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투견장에서 빠져나온 후, 나는 이 카타콤으로 숨어들었어. 그리고 카타콤에 있던 몇 안되는 놈들을 폭탄으로 날려버렸지."
테루시마는 쇼파에 팔을 걸치고 고개를 살짝 젖혔다.
"그리고는 카타콤의 입구, 출구를 꽁꽁 잠궈놨지. 그때부터 점찍어 놨거든."
눈을 살포시 감고 이제는 10년이란 시간이 지나버린 과거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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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는, 질서도 뭣도 없는 일명, '쓰레기장'.
거기서 테루시마는 테어났다.
주정뱅이 아버지와 얼굴도 모르는 사창가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3살 쯤 되어서야 전화부를 뒤적이던 아버지에게서 유우지라는 이름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라는 사내는, 천성이 악한 사람은 아니였지만, 하룻밤 정을 나눈 여인이 버리고 간 핏덩이를 책임질 능력따위는 없었다.
테루시마는 폭력과 무질서에서 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어린아이인 그는, 당연하게도 약했다.
거친 무법 도시의, 가장 지저분하고 어두운 골목에서, 소년은 어린 나날을 매일 패배하며 지냈다.
패배감과 무력감, 그것은 소년이 몸서리 치도록 혐오하는 감각이었다.
밑바닥의 밑바닥에서 억눌리는 감각, 소년은 자연스레 승리에 목메게 되었다.
엉망이 될 때까지, 아파도 물러서지 않고, 소년은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작은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패배하고 도망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우월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살아남던 테루시마는, 작은 소년은, 어느날 그의 지저분한 골목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지옥으로 끌려갔다.
-네 아버지가 진 빚 대신이야.
그 말에 소년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제대로 된 이름조차 지어줄 능력도 없는 쓰레기의 술값, 노름값 대신으로 이런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는 운명이라니, 그는 절대로 그에 굴복할 수 없었다.
살아남자, 살아남는다.
온 몸이 찟어진 채라고 해도, 반드시 살아 나가서 아버지를, 사육사들을, 모두를 죽여버릴 거야.
테루시마의 눈에는 항상 나락의 불빛이 타올랐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체념하고 앉아있을 여유가 없다.
강해지고, 살아남고, 다시 일어서서, 반드시.
그는 항상 정신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무릎을 세워 일어났다.
절대로 안 져.
난 이길거야.
승리자가 되는 건 결국 내가 될 거야.
소년은, 테루시마는 하루 하루를 버텨 살아남았다.
투견 중 실력이 좋은 아이들은, 종종 '사냥견'이라고 부르며 용병으로 사용될 때가 있었다.
유키가오카 소속의 용병으로, 테루시마는 종종 투견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도망갈 위험이 있어 폭탄이 달린 목줄은 한 채였지만.
테루시마는 나갈 때 마다 카타콤의 구조를 열심히 외웠다.
고문과 생체 실험으로 비명과 혈향이 넘쳐 흐르는 어두운 지하도시에, 소년의 복수심도 함께 넘쳐 흘렀다.
어느날 소년은, 자기 옆에서 말없이 임무를 수행하는 소년의 목에는,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너는 누구야? 라고 물었을 때, 곧 닳아 없어질 것만 같이 지쳐버린 눈동자가 자신을 느릿하게 돌아보았다.
'나는 이름이 없는데.'
이름없는 소년은, 여동생이 그들 손에 있어 목줄이 없어도 도망가지 않고 자기 발로 지옥으로 걸어 돌아갔다.
테루시마는 이름 없는 소년에게 관심이 생겼다.
얼마 후, 테루시마는 사육사 중 하나가 이름없는 소년을 괴롭히며, 자신을 '형'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았다.
이름없는 소년은 담담하게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테루시마는 자신은 살아남아 이곳에서 나간 후,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너도 살아남아 복수하라는 테루시마의 말에 이름없는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름없는 소년은 목줄을 끊고 달아났다.
자신을 지옥에 묶어놓은 동생을 데리고, 살을 찢어 목줄을 끊고, 이름없는 소년은 사라졌다.
테루시마는 조금 화가 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더러운 사육사들의 몸뚱이를 넘고, 그는 혼자 가버렸다.
하지만 차라리 죽고 싶어했던, 하지만 자신의 목에 달린 동생의 목숨 때문에 죽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소년을 떠올리며, 그가 행복해졌으면, 하고 빌었다.
그리고 그는 보다 확실한 희망을 얻었다.
도망갈 수 있어.
달아날 수 있어.
'복수할 수 있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름없는 소년의 도망이 더이상 사육사들의 화제에 오르지 않게 되었을 때 즈음일 것이다.
달빛조차 스미지 못하는 어두운 방의 무거운 철문이 조심스레, 그러나 녹슬은 소리가 요란스레 울리며 열렸다.
테루시마는 또 크루엘라가 자신을 희롱하러 오나 싶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조심스레 문을 여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최근에 새로 온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소년에게 푹 빠져있었다.
문이 완전히 열리고, 열린 틈새로 들어온 빛이 비춘 것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름없는 소년이, 총과 칼을 두르고서, 피에 젖은 채 서 있었다.
"안녕."
그때가 이름없는 소년이 먼저 말을 건 첫번째였다.
"최근에 새로 온, 17살 정도의 남자, 회색머리, 어딨어?"
그는 조급해 보였고, 말이 뚝뚝 끊길 정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크루엘라의 새로운 펫이 된 모양이던데... 그보다도 너, 왜...!"
소년은 크루엘라의 이름을 들은 후, 테루시마에게 열쇠를 던지고 다시 방에서 나가버렸다.
테루시마의 외침 따위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멍청이, 이번엔 또 누굴 위해 몸을 던지는 거야?
기껏 동생과 함께 자유로워졌으면서, 이제 널 묶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또 누굴 위해.
살아남아, 살아남아! 반드시!
테루시마는 멀어져가는 소년의 발소리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가 남기고 간 열쇠로 자유로워진 테루시마는 보이는 족족이 무기를 주워들고, 반쯤 미쳐버린, 굶주린 투견들을, 아이들을 죄다 풀어 놓았다.
당황하는 사육사들을 하나하나 죽이며, 테루시마는 발끝에서 부터 정수리까지 단숨에 직격하는 거대한 쾌감에 사로잡혔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테루시마는 그 어느 때보다, 투견으로써 경기에 나갔을 때보다 더, 미친듯이 날뛰었다.
크루엘라의 방에 갔을때, 그를 맞이하는 건, 머리통이 산산조각이 난 채로 버려진 그녀의 시체였다.
'내가 죽일 수 있었으면 좋았을걸.'
그런 생각을 하며 테루시마는 창고에 쌓여있는 폭탄들을 죄다 끌고나와 건물의 축 역할을 하는 기둥 주변에 여기저기 던져놓았다.
다같이 죽어버려, 쓰레기들.
폭발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한 테루시마는, 이름없는 소년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소년은 그가 평생 미워했을, 반쪽의 같은 피가 흐르는 형의 시체 옆에 쓰러져 있었다.
죽었을까, 하고 다가가자, 다행이다-따위를 중얼거리며 멍하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무엇이 다행인 걸까.
이름없는 소년이 찾았던 크루엘라의 새로운 펫은 어디에도 없었다.
테루시마는 주변을 죽 살펴보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했다.
천장을 무너뜨려 길을 막고, 회색머리의 그 남자 홀로 도망치도록 했겠지.
그는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을까.
너무나도 지쳐서, 곧 흩어져 버릴 것 같던 소년은 어디로 가고, 하얗게 살이 오르고, 반짝거리는 눈을 가진, 테루시마가 모르는 소년이 되어 폐허가 되어가는 투견장의 바닥에 누워있었다.
행복했나보다.
테루시마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소년을 들쳐매고 설치해둔 폭탄을 하나 둘 터뜨리며 이제는 과거가 될 악몽에서 걸어나왔다.
이름없는 소년이 흘리는 피가 등을 적셨다.
폭음에 귀가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스스로 부수고 있는 악몽 속을 걸으며, 테루시마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결국 나는 고장나고 말았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머리속에서, 가슴속에서 소란스레 휘몰아치는 것의 정체를 테루시마는 알 수 없었다.
기쁨인지 행복인지, 분노인지, 슬픔인지, 아니면 공허일지 모르는 수많은 감정들이 쏟아져 테루시마는 오히려 멍해졌다.
투견장이 무너지고, 사육사들은 죽었는데, 살아남았더라도 이제 죽을텐데, 테루시마의 가슴 언저리는 시릴 만큼 공허했다.
부족해.
테루시마는 무심코 내뱉은 말에 깜짝 놀랐다.
이내 테루시마는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숨이 넘어갈 듯 웃으면서, 울었다.
매캐한 연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테루시마가 출구에 다다랐을 때, 검댕이 잔뜩 뭍은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죽어 있었다.
테루시마는 그가 카타콤에서 개발한 약을 투견장에 넘기던 남자였다는 것을 상기해 냈다.
테루시마는 남자의 꽉 쥔 손을 펼쳐 그가 가지고 있던 USB를 집어들었다.
언젠간 쓸 일이 있겠지.
테루시마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문을 나섰다.
굉음과 함께 오랜 세월 테루시마를 가두었던 투견장이 무너져 내렸다.
발바닥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이름없는 소년의 미약한 심장 박동이 등을 통해 전해졌다.
저 멀리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유키가오카의 사람일까.
살짝 경계하며 무너지는 건물이 만들어낸 먼지 바람 속에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그들을 살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남자 둘이서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하고 투견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아저씨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당신들도 유키가오카 놈들 중 하나야?"
테루시마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든 두사람은 그의 등에 엎힌 이름없는 소년을 보고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외쳤다.
"히나타!"
히나타, 그게 네 이름이구나.
두사람 뒤에 세워진 차 안쪽에, 쓰러져있는 회색 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가족이 생겼구나.
이름을 지어주고, 걱정도 해주고, 이렇게 달려오는.
테루시마는 처음으로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안쪽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끼며, 테루시마는 이름없는 소년, 아니, 히나타와 그의 가족들을 뒤로하고 카타콤으로 향했다.
폭탄을 던져놓아서 유키가오카의 조직원들을 쓸어버린 후, 테루시마는 수로의 모든 수문을 개방한 채 입구와 출구를 모두 잠구고 밖으로 나왔다.
'물청소를 하고 나면 좀 깨끗해지겠지.'
이중, 삼중으로 잠긴 문을 바라보다가, 테루시마는 자신이 나고 자랐던 뒷골목으로 돌아갔다.
허름하고 쾌쾌한 집 안에 들어가자, 아버지는 한 손에는 술병을 든 채, 자신의 토사물 위에 엎어져 죽어있었다.
테루시마는 싸늘하고 축축한 시체를 내다버리고, 더러운 집안을 청소했다.
뜨거운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샤워기로 오랫동안, 꼼꼼히 몸을 문질러 닦은 후 집안을 뒤져 낡은 옷가지를 꺼내 입었다.
텅 빈 방에서, 테루시마는 간만에 깊은 잠을 잤다.
하루를 꼬박, 차가운 방 바닥에서 잠을 잤다.
목줄도 수갑도 없이, 솜이 다 죽은 쿠션을 배고.
꿈에서는 주황색 머리의 소년이 울고 있었다.
그 옆에선 자신이 울고 있었다.
테루시마는 떨리는 두 소년의 작은 등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테루시마는 멍하게 누워있다가 밍기적거리며 일어나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과일 통조림을 뜯어 입에다 억지로 쑤셔넣었다.
잊고 있었던 단맛과 새콤함에 턱이 아리고 침이 고였다.
테루시마는 필요한 것들을 긁어모아 집에서 나왔다.
하나 남은 폭탄을 설치하고 나오느 것도 잊지 않았다.
과거는 다 태워버려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등 뒤로 느껴지는 열기를 무시한 채 테루시마는 길을 나섰다.
테루시마는 싸워야만 했다.
싸우고, 이겨서 스스로의 우월성을 증명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용병단에 들어가 전투원이 되어 싸우고, 돈을 벌었다.
투견장의 싸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졌다.
용병으로 일하던 중, 히나타를 데려갔던 남자들이 선셋 레이븐이라는 이름의 마피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년 후, 유키가오카는 선셋 레이븐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형태만 겨우 남기고 무너져 내렸다.
유키가오카가 괴멸 직전까지 갔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후, 테루시마는 이제 터만 남은 투견장을 지나 카타콤으로 향했다.
억지로 열려고 한 흔적은 있었지만 여전히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녹슬어서 잘 들어가지 않는 열쇠를 억지로 꽂아넣어 문을 열고 익숙한 통로를 지났다.
지하는 여전히 물기가 덜 마른 채였지만 함정이나 부비트랩은 고장나지 않고 작동하는 것에 테루시마는 살짝 놀랐다.
"좋아, 아주 좋아."
테루시마는 수로를 따라 카타콤을 쭉 둘러보고서, 그곳을 보금자리 삼기로 결정했다.
"집은 구했으니, 이제 가족을 구해볼까?"
그렇게 지하 무덤 카타콤을 거점으로 한 용병 조직, 죠젠지가 태어났다.
뒷골목에서 살아남은 소년들을 모아서, 테루시마 유우지의 즐거운 집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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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루시마의 이야기가 끝나자 히나타는 꺼두었던 통신기를 켰다.
츠키시마의 화난 목소리가 귓가에서 크게 울렸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뭘 하려는 건데?"
히나타는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찻잔에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글쎄, 일단은 그 USB에 들어있던 유키가오카가 개발한 약들을, 다시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
테루시마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게 얼마나 끔찍한 물건인지 알면서... 그 약을 부활시켜서 네가 얻을 수 있는게 뭐야?"
"있지, 히나타? 그날 투견장을 폭파시키면서도, 난 아직 모자라다고 느꼈어. 복수랄까, 이름만 거창할 뿐이지만... 크루엘라도, 아버지도,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한게, 난 너무도 아쉬워. 게다가 유키가오카도 너네가 거의 다 부숴버렸잖아?"
히나타는 손가락을 꼬며 말하는 테루시마를 말 없이 쳐다보았다.
"요즘 유키가오카가 뭘 꾸미는 지 알아? 걔네, 선셋 레이븐에 반격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어."
"뭐?"
테루시마의 말에 히나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꼴이 나서도 유키가오카가 버틸 수 있던건, 해외 자금줄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잖아? 그런데 그놈들, 그거까지 다 털어서 너네를 치려고 한다니까?"
히나타는 여전히 말 없이 그를 응시했다.
"난 계속 기다리고 있었거든. 유키가오카에 희망이 비출 날을. 좀 살아났다 싶을 때, 이젠 살았구나-하고 안심한 순간, 다 날려 버릴려고."
테루시마는 폭탄이 터지는 모양을 손으로 흉내내며 펑-하는 소리를 냈다.
"그래서 요 근래에는 유키가오카 산하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척 하면서 이것저것 도와주고 있지. 완전 내부인이 되었다니까? 정보를 막 술술 불어! 참나, 아무리 절박해도 그렇지, 이성을 잃은 꼴 하고는..."
테루시마는 키들키들 웃으며 말했다.
"유키가오카의 완전 소멸이 목적이라는 거야? 그러면 그 약은 왜?"
"음...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일단은 유키가오카에 연관된 놈들을 싹 다 모아다가 가둬놓고, 그 약을 먹일 예정이야."
"뭐...?"
"유키가오카는 가족 중심의 조직이니까, 자기들이 만든 그 약을 먹고 서로서로 죽고 죽이고, 그리고 약발이 떨어지면 절규- 그런거지. 어때, 복수로서는 완벽하지 않아?"
히나타는 테루시마의 대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 그 약을 의뢰인들에게 퍼뜨린 이유는 뭔데?"
"실험이랄까? 제대로 구현한게 맞는지 시험해보고 싶었어. 이놈이고 저놈이고, 복용한 놈들 죄다 잡혀버리긴 했지만. 아마 죠젠지라는 이름도 여기저기 퍼져나가겠지."
"우리는 유키가오카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현재 그들이 거점으로 삼고 있는 최후의 구역을 차지할 거야. 그 후에는 점차 성장시켜 나가야지."
어느새 찻잔의 차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후우... 그래. 그렇구나."
히나타는 차가워진 잔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요즘 코트 내의 분위기가 아주 이상해. 이번 달에만 4번인가 신생 조직들의 의뢰를 받았어. 기존의 중심 세력들을 뒤집으려고 다들 안달이 나 있지."
"폭탄 장사도 하고 있다며."
"역시 선셋 레이븐, 정보망이 괜찮네. 그건 그냥 취미야. 폭탄 만드는 거, 재밌거든. 후기 작성을 대가로 싸게 팔고 있지. 효력을 시험하는데 최고거든."
"...그러니까 너희 목적은 유키가오카라 이거지..."
"미안, 약이 돌아다녀서 놈들이 뭔가 꾸미는 줄 알았어? 뭐, 꾸미고 있기는 하지만, 너희는 유키가오카에 신경쓰지 말아줘. 내가 날려버릴 예정이라서."
히나타는 고개를 젓히고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테루시마가 하려는 일은 확실히 정신 나간 짓이다.
가족들을 모아놓고 학살을 벌이게 만든다- 상상만 해도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이제 히나타에게 선셋 레이븐 이외의 일은 모두 어찌되어도 좋을 일이었다.
"늦었지만, 그날 날 데리고 나와줘서 고마워."
히나타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뭐? 하하, 네가 날 거기서 꺼내줬으면서 거기에 감사하는 거야?"

테루시마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난 널 꽤나 좋아하거든. 너, 야차라고 불린다며? 제대로 된 정보조차 없는 까마귀의 비밀병기."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지. 나 이제 일어나도 될까? 요즘 이래저래 처리할 업무가 많아서."
"아쉽네... 좀 더 이야기 나누면 좋겠는데."
히나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었다.
"히나타."
테루시마는 방에서 나가려는 히나타를 불러 세웠다.
"왜?"
"내가 아까 말했잖아? 난 결국 고장나 버렸다고."
히나타는 씁쓸한 빛을 띤 그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난 유키가오카를 불태우고 나서도, 만족할 수 없을지도 몰라. 싸우고 싸우다 죽어버리던가, 아니면 완전히 미쳐서 이 도시를 다 불태워버리던가, 그럴지도 몰라."
"난 그저 보스를 위해 싸울 뿐이야. 너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데?"
히나타의 물음에 테루시마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테루시마 유우지는 오직 즐거움만을 추구한다.
더 큰 자극을 위해, 테루시마는 움직인다.
유희와 자극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날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그는 전쟁터에 뛰어들고, 술을 들이키고, 여자를 안는다.
하지만 쾌락이 주는 만족감은 일시적인 것으로, 어느새 보면 손 안의 모래처럼 사라져 버린다.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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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루시마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오자 카게야마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엄청난 표정 하고 있네. 화났어?"
-저는 화났습니다.
"츠키시마..."
히나타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볼 일은 다 끝난거지? 가자, 히나타."
카게야마는 굳은 얼굴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언젠간 말해주겠지. 너가 편할 때 말해줘."
그렇게 말하는 카게야마의 얼굴엔 침울한 빛이 가득했다.
"난 그냥, 내가 좀 더 너에게 의지가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야."
히나타는 터벅터벅 걸어가는 카게야마의 등을 바라보았다.
미안하지만, 스스로도 부정하고픈 과거를 굳이 나누고 싶지 않았다.
동정도 연민도 그에겐 필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오늘과 내일 뿐, 어제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카게야마는 말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온 몸으로 불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우뚝 서서 주변을 살핀더니 죠젠지의 사람을 손짓으로 불러 조용히 뭔가를 속삭였다.
"뭐야, 뭐했어?"
"통풍구에 누가 숨어있어서 알려줬어."
"...그거 맛층상 아냐?"
"그렇겠지."
"...괜히 엄한데 화풀이하는 거 아냐."
"화 안났거든?"
"다음에 만나면 노발대발 하겠네."
"정부놈들 알게 뭐람. 다 죽어버리라지."
"어허, 착한 아이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시끄러, 멍청아. 빨리 여기서 나가. 축축해서 짜증나니까."
"역시 화났구만."
"화 안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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