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여기서 또 보네."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랑 거래 하나 할까?"

어딘가 초연한 그 목소리가, 낮게 울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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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목 없습니다."
우시지마는 고개를 푹 숙인 마츠카와를 내려다 보았다.
"예상한 것보다는 빠르지만, 어차피 곧 아오바죠사이를 눌러 놓을 계획이였으니."
우시지마가 마츠카와가 빼돌린 자료들을 훓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 오이카와 반응은? 기대한 만큼 다이나믹?"
텐도가 싱글거리며 마츠카와의 주변을 기웃거렸다.
기분 나쁜 웃음에 마츠카와는 조금 인상을 찌뿌렸다.
"하나마키를 쏜 후, 필요한 것만 가지고 도주했기 때문에 오이카와의 반응은 보지 못했습니다."
덤덤히 말하는 마츠카와를, 텐도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띤 채 훓어보았다.
"그래. 당분간은 쉬고 있도록. 곧 다른 임무가 나올 때 까지."
"예, 보스."
마츠카와는 우시지마에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갔다.
"그나저나, 와카토시군. 그거 알아?"
마츠카와가 나가자, 텐도는 우시지마를 향해 고개를 획 돌렸다.
"무얼 말이지?"
"우리 메이드들이랑, 방에 가둬둔 까마귀랑 무진장 친해진거?"
"그게 무슨 말이지?"
"작은 까마귀군이 글쎄, 우리랑은 한마디도 안하면서 메이드들이랑은 꺄륵꺄륵 잘도 떠들더라고."
텐도의 말에 우시지마의 눈썹이 움찔, 하고 살짝 찡그려졌다.
"...난 그 방을 청소하라고 했지, 친분을 쌓으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엄청난 친화력이더라고. 우리 메이드들, 항상 조용히 숨죽이고 다니는데, 심지어 와카토시군의 소유인 꼬맹이랑 잘도 떠들더라니까?"
"...오늘 밤에 준비를 시켜 놓으라고 해야겠군."
"엑, 와카토시군, 걔를 또 안을거야? 우왓, 꼬맹이 엄청 튼튼하네..."
"굴복하질 않으니, 지워지지 않게 계속 흔적을 새겨야한다."
"하긴, 고통으론 무너지지 않으니까. 투견장에 있었으니, 약으로 길들이기도 어려울 것 같고..."
텐도는 흐응-하고 가벼운 콧소리를 흘렸다.
"뭐, 그래도 인간인데. 계-속 품에 가둬놓고 있으면 익숙해 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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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지마라는 사내의 키스는 거칠다.
마치 불에 달군 인두로 몸을 지진 것 처럼, 그가 남긴 잇자국과 키스마크는 타버릴 것만 같이 고통스럽다.
히나타는 살짝 보랏빛을 띄는 잇자국들을 바라 보았다.
겨우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에, 어느 유곽의 싸구려 창녀들 보다도 못한 꼬라지가 아닌가.
히나타는 실소를 내뱉었다.
몸을 씻겨주는 아이는 나보다 한살 어린 여자아이로, 주인님이 밤에 오신다는 말을 전하며 내게 동정의 빛을 띄었다.
밤에는 거칠게 자신을 범하고, 낮에는 괜히 와서 이리저리 쓰다듬는다.
정신나간 인간이다.
퍽 다정스레 쓰다듬는 손길에 히나타는 그저 비웃을 뿐이다.
실은 그 사내, 뭐든 원하면 부하들이 넙죽 넙죽 구해다 주니까 사람 마음을 얻는 법 따위는 배우지 못한거다.
모두가 자신에게 복종하고, 원하는 것은 금세 손에 들어오니 스스로 무언가를 얻으려 애쓰는 것 따위 저가 알 필요 없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못 얻으니까 말야.

히나타는 뜨거운 물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결국 자신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망연히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이 궁금하다, 그리 생각하며, 히나타는 뜨거운 물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부드러운 천을 안쪽에 덧댄 족쇄가 땡그랑, 욕조에 부딪히며 시끄럽게 떠들었다.
히나타는 소중한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보스, 아마 무진장 화나있겠지.
보스 화나면 엄청 무서운데...
스가와라상, 밥도 안먹고 걱정하고 계시겠지?
돌아가면 같이 마파두부를 먹자.

엄청나게 매울 것 같지만.
아사히상...
울고 계시면 어떡하지...
나츠, 울고 있겠지.
오빠는 괜찮은데, 울지 말고, 밥 잘 먹고 기다리면 금방 돌아갈게.
카게야마, 또 걔한테 못할 짓을 했네.
분명 날 두고 갔다고 스스로를 미워할텐데.
바보같이, 내가 억지로 떠밀었더라도 걔는 미안해 할 거야.
츠키시마...
화났어.
백퍼 화났다.
화내는 얼굴을 상상하니 오싹 소름이 돋아 몸을 떨었다.
메이드인 여자아이는 물이 차갑냐며 호들갑을 떤다.
오이카와상.
아, 그 사람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가 가장 미워하는 자에게 붙잡혀 그런 걸까.
마츠카와가 독수리들의 둥지로 돌아왔다.
하나마키를 쏘았다지.
저기, 당신은 지금 괜찮아?
멍청한 질문이겠지.
괜찮을리가 없는데.
미안해.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것들은, 당신을 더 아프게만 할거야.
그거에 대해서 나는 사과할 수 밖에 없다.
히나타는 족쇄로 무거운 손을 들어 입가를 만지작 거린다.
일주일이 넘게 지났어.
이제 슬슬 때가 오고 있다.
기회는 단 한번, 절대로 놓칠 수 없다.
히나타는 걱정어린 표정의 메이드에게 싱긋 웃어 보았다.
응,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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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 나한테 이런 빅엿을 맥이고선, 얼굴 한번 안 비추더라?"
히나타가 부러 족쇄의 쇠사슬을 짤랑이며 고시키를 향해 삐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잡혀있는 주제에 전혀 기가 안죽었네. 건방지게."
고시키의 뒤에는 세미가 말없이 서 있었다.
"건방진 건 너야. 아무것도 모르는 애새끼가..."
히나타는 귀를 후비는 시늉을 하며 빈정거렸다.
"쓸데없이 반항하지 말고, 얌전히 굴어. 괜히 형님 귀찮게 하지 말고."
"니네 형님한테 뼈 삭으니까 아랫도리 휘두르는 것도 텀을 두고 쉬엄쉬엄 하라고 전해줄래? 나참, 발정난 개도 아니고..."
히나타의 말에 고시키가 성큼성큼 다가와 뺨을 짝- 갈겼다.
작은 얼굴에, 붉고 커다란 손자국이 새겨졌다.
"하, 왜? 너도 좀 해줄까?"
씩씩거리던 고시키는 히나타가 발을 뻗어 고간을 꾸욱 누르자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빨간 혀를 빼꼼히 내미는 모습에 화르륵 얼굴을 붉힌 고시키는 뭐라뭐라 역정을 내며 발을 굴렀다.
"누, 누가 너따위를...!"
"나따위에 흥분해서 매일 밤 남자 안에 싸지르는게 네가 존경해 마지않는 형님이란다."
쿡쿡 낮게 흘리는 웃음에 고시키는 빨갛다 못해 파래질 것만 같았다.
"너... 너...!"
"니네 형님도 참 할 일 없지. 손짓 한번이면 그 품에 기꺼이 안길 여자가 수두룩 할 텐데, 굳이 나처럼 닳고 닳은 걸 안으려고 간부진까지 움직여서 납치하고 말야... 실은 너네 엄청 한가한거 아니니?"
비싯비싯 흘리는 비웃음에 고시키가 발만 구르며 분해하자 세미가 불쑥 튀어나오 작은 턱을 들어올렸다.

"너, 입 함부로 놀리지..."
뭐라고 한마디 해줄 심산으로 조그만 얼굴을 들어 올렸건만, 세미는 곧장 마주해오는 그 올곧은 눈빛에 압도되고 말았다.
괴물 중의 괴물들만 모인다는 이 도미넌트 이글에서도 보기 힘든, 그 안에 무엇이 숨어있을지 자신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소름끼치는 눈빛이었다.
"왜, 키스라도 할래?"
크고 동그란 눈이, 시야의 바로 앞에서 야살스레 휘었다.
보석 같은 주황색 눈동자가 유려한 곡선의 눈꼬리에 가리는 모습에 뒷골이 저렸다.
턱을 쥔 손에서 느껴지는 작은 떨림에, 히나타는 더욱 눈꼬리를 휘었다.
말했지만, 이 몸에 상처를 내고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
그러니 당신들 차례도 얼마 안 남았어.
그때까진 기꺼이, 웃으며 어울려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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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타는 욱신거리는 몸에 입술을 깨물으며 옷가지를 챙기는 우시지마의 등짝을 바라 보았다.
왜 화를 내는지.
정말 너무 쉽다니까.
강하지만, 단순해.
히나타는 속으로 그를 비웃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메이드들이랑 시시덕거리고, 동생과 부하들을 좀 건드리면, 바로 질투할 줄 알았지.
질투라니, 연인도 아니고 구역질 나게.
저한테는 말 한마디도 안하면서 남에게 귀염 떠는게 제법 배알이 꼴렸나봐.

거친 정사 동안에 그의 얼굴에는 초조한 빛이 가득했다.

처음으로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나타나니, 조급한 모양이다.

여기저길 강하게 깨물고, 깊숙히 파정하고, 욕망을 내지르는 그의 얼굴에 질투가 서린 꼴은 못내 우스웠다.

열심히 허릿짓 해봐야, 난 달아날 거야.

히나타는 얼마전 밤, 자신의 방으로 숨어든 남자와의 대화를 상기했다.
그를 믿는 것은 아마도 도박이나, 걸어볼 만한 종류의 것이기에-실은 직감 뿐이지만-히나타는 그에게 걸어보기로 했다.
푸르게 시린 달빛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보는 그 만족스런 표정에 경멸을 느끼며, 히나타는 우득, 강하게 어금니를 씹었다.

빠득-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이가 깨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릿한 고통에 소름이 돋았다.

비명을 삼키며 침을 꿀꺽 삼켰다.
만월이 밝은데도, 그날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 사내는 알까.

소년도 유령도 없는 것을, 왜 매달려 지치게 하는가.
창 밖의 달로 뛰어들 자신을, 그가 영영 붙들 수 없으리라는 것을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인데.
달빛에 훤히 들어난 그의 낙인이 무색하게, 히나타는 그로 부터 도망가고 있었다.
씁쓸하다는 표현으론 부족한, 고통과도 같은 쓴 맛이 단숨에 입 안에 퍼졌다.

어금니에서 흐르는 독은, 자신을 저 달 너머로 도망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깨진 어금니와, 우시지마가 남긴 거친 정사의 흔적이 주는 고통이 이상스런 감각으로 흐릿해졌다.
마비되는 느낌.
히나타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그러다 명치를 강하게 후비는 격통에, 히나타는 온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울컥, 검붉은 피가 입가에서 흘렀다.
물컹하고 덩어리진, 불쾌한 색감의 뜨뜻한 핏덩이를 마구 쏟아내며, 히나타는 몸부림 쳤다.
놀라 달려오는 우시지마와 메이드들의 흐릿한 상을 마지막으로, 히나타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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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 않네. 알고 있었어?"
"알려준 것도 나인데요. 뭘."
"그래, 그렇구나."
"불쌍해라. 오이카와상, 엉엉 울지도 몰라요."
"여긴 시라토리자와야. 도미넌트 이글의 중추에 붙들린 네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날 너무 얕잡아 보면 곤란해요."
"그럼, 당연하지. 네가 어느 정도인지 아주 잘 아니까. 하지만, 제안 하나 할까 하는데."
"방금 10년 넘게 사귄 친구들을 버리고 온 당신을, 내가 어떻게 믿어요?"
"일단 들어나 볼래?"
"...떠들어 봐요."
검은 독수리는 초승달에 슬퍼 보였다.
어둠에 갇힌 태양은, 냉정한 빛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이용할 가치가 있는지, 중요한 것은 그것 하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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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마키는 허리를 세워 창 밖을 바라 보았다.
짙은 구름에 달도, 별도 보이질 않았다.

환자복에서는 알콜 냄새와 땀냄새가 났다.

킨다이치가 침대 구석에 업드려 자고 있었다.

걱정 끼쳤구나.

잠든 후배의 어깨에 이불을 둘러주고는, 그대로, 흐릿한 밤으로 나섰다.
왜냐면, 약속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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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는 불타는 숲을 멍하니 응시했다.
어둔 밤은 숲을 집어 삼킨 불길에 마치 낮처럼 밝았다.
이렇게나 밝은데, 이곳에는 어둠 밖에는 없었다.
얼굴에 홧홧하게 뜨거운 불길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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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에 새겨진 이름은, 마츠카와, 라는 성만이 뚜렷할 뿐 이름은 어째선지 흐릿해 보이지가 않았다.
하나마키는 종류별로 산 알록달록, 색색의 꽃들을 한아름 안고 서늘한 비석을 내려다 보았다.
헐렁한 환자복 사이로 썰렁한 밤바람이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하나마키 타카히로라고 합니다.
잇세이의 친구에요.
어머, 그래?
우리 잇세이가 신세를 지고 있구나.
그 아이와 친구가 되어 줘서 정말로 고마워.
내가 잇세이를, 정말로 사랑하거든.
하나마키는 꽃의 비가 내리는 듯, 한아름의 꽃송이들을 비석 위에서 흩뿌렸다.
신세라뇨, 저희가 절친이거든요.
저희 엄마가 잇세이 신붓감도 알아 놓으셨다는데, 사진 좀 보실래요?
그래? 어디 좀 보자꾸나.
볼을 타고 뜨긋하고 축축한 것이 흘러내렸다.
꽃잎은 밝고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있어서, 눈물로는 망가지지 않았다.
하나마키는 털썩 무릎을 꿇고, 주륵주륵 눈물을 흘렸다.
친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며, 하나마키는 엉엉 울었다.
안녕.
다음에도 반드시, 친구가 되자.
하나마키는 그를 미워하며 그리워했다.
안녕, 안녕.

잘가.

잇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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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다음은 없어, 등신아.
오이카와의 말에 마츠카와가 지은 표정은, 불꽃에 붉은 것인지 달빛에 푸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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