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 키스해줘."
"당신은 키스를 조를 때 나를 벨라라고 부르네."
"Bella Luna, 아름다운 달이란 뜻이니까, 이 어두운 도시를 비추는 당신에게 걸맞은 이름이지."
남자는 희고 가녀린 여인의 목덜미에 입술을 떨궜다.
"나의 아름다운 달."
여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아름다운 달빛."
비정한 도시에서 그녀가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그녀 스스로도 잘 알았다.
하지만,
"사랑해. 사랑해줘."
그녀가 평생에 원해온 단 한가지, 사랑과 온기.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낭떨어지로 걸어가게 만들었다.
"벨라, 사랑해."
그것이 거짓임을, 처음에만 달콤한, 끝에는 눈물이 날 만큼 쓸 것을 알아도,
"나도 사랑해..."
여인은 그에게 안겨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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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죽을 거야."
오이카와가 웅얼거리듯 말했다.
손바닥에 얼굴을 묻는 오이카와에 이와이즈미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건 내 탓이지."
오이카와는 허망함과 공허함이 자신을 옥죄는 것을 느꼈다.
"도미넌트 이글을 무너뜨리기 위한 무기를 하나 더 얻었어."
이와이즈미는 나즈막히 말했다.
그것이 오이카와에게 이르지 못할 말이란 것을 알았지만.
"평생 온기와 사랑만을 그려온 여자를, 사랑한다는 거짓말로 꾀어서 안았고, 그녀를 버렸어. 이제 그녀는 어느 쪽에도 설 수 없게 되었어."
거짓 사랑을 택하고, 조직을 배신한 여자는, 거짓 사랑에게 다시 버림 받았다.
"...후회하지는 않아. 우리는 나라를 위해 임무를 수행할 뿐이니까. 몇번이라도 똑같이 할 거야."
허니트랩은 할 게 못되는구만.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씹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죄책감은 어쩔 수 없어. 난 괴물이야."
오이카와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렸다.
"괴물을 잡기 위해선 괴물이 되는 거야."
이와이즈미는 이를 갈며 말했다.
적에게 항상 가차없는 오이카와는, 이 정신나간 도시의 상처 입은 여자들을 이용할 때마다 못견디게 괴로워했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혀가 뿌리부터 썩어들어 간다고 생각했다.
사탕 발림으로 외로운 여인들을 지옥으로 밀어낸 죄로.
"죽은 동료들을 생각해."
이와이즈미는 그렇게 말하며 오이카와의 머리에 수건을 던져 얼굴을 가려주었다.
"대장이 무너지면 우린 다 죽어."
이와이즈미는 그의 머리통을 꾸욱 누르고는 쿵쾅거리며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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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타는 머리를 검게 물들이고 커다란 안경을 쓴 채로 나타났다.
그 모습에 카게야마와 츠키시마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야차, 그게 무슨 꼴인가요."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히나타는 보급된 무기를 점검하며 말했다.
유키가오카의 생존자를, 저주스러운 혈육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에 히나타는 아버지에게 받은 주황색 머리를 숨기려 머리를 물들였다.
"아는 사람...?"
카게야마는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로 되내었다.
"뭐, 가보면 알겠지만. 츠키시마, 백업 잘 부탁해."
"부디 이번에는 무전기 부수지 말아주세요."
"윽, 알았어."
"네놈도 마찬가지다, 그늘."
"일부러 부수는 것처럼 말하기는."
카게야마의 투덜거림에 츠키시마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굳이 지적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네 상관이란 걸 기억했음 좋겠는데."
"1년 먼저 들어왔다고 엄청 생색내네. 툭 치면 부러질 놈이"
"뭐? 대가리에 저격 한번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까?"
"그 전에 네몸 모가지가 떨어질 것 같은데?"
으르렁거리는 두사람에 히나타는 둘의 어깨를 밀어내며 싸움을 중재했다.
"왜 또 쓸데없이 싸우는 거야? 카게야마, 츠키시마 말이 맞아. 일단 쟤가 선배니까 말 들어야지. 츠키시마 너도, 괜히 시비걸지 마."
히나타의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사람은 쯧하고 혀를 찼다.
"여기가 무슨 시계 공방이야, 허구헌날 혀를 차고 앉았어? 츠키시마는 빨리 백업 준비 들어가고, 카게야마는 빨리 차 준비해."
히나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카게야마는 둘째치더라도, 어른스러운 츠키시마는 카게야마 앞에만 서면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개와 고양이도 아니고, 왜 이렇게 사이가 안좋은지.
자신을 따라 조직으로 들어온 카게야마는 쭈볏거리기는 했지만 보스나 다른 상관들을 꽤 잘 따르는 편이었는데, 유독 츠키시마랑은 상성이 안좋았다.
'백업 한테 대들면 임무에서 차질이 생길텐데 말이야.'
잠입 등의 임무에서 길을 알려주는 것도, 적의 접근을 알려주는 것도 백업인데, 이어폰 너머로도 항상 투닥거리는 두사람에 카게야마의 백업에서 츠키시마는 대부분 제외되는 편이었다.
히나타의 백업은 항상 츠키시마로 정해져 있기에 카게야마와 히나타의 공동 입무에는 어쩔 수 없이 카게야마의 백업도 츠키시마가 맡았지만.
히나타는 카타콤에서 만나게 될 미지의 인물과의 조우에 대한 긴장감에 마음이 조급했다.
조급하고 불안해서, 마음이 답답했다.
'츠키시마도, 카게야마도 없이, 혼자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혹시 마주칠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그들이 목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히나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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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수로를 따라 걸으니 습하고 기분 나쁜 냄새가 훅 끼쳐왔다.
곰팡이 냄새, 힘없이 흐르는 검은 물소리, 지하에 울리는 발걸음 소리.
오랜만인데, 아주 예전의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떠오르는 익숙한 감각에 히나타는 몸서리를 쳤다.
투견에서 사냥견으로, 목줄이 없어도 그들이 시키는 대로 임무를 수행하고 다시 그 지옥으로 스스로 되돌아가던, 악몽의 길이었다.
어린 동생을 떠올리며, 자신이 도망가도, 임무중 죽어버려도 안되는 유일한 이유, 사랑스러운 동생을 위해, 히나타는 몇번이고 이 수로를 지났다.
눅눅한 공기 속에 울리는 비명소리, 피냄새가 아직도 떠다니는 것 같았다.
'넌 무억을 위해 버티고 있어?'
흐릿해져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 물었던 질문이 귓가를 스친다.
누구더라, 그 질문을 했던 건.
'난 살아남을 거야. 살아남아서, 다 죽여버릴꺼야.'
내가 멍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그는, 누구였지.
지옥 속에서도 죽지않은, 생기있는 눈동자를 가졌던 그는 누구였지.
"...나는 ----야."
그의 이름을, 들었던 것 같은데.
히나타는 습기가 온 몸에 들러붙어 자신을 주저앉히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귓가에 울리는 츠키시마의 목소리에 히나타는 정신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생각하며 정신을 다잡았다.
-300미터 앞에 카타콤 입구입니다.
"야차, 누가 있어."
카게야마는 목을 길게 빼고 앞을 살피며 말했다.
"누가...?"
히나타는 등 뒤에 맨 총을 조심스럽게 꺼내들었다.
"...아는 사람인 것 같은데."
카게야마는 미간을 찡그리며 조용하게 말했다.
-누굽니까?
"세모 눈썹 맛층상이네."
히나타는 튀어나와 있는 기둥 뒤에 조심스레 숨으며 말했다.
"아오바죠사이가 왜...? 게다가, 혼잔가? 정신이 나갔군."
카게야마는 허리를 낮추어 그를 살폈다.
"어쩔까, 인사나 나눌까?"
"야차, 그냥 쏴 버리는 건 안될까."
카게야마가 총에다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아서라. 쓸데없이 적을 늘릴 시기는 아니니까."
히나타는 카게야마를 저지하고는 바닥에서 돌맹이를 살포시 주웠다.
"아!"
히나타가 던진 돌맹이는 가볍게 날아 마츠카와의 뒤통수에 직격했다.
빠르게 주위를 살피는 마츠카와에 히나타는 기둥 뒤에서 나와 손을 붕붕 흔들었다.
"안녕? 또 보네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마츠카와에 히나타는 안경을 살짝 벗었다가 다시 썼다.
검은 머리의 소년이 히나타임을 알아본 마츠카와는 경계를 살짝 풀었다.
"네가 왜...? 머리는 왜 그 꼴이고 안경까지... 카게야마도 있네."
마츠카와는 히나타와 카게야마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맛층상은 여기서 뭐해요?"
"내가 여기 놀러 왔을까?"
마츠카와는 어깨를 으쓱이며 히나타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카게야마는 그의 손을 쳐내고 히나타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어라, 난 그냥 귀여운 곱슬머리를 쓰다듬고 싶었을 뿐인데."
"정부의 개가 마피아 조직의 간부를 너무 귀여워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카게야마에 마츠카와는 손을 거두었다.
"그래서, 아오바죠사이가 원하는 건, 죠젠지? 아니면 유키가오카?"
히나타가 천진한 얼굴로 묻자 마츠카와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마피아들 한테 정보를 제공하다니, 그러다 완전 모가지라고?"
"난 정보 제공자의 신변은 보호해주자는 주의에요."
히나타의 천연덕스레 말하는 모습에 마츠카와는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귀엽네. 귀엽고, 영악해."
"미안하지만 우리쪽에 방해가 될 것 같으면 맛층상을 여기서 죽여버릴지도 몰라요?"
"웃으면서 그런 무서운 말 그만둬."
"난 그냥 정찰을 온 거야. 요즘들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죠젠지라는 이름의 용병단을."
"난 입구로 안들어가, 수로를 계속 따라서 조용히 둘러보다가 돌아갈 거야. 너희는..."
"우리는 우리 알어서 할 게요. 그럼 죽지 말고 열심히 잘 해봐요."
히나타는 빨리 사라지라는 듯 계속 마츠카와를 쳐다보았다.
마츠카와는 그런 히나타를 힐끔힐끔 돌아보았지만 히나타는 그가 시야에서 살아질 때까지 계속 그를 응시했다.
'요즘들어 점점 거칠어지는데...'
마츠카와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소년의 얼굴에 어린 차가운 빛에 느낀 공포의 감각이 진한 여운을 남겼다.
"정부놈들이니까, 분명히 상부에 보고했을 거야. 츠키시마, 아오바죠사이 쪽을 해킹하던가 해서 보고서 기록을 좀 살펴봐. 철저한 사람들이니 아마 별로 남아있는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네, 일단 찾아볼게요.
"가자, 카게야마. 아 기분 나쁜 굴의 거주자들을 만나러."
히나타는 허리를 곧게 펴 자세를 잡고 숨을 들이쉰 후 입구로 발을 옮겼다.
찰박거리는 축축한 발걸음 소리가 나즈막히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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