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 뭐해?"

마츠카와는 자신의 방을 뒤적거리는 하나마키를 발견했다.

"아? 담배가 다 떨어져서. 여분으로 사 놓은 거 있냐?"

"없어, 이자식. 누가 맘대로 뒤지래?"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목덜미를 당겨 수납장에서 멀리 떨어뜨렸다.

"뭐야, 왜 과민반응? 뭐 쌔끈한 언니들이라도 숨겨놨나?"
"뭐래."
"헙, 혹시... 언니들이 아니라 형아들...?"
하나마키는 얼굴로 날아든 쿠션에 입을 다물었다.
마츠카와는 티나지 않게 은밀한 동작으로 무언가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주머니 안쪽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금속의 감촉과 두근거리는 박동이 느껴졌다.
'봤을까?'
"너 뭐나 훔쳐갔냐?"
"마츠카와, 그런 아-무것도 없는 수납장은 처음 봤다. 뭔가 재밌는 물건 숨겨놨을 줄 알았는데."
"너나 이런데 야한 책 숨겨두고 그러겠지."
"흥, 나 배고파. 뭔가 먹자?"
"치즈 햄버그?"
"지겹지도 않냐? 딴거 먹어, 딴거."
"아무거나 먹어. 너가 정하던가."
"그럼 나 먼저 나가서 담배 좀 사고 있을테니까, 준비하고 나와?"
"그래."
하나마키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마츠카와는 작은 금속 조각을 주머니에서 슬쩍 꺼냈다.
동전보다 조금 큰 크기의 금속 엠블럼에는, 까만 독수리가 새겨져 있었다.
검은 독수리, 애꿎은 별칭이다.
하하, 작게 웃음을 터뜨린 마츠카와의 입꼬리가 씁슬한 빛을 담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소나무라니, 주제 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차가운 엠블럼이 손에 온도에 미지근하게 된 것을 마츠카와는 주머니 안쪽 깊숙히 넣었다.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곧 소나무에 틀은 둥지를 버려야 한다고.
...........
"까만 독수리도 있나?"
하나마키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그녀석 그런 이상한 골동품 모으는 취미 있었던가...'
................................................................................

'마츠카와 잇세이, 도미넌트 이글의 첩자일 수도 있어요.'
히나타는 츠키시마의 말을 상기하며 여윈 남자의 얼굴을 안쓰러이 바라보았다.
무엇하나 확실한 것도 없었으며, 그에게 알려줄 의리도 없었다.
멋쩍은 미소에는 죄책감이 서려있어 히나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릴없이 샷을 두번이나 추가한 진한 커피만이 식어갔다.
"...치비쨩, 오랜만?"
스스로 상처 받을 거면 아예 눈이 마주쳐도 무시할 것이지, 괜히 다정하여 괴로워한다.
"못생겨졌네요, 오이카와상."
"으앗, 너무해. 오랜만인데 얼굴보고 하는 소리가 그거야?"
저 사람의 가면은 이제 다 닳아서, 아무것도 가리지 못해.
히나타는 그리 생각했다.
"안면 근육 고장난 거 아니에요?"
히나타의 말에 오이카와는 머쓱하게 간만의 면도로 매끈해진 얼굴을 쓸었다.
"저기 치비쨩..."
"괜찮아요."
히나타는 오이카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 줄 알았다.
그리고 별로 듣고싶지 않았다.
"괜찮아요. 정말로."
히나타는 식은 커피에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나는..."

나는 너에게 다가설 수가 없어.

오이카와는 목에 걸린 말에 숨이 막혔다.
"그거 알아요? 나랑 자고 사과를 한 건, 당신이 처음이야. 우리가 한 그것을 잤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히나타는 커피 마시기를 관두었다.
충분이 입이 쓰다.
"당신, 나를 꽤 좋아한다고 그랬잖아요? 그걸로 괜찮아요."
오이카와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고개를 숙였다.
"나를 처음 안은건, 안는다는 표현이 아까울 만큼 거친 종류의 것이었지만, 나의 이복 형제였어요. 그 이후에는, 뭐, 손님들, 나중에는 임무를 위해 스스로 안겨들었고... 수많은 밤들 중에, 나를 사랑한 사람도, 미안해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당신이라면.
히나타는 이 말을 삼켰다.
저사람에게 줄 것은 해바라기로 되었다고 생각했기에.
오이카와의 눈에 서린 것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었다.
꼭 자기가 아픈 일을 당한 양, 괴로운 빛에 히나타는 푸스스,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히나타의 작은 손바닥이 오이카와의 입 위에 막듯이 얹어졌다.

히나타는 오이카와의 입을 막은 자신의 손 위에, 살짝 입술을 대었다.

오이카와의 눈이 크게 뜨이는 것을 느끼며, 짧게 입을 맞춘 히나타는 이내 손을 거두었다.
"조금만 더 독을 품어요. 이 커피보다는 쓴 사람이 되어야죠."
히나타는 조금 덜 마른 그의 머리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작은 손의 온기가 얼굴을 여전히 감싸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갑자기 자신에게 주먹을 내미는 히나타에 손을 펼쳤다.
툭, 작은 물체를 떨구고는 말없이 뒤돌아 나간 히나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주홍빛의 잔상이 망막에 문신마냥 새겨져 아른거렸다.
오이카와는 느릿한 몸짓으로 손위를 쳐다보았다.
나무로 조각된, 기괴한 모양의 새.
오이카와는 슬쩍, 그것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솔잎 냄새인가, 송진 냄새인가 하는 것이 느껴졌다.
소나무로 조각된, 독수리.
오이카와는 식어빠진 커피잔에 조각을 풍덩 빠뜨렸다.
짙은 갈색의 조각은 커피를 머금어 검게, 더 검게 물든다.
송진의 향이 원두의 향과 어지러이 섞여 혼란스럽다.
어지러울 만큼.
비척비척 일어나, 흐린 잿빛의 거리로 나선 그는, 그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 일그러진 채였다.

................................................................................

이젠 결단을 내려야해, 토오루.
그래, 어느쪽이 흑백이던, 일단은 가려내야지.
..........................................
처음 카게야마의 옆에 선 소년을 보았을때, 그는 지금보다도 더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에 대한것을,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여겨야만 한다.
언제까지고 멍청하게 주저앉아 질질 짜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러다 결국 나도 시체 더미에 쌓인 싸늘한 몸뚱이가 되어버리고 말것이니.
카게야마를 가족이라 부르던 소년, 수려한 얼굴에 짐승의 눈빛으로 어스름한 달빛만이 감도는 골목에서 장정들을 헤치우던 야차의 소년, 뻔뻔하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애처로운 얼굴로 부하를 구하러 가던 소년, 다정도 병이라 일러주던 소년, 손바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입을 맞추어주던 소년, 상처받은 주제에 남의 상처를 걱정하는 소년...
오이카와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래, 나는 그에게 구원받을 수 없어.
나 또한 그를 구원할 수 없어.
애초에 소년이 구원 따위를 바라기나 했던가.
산지옥에 어깨를 들이민 것은 자기 자신이니, 그저 끝까지 싸워야지.
오이카와는 한번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연모와 애정을 꾹꾹 구겨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깊숙히 숨겼다.
죽는 순간에나 내뱉어볼까.
물론 그 순간은 아직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정신 차렸어.
오이카와는 망가진 가면에 거짓을 덕지덕지 덧대어 썼다.
괴물을 잡으려면 괴물이 되어야지.
이와이즈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을 잡기 위해, 인간은 괴물의 탈을 쓴다.
결국에는 누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예상하면서도, 각자 지켜야만 하는 것이 있기에.

"이와이즈미, 잘 들어.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말고, 일단 따라줘."
고개를 쳐들고, 허리를 꼿꼿히 세운다.
여전히 흐린 하늘에 머리가 차가워진다.
.........................

실은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

죠젠지가 어떻게 우리 물자 조달에 대한 정보를 얻었겠어.

그런 무대포 멍청이들이, 누구 도움 없이 해낼 수 있을리가 없잖아?

카타콤에 갔었던 건, 누구였어?

도미넌트 이글도 마찬가지야.

우리 그렇게 약하지는 않으니까, 항상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건 분명 구멍이 있었다는거지.

만약에 모든것이 잘 짜여진 함정이었고, 그로 인해 친구를 잃게 된다고 해도, 차라리 그게 나아.

진짜로 네가 배신자일 경우랑 비교했을 때, 어느쪽이 더 손해인지는 분명하잖아.

맛키에겐 미안해.

내가 잘못한게 아닌데도.

아아, 이번건 정말 심하네.

................................................................................

흐린날의 밤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우시지마는 커다란 장우산을 나눠쓴 히나타와 스가와라를 자동차 창문 너머로 바라보았다.
입가에 걸린 해맑은 미소가 이질적이면서도 또 잘 어울렸다.
기분이 이상하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종류의, 낯선 감정에 우시지마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간질거리면서도 답답한듯한, 이상한 감각에 어딘가 조급해졌다.
"긴장하는 중?"
웃음 섞인 텐도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우시지마는 눈으로 소년의 뒷모습을 좇았다.
이름을 들으러 왔다.
그리 말하면, 너는 어떤 얼굴을 할까.
젖은 얼굴로 웃으며 조그만 손을 흔들던 아이는 이제 없으니, 까마귀로 날아간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시지마는 기대하며 차에서 내렸다.



에러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