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키시마와 카게야마는 말없이 서로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앉아 있었다.
방 안에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달무리, 넌 뭔가 알고 있나?"
어렵사리 말문을 연 카게야마는 여전히 츠키시마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뭘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츠키시마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번에 히나타와 보스가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거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냐고."
"몰라. 왜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너가 히나타를 더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그러는 너는 야차와 항상 붙어다니면서?"
"자기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해준다고..."
카게야마는 분한 듯이 중얼거렸다.
"괜히 파고들지 마, 그러다 순식간에 목이 날아갈 테니까."
츠키시마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정부의 개를 주워와서는, 까마귀로 만들다니.
2년전, 어린 상관의 변덕을 마주한 츠키시마의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뜬끔없이 불쑥 등장한 주제에 히나타의 옆에 찰싹 붙어 졸졸 따라다니는 카게야마가 츠키시마는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정부에서 내친 놈이라지만, 어떻게 그를 신뢰할 수 있는지.
히나타는 종종 카게야마와 비슷한 눈빛을 보인다.
무엇에 깎여나갔는지, 부서졌는지, 잔뜩 닳아버린 고통스러운 눈동자가 언듯 비칠 때면 츠키시마는 속이 쓰렸다.
처음 카게야마가 왔을 때, 츠키시마는 그의 모든 것을 조사하고 살폈다.
정부 소속의 훈련소 출신 요원, 깨끗하고 고고한 척 하는 정부의 가장 추찹스러운 시설.
카게야마는 그곳을 '졸업'한 몇 안되는 요원이었다.
아니, 졸업이라 칭하지만 생존이란 단어가 더 어울리겠지.
그런 끔찍한 곳에서 살아나온 카게야마의 눈에서 그러한 어둠이 비치는 건, 아마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히나타는 왜?
츠키시마는 직감적으로 그가 순탄치 못한 삶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지만, 카게야마의 그것을 본 후 히나타를 보았을 때 좀더 충격적으로 그의 내재된 어둠이 실감되었다.
자신이, 츠키시마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뒤를 지키는 것이다.
몸을 쓰는 타입이 아니니 자신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두뇌와 이성을 최대로 이용해 그를 백업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그는 언제나 히나타의 옆에 설 수 있다.
카게야마가 조직원으로 인정받아 히나타와 같이 싸우게 되었을 때, 전투의 백업을 맡은 츠키시마는 인정하기 싫은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항상 몸을 사리지 않고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듯이 자신을 던지는 히나타가, 등뒤에 카게야마가 있으니 폭주하여 날뛰지 않았다.
카게야마에게 등 뒤를 맡긴다.
항상 죽음에 가까이 살았던 그가 조금 더 안전해졌다는 사실이 카게야마가 싫어도 그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뭐, 여전히 마음에 안들지만,'
'눈치 없고, 멍청하고, 어휘력도 부족해서 항상 오해를 사고...'
츠키시마는 츳, 혀를 찼다.
'저런 멍청이를 곁에 두어야 한다니...'
츠키시마는 혀를 차자 뭐가 문제냐는 듯 바라보는 인상 나쁜 눈초리에 기분이 나빠졌다.
"아, 벌써 와 있었네? 불러놓고 늦어서 미안."
스가와라는 예의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스가상, 무슨 일이신데 저희 둘을 같이..."
스가와라가 다가오자 카게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새로운 임무가 좀 있어서, 두사람, 안싸우고 잘 기다리고 있었지?"
스가와라는 하하 웃으며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히나타는 푹신푹신한데, 카게야마는 찰랑찰랑하네-"
스가와라의 행동에 카게야마는 어떤 반응을 해야할 지 몰라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새로운 임무라니, 뭔가요?"
츠키시마는 안경을 살짝 들어올리며 말했다.
"응, 히나타랑 카게야마는 카타콤으로 가고, 츠키시마는 그 백업을 하게 될 거야."
"카타콤? 카타콤이라면... 단 둘이서 카타콤이라니,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아시잖아요?"
츠키시마가 놀란 말투로 말했다.
"지금 히나타가 다테에 설계도를 사러 갔어. 게다가 히나타, 카타콤 몇 번 가본 적 있다고 했고."
"카타콤에 가 봤다고요? 하지만 거긴 예전에 유키가오카가..."
"그래, 유키가오카가 생체 실험을 하거나 시체를 처리하던 곳이지. 다른 구역으로 숨어들기 위한 비밀 통로기도 하고."
스가와라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비쳤다.
"지하 도시, 아니, 지하 무덤 카타콤, 거기에 둥지를 튼 놈들이 있는 모양이야. 유키가오카가 그 꼴이 나고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는데..."
스가와라는 엄지 손가락으로 살짝 턱을 쓸었다.
"둘이면 되나요? 그 외에 카타콤의 구조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까?"
츠키시마가 말했다.
"없어, 애초에 가서 살아나오기도 힘든 곳이고."
"하지만 야차가 카타콤에 가 봤다는 건, 조직의 임무로 갔던 거 아닙니까? 혼자 가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츠키시마의 말에 스가와라의 얼굴이 굳었다.
"... 히나타가 레이븐에 들어오기 이전의 일이야, 그만큼 옛날이라 굳이 지도와 설계도를 구하러 다테에 간 거고."
"히나타가 조직에 들어온지 십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는데, 그 이전 일이라면..."
카게야마는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카게야마가 히나타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건 알아. 하지만, 굳이 파고들지 말았으면 좋겠어."
스가와라는 곤란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씁쓸함이 입꼬리에 묻어 나왔다.
그 모습에 츠키시마와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그 카타콤에 둥지를 튼 놈들은 누굽니까?"
츠키시마가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죠젠지라고, 용병단이야. 츠키시마는 미리 조사 좀 해줘. 임무 진행은 사흘 후야."
"네, 알겠습니다."
.........................................................................................................
"우와아-, 오이카와 너... 내가 그렇게 싫냐?"
마츠카와의 두꺼운 눈썹이 잔뜩 찡그려지며 휘었다.
"맛층,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우리 동료들 모두를 얼마나 아끼는 지 알고 있잖아?"
마츠카와는 오이카와가 자신에게 건낸 임무 계획서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네가 이 계획서를 작성할 때 네 머릿속에서 어떤 빅뱅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한테 입구도 출구도 정확치 않은 미궁으로 혼자 가라는 거야?"
"걱정 마~ 우리 뛰어난 요원들이 확실히 백업할거야. 백업의 지시만 따르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거야."
마츠카와는 씨익 웃으며 종이를 꾸깃꾸깃 구겨 오이카와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너나 가, 바보 상사. 안그래도 네놈이 다테의 후타쿠치 속을 벅벅 긁어놔서 고생했는데, 돌아오자마자 귀양 선언이라니."
"귀양이라니! 돌아올 수 있다니깐?"
"그렇게 호언장담할 수 있으면 네놈도 같이 가던가."
"좀 봐줘라, 맛층. 우리 인력난인거 알잖냐."
"몰-라, 혼자서는 절-대로 못가."
마츠카와는 털썩 주저앉더니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담담한 표정으로 교과서 읽듯이 땡깡을 부리는 마츠카와에 오이카와는 머리가 아파왔다.
"...치즈버거 일주일치."
"한달."
"2주."
"..."
"알았어, 한달!"
"예-이~"
이겼다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밍기적거리며 일어난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의 얼굴에 맞고 떨어졌던 구겨진 종이를 다시 주워 주섬주섬 펼쳤다.
"내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내 무덤에다 햄버거 한달치 가져다 놔."
"맛층! 재수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빨리 움직이기나 해!"
"네에~"
........................................................................................
"아아, 좋은 곳이네, 37구는."
테루시마는 독한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반짝반짝하고 술도 맛있고... 예쁜 여자들도 많고."
쿡쿡 웃으며 옆에 앉은 여자를 끌어안은 그는 술을 머금은 채로 질척하게 혀를 섞었다.
"아가씨, 추천 좀 해줘봐. 이 37구에서 제대로 놀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귓가에 속삭이듯 말하며 살짝살짝 깨물어오는 테루시마에 여자는 간지럽다는 듯 꺄르르 웃었다.
"당신이 뭘 하고 싶냐에 달렸지. 일확천금을 노리고 왔다면 카지노로, 술이라면 어디든지 넘쳐나고, 스릴을 원한다면 아레나로 가면 되지."
"아레나?"
"비전투 구역인 37구에서 유일하게 싸움이 허용된 곳이지. 격투장 같은 거야."
여자의 말에 테루시마는 씨익 웃었다.
"재밌겠다."
....................................................................
"뭐야, 재미없게. 너무 약하잖아?"
테루시마는 경기장을 밝히는 스포트라이트에 눈이 부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는 따분하단 표정으로 관객들을 슥 둘러보았디.
"너, 좀 쎄 보인다. 나와! 날 좀 더 즐겁게 만들어달라고?"
혀를 베-하고 내밀며 테루시마가 말했다.
스포트라이트에 반사된 피어싱이 반짝이며 빛났다.
"이야, 아직 날이 새려면 한참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달리면 어떡해?"
허스키하고 남자다운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리자 테루시마는 휙 고개를 돌렸다.
"어라라, 보스가 등판하셨네?"
흥분한 듯한 번뜩이는 보쿠토의 눈빛에 테루시마는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직 쾌락을 위해 살아가는 짐승들의 눈빛이 허공에서 강렬하게 얽혔다.
"보스, 제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카아시는 몰려오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재밌을 것 같네. 혹시 내가 이기면 여기 나 주는 건가?"
테루시마가 킬킬거리며 몸을 풀었다.
"죽지는 마, 나도 즐거워지고 싶으니까."
보쿠토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스릴에 대한 욕망이 두 사람을 강렬하게 감쌌다.
.................
테루시마는 피가 섞인 침을 퉤하고 뱉어냈다.
시야가 흔들거리며 어지러운 것이 머리를 제대로 맞은 듯 했다.
"괜히 보스가 아니잖아? 오랜만이네, 이렇게까지 얻어 맞은 거."
보쿠토는 거칠게 숨을 들이쉬며 즐거운 듯 웃었다.
"왜, 날 죽이고 여길 차지해보지?"
뚜둑뚜둑 소리를 내며 어깨를 돌리는 보쿠토에 테루시마는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완-전 불타오르잖아...!"
테루시마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미안하지만 난 죽기 전까지는 승패가 갈린게 아니라고 보는 주의라."
"그런거 나 엄청 좋아해."
보쿠토도 자신만만한 얼굴로 자세를 바로 잡았다.
"보스, 죄송하지만 나중으로 미루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불쑥 나타난 아카아시는 지친 표정으로 보쿠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 아카아시, 타이밍!"
"제발 정해진 스케쥴에 좀 따라주세요. 원래 지금 여기 계시면 안되는데 잠깐만 들린다고 때쓰셔서 온 것 아닙니까... 자꾸 이런 식으로 하시면 저 파업합니다."
아카아시는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간만에 좀 재밌는데!"
보쿠토가 징징거리듯 말하자 아카아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보스가 일 안하시면 이 37구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하지만..."
"보스."
"..."
"하아..."
아카아시의 싸늘한 표정에 움찔한 보쿠토는 입을 쭉 내밀고 궁시렁거리는 시늉을 했다.
"미안하지만, 한 조직을 이끌어가는 보스로서 내가 좀 바쁘거든? 오늘은 이만 가야된데."
보쿠토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말했다.
"뭐야, 난 아직 한참이라고?"
테루시마는 팔을 머리 뒤에 얹으며 투덜거렸다.
"문라이즈 아울의 보스랑 붙으려면, 뭐 전쟁이라도 치뤄야하나?"
테루시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보쿠토의 커다란 손이 그의 턱을 잡아채 부숴뜨릴 듯이 꽈악 쥐었다.
손에 힘을 주며 테루시마를 들어올린 보쿠토의 눈은 좀 전까지의 즐거움이 가득한 눈빛이 아니라 서늘한 광채가 담긴 맹수의 눈을 하고 있었다.
"내 구역에서 나한테 기어오르지 마. 순간의 유희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꿰둟리는 듯한 기분에 테루시마는 오싹함을 느끼며 자신을 붙잡은 보쿠토의 팔목을 잡아 떼어내려고 하였다.
거칠게 테루시마를 바닥에 던진 보쿠토는 손을 두어번 털고 휙 돌아 아카아시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강해, 강해! 다시 싸우고 싶어! 죽이고 싶어!'
테루시마의 머릿속에 전쟁같은 사고방식이 날뛰었다.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압도적인 우월감에 테루시마가 느낀 것은 공포가 아닌 기분좋은 오싹함이었다.
이기고, 이기고, 또 이기고 싶다.
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더 날뛰고 싶어...!

에러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