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아시는 지쳐 쓰러진 소년을 뒤에 숨기듯 가리고는 눈으로 보쿠토와 츠키시마를 찾았다.
타이밍이 너무 나빴다.
하필이면 츠키시마와 보쿠토가 오기 전에 온 것이 말도 안되는 거물이었다.
간단해 보이지만 얽혀있는 세력이 많은 작전이라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위험한 변수들을 다 치우고 나서야 마음껏 날뛸수 있다.
아카아시는 눈을 빛내며 주변을 관찰했다.
앳된 얼굴의 소년이 변태들의 손에 놀아나는 모습을 보니 입안이 썼다.
더럽고 추잡스러운 것들이 판을 치는 이 도시에 다시금 넌더리가 났다.
아카아시는 괴로운 얼굴로 참지 못한 눈물을 떨구던 남자를 떠올렸다.
정부의 개인 주제에, 정부의 더러운 면을 직접 경호하고 있는 주제에 자신이 괴로운 표정을 하고 소년을 만지던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강한 남자이자 가볍기 그지없는 사내라고만 생각했는데, 소년의 무엇이 남자에게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괴물이 되었다는 소년은 너무 작고 여려보였다.
소년의 악몽으로 여전히 자리하고 있을 투견장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났을까 걱정이 되어 땀에 젖은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주었다.
말주변이 부족한 자신의 주인의 말만 들어도 끔찍했던 그곳은, 아카아시가 직접 조사해서 살펴보자 말도안돼는, 정말 터무니없는 지옥이었다.
거친 도시에서 어려서 동생을 잃은 아카아시는 작은 소년의 모습이 꽤나 안쓰러웠다.
아카아시는 음험한 눈으로 자신을 살피는 욕망 가득한 눈동자에 혐오감을 느꼈다.
걸쳤다고 하기도 뭐한 작은 천쪼가리를 벗겨내려하는 손길에 조용히 남자의 급소를 노렸다.
손을 뻗어 남자를 기절시키려는 그 순간, 불쑥 나타난 커다란 손이 남자를 집어 던졌다.
"누가 내꺼에 이렇게 손자국이고 입술 자국을 내놨어?"
보쿠토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히나타 만큼은 아니지만 최음제를 삼켰던 아카아시가 조급하게 해독제를 요구했다.
"이게 무슨..."
널브러진 히나타를 발견한 츠키시마의 목소리가 분노와 충격으로 떨렸다.
"오이카와 죽인다..."
야마구치의 전언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은 츠키시마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참을 수 없어 떨리는 몸으로 몰래 히나타의 입 안에 해독제를 흘려넣은 츠키시마의 얼굴은 냉랭하게 식어있었다.
싸늘한 살기가 절로 뿜어져 나왔다.
끄응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 히나타는 츠키시마의 화난 얼굴을 보고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 안죽었어. 그보다도 이 시장에서 생긴 모든 수익은 지하의 제일 왼쪽 끝 방에 있는 금고로 모인데. 야마구치에게 구조 조사하라고 해."
덤덤하게 말하는 히나타에 츠키시마는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폭탄을 설치했어요. 신호할테니, 연기로 시야가 차단되면 성대하게 날뛰어주세요."
츠키시마는 히나타에게 화를 낼 것만 같아서 이를 뿌득 갈며 말했다.
히나타와 아카아시에게 관심을 가지고 갸웃거리던 손님들은 보쿠토와 츠키시마의 기세에 눌려 슬금슬금 물러났다.
-야차, JK조직의 간부들이 몇 보여서, 아오바죠사이의 협조로 이번 일을 덮어씌울 거에요. 아는 얼굴들이 몇 있을테니, 문제가 생기면 제거하세요.
야마구치의 말에 히나타는 츠키시마의 어깨 너머로 다른 손님들을 살폈다.
"우린 지하를 습격할테니까, 신호하면 작업 시작해요."
츠키시마는 여전히 화가난 기색으로 자신의 수트 상의를 벗어 히나타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조금만 더 당신을 아껴요."
억눌린 목소리로, 츠키시마는 말했다.
하지만 이번 임무에 내가 빠지면, 스가와라상이 가야된다고 하는 걸 들었는걸.
히나타는 굳이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런 방향으로 흐를줄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투견장에서 탈출한 후, 크루엘라에게 당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던 스가와라를 알기에 히나타는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여전히 성적인 텐션을 못견뎌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말하면 분명 모두는 화내겠지만, 아무튼 자신이 가야만 했다.
선택권은 없었다.
소중한 사람이 괴로워하는게 싫은건, 당연한거니까.
히나타는 츠키시마의 옷에서 배어나오는 은은한 우디향을 살며시 맡으며 그저 신호의 때를 기다렸다.
너무 온실 속 화초로 대하는 것 같아서 곤란했다.
그 변태 영감은 싫었지만, 차라리 상대가 오이카와라서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사람은 다정하고, 나를 꽤 좋아한다고 말해줬으니까, 응, 괜찮아.
그사람의 괴로운듯한 얼굴을 보면 의아함과 연민이 들었다.
멍청하고 착한 사람 같으니.
부숴져 깎여나간 그의 마음이 가루가 되어 날리는 환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해바라기라면 그 사람보다도 더 크게 자랄 수 있을까.
히나타는 무릎을 모아 고개를 박았다.
그냥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을 하며 때를 기다렸다.
멀어지는 츠키시마의 등이, 조금 쓸쓸해보인다는 이상한 생각도 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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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젠장, 젠장!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레이븐에 도움따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려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닌데, 어째서.
오이카와는 수많은 자기 혐오에 빠져 스스로를 채찍질해왔지만, 이번만큼 스스로가 더럽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조그만 이빨에 쓰린 물건이 아직도 욱신거리는 감각에 머릿속에서 열에 달뜬 소년의 얼굴을 몰아낼 수가 없었다.
제발, 이건 그에게 너무 가혹했다.
원치 않게 남자에게 안기고는 독한 술을 연거푸 들이키던 작은 소년, 술이 쓰다고 말하며 눈물이 고이던 소년, 자신의 아래에서 울며 허리를 틀던...
오이카와는 정말로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지금까지 위태로이 자신을 지탱하던 것들이 맥없이 끊어져나간 것 같았다.
차라리 그 앙증맞은 입술이 내뱉는 독설과 정면으로 맞설지언정, 자신의 것을 뿌리까지 쑤셔넣고 욕망을 토하고 싶지는 않았다.
스스로를 정의라고 칭하며 우쭐대던 자신이, 가장 더러운 인간을 지키면서 그의 말에 따라 자신을 더럽히는 것에 소년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는 너에게 얼마나 나쁘게 생각될까?
작은 입술에, 입술도 맞대지 못할 사랑스러운 소년의 입술에.
오이카와는 벌레가 온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듯 징그럽고 가려운 감각에 사로잡혔다.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소년의 이름이 입 안에서 애처로이 메아리쳤다.
히나타, 히나타.
사랑받고 싶었다.
아니, 구원받고 싶었다.
그 토비오 마저 구원한 소년이라면, 자신도 구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정말로 도망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 정신나간 도시에서, 구한다, 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쳤지만 나약하기 짝이 없는 멍청이는 그저 스스로를 깎아먹을 뿐이었다.
무엇을 지켰지?
무엇을 잃었는지는 술술 말할 수 있지만 무엇을 구했는지는 제대로 한가지도 말할 수가 없었다.
무슨 자격으로, 구한다는 말을 입에 담았는가.
자기 자신 조차도 구할 수 없는 주제에, 구원을 바라고, 그 상처뿐인 아이에게 구원을 바라고, 상처주고.
소년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소년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주제 넘은 머저리는 이제 스스로의 멍청함을 깨닫고 바닥 없는 나락으로 빠르게 추락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히나타를 희생시켜 부하들을 배불린 것이다.
어쩔 수 없었어.
정말?
그냥 귀여운 아이를 니 맘대로 취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결국 좋았잖아?
아니, 아니야, 그런 식으로 기분 좋을리가 없어.
그 조그만 목구멍 안에 잔뜩 쏟아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나는, 그런게 아니라...
아, 부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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