 그리웠다거나?"

"꺼져... 죽여버린다..."

히나타는 스가와라를 등 뒤에 숨기고 거대한 총을 들었다.

"침대에서 우는 목소리 하나는 마음에 들었건만... 주인을 무는 개는 맞아야지?"

"미안하지만 내 주인은 따로 있어."

"너같은 쓰레기는 개로써라도 유키가오카의 부흥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누누히 말했건만..."

히나타는 주머니에서 꾸깃한 종이 조각을 꺼내 스가와라에게 쥐어 주었다.

"돌아보지 말고 뛰어요."

"그게 무슨...!"

"고마웠어요."

히나타는 커다런 총을 위로 들어 천장과 기둥을 쏘았다.

쏟아지는 콘크리트 더미에 스가와라와 히나타의 사이에 거대한 벽이 생겼다.

필사적으로 뻗은 손은 돌더미에 가로막혀 닿을 수 없었다.

"다이치와 아사히를 데리고 올게! 반드시 데리러 올게! 반드시! 반드시 같이 돌아 갈거야!"

크게 소리친 스가와라는 눈물을 쏟으며 지도를 따라 필사적으로 뛰었다.

..........................

다이치는 히나타가 홀로 스가와라를 찾으러 갔다는 것을 토대로 그가 투견장에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하나타의 방에서 나온 엠블럼을 가지고 조직에서 그나마 자신에게 호의적인 우카이를 찾아가자 추측은 사실로 바뀌었다.

"거기 잡히면 끝이야. 신중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투견장으로 가는 길을 몰래 일러주었다.

그리고 아사히와 서둘러 차를 몰아 알아낸 장소로 가던 중,  달리는 차로 뛰어든 건 상처투성이의 스가와라였다.

지저분한 바지 한장만 입고 발바닥에서 피가 흐르는 지도 모르고 맨발로 뛰어온 스가와라에 다이치와 아사히는 빠르게 차에서 내렸다.

"히나타가... 히나타가...!"

스가와라는 초점 없이 감기는 눈을 뜨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히나타의 이름을 계속 되내었다.

"구해... 구해줘야... 흐억, 흐어엉..."

스가와라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엉엉 울었다.

아사히는 웃옷을 벗어 스가와라에게 입혔다.

-콰앙!

도로 너머에서 폭음과 함께 불빛이 번쩍하더니 이내 연가가 피어 올랐다.

투견장 쪽이란 것을 깨달은 셋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악...! 히나타!!!!"

비명을 지르던 스가와라는 힘없이 쓰러졌다.

축 늘어진 그를 차에 태우고 다이치와 아사히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빠르게 차를 몰았다.

커다란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다이치와 아사히는 충격에 털썩 주저앉았다.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쳐왔다.

"어이, 아저씨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당신들도 유키가오카 놈들 중 하나야?"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자 한 소년이 히나타를 들쳐매고 있었다.

"히, 히나타!"

"히나타? 얘 이름이 히나타야? 난 얘가 이름이 없는 줄 알았는데?"

히나타는 죽은 사람처럼 늘어져 미동조차 허지 않았다.

"아직은 살아있어. 좀 있으면 죽을지도 모르지만."

"너는?"

다이치는 히나타를 받아들며 물었다.

"난 테루시마라고 하는데... 얘 완전 또라이 아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투견장을 탈출한 남매라고 생각했더니, 왜 다시 돌아왔어? 그러더니 개들을 다 풀어주지 않나... 일단 우릴 풀어줬고, 폭탄을 설치한게 나라서, 데리고 나오기는 했는데, 살 수 있으려나."

"고마워. 너는 이제 어쩌려고?"

다이치는 셔츠를 벗어 히나타를 둘둘 감쌌다.

"뭐, 다시 뒷골목으로 돌아가는 거지. 조심해. 건물을 폭발시킨 건 나지만, 그녀석, 유키가오카의 중심 소득원을 소멸시킨거야. "

그 말을 마지막으로 태루시마란 소년은 손을 흔들며 붙잡을 새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서 가자, 아사히."

"이제 어쩌지?"

"더이상은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다이치는 히나타를 안아든 팔에 힘을 주었다.

"형님은 이 투견장에 우릴 묻어버리려고 했던 것 같지만... 우린 역으로 이걸 이용할 거야."

아사히가 바라본 다이치는 이전과 전혀 다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우린 지금 유키가오카 세력의 중심을 부순거야. 그정도면 조직내에서 입지를 세우는데 기반이 되겠지."

"!? 다이치...?"

"까마귀 둥지의 주인이 되어야겠어."

다이치의 눈동차는 증오와 분노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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