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치, 그를 믿어도 되는 거야?"
"히나타가 이쪽만 알아볼 수 있는 신호를 같이 보냈어. 믿는 수 밖에."
"...그런 게 히나타 몸 안에 심겨있는지 난 몰랐는데."
"스가, 야단치는 건 나중에 하자. 일단은 우리애 마중 나가야지."
"응. 아사히 엄청난 표정 하고 있네.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가자. 우리 막내 데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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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타는 과거의 악몽에 평생을 시달려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유키가오카에서 어린 히나타에게 가했던 수많은 생체 실험.
히나타는 왠만한 독에는 내성을 가진 몸을 가지게 되었다.
긴 시간 동안 서서히 쌓아온 내성은, 그가 치사량의 두세배에 달하는 독을 주입해야만 목숨을 위협할 정도가 되게 만들었다.
어금니 안쪽에 숨겨 놓은 맹독.
강하게 씹어 이를 깨뜨리면, 독이 새어나온다.
히나타는 손쉽게 족쇄에서 벗어났다.
각혈, 빠르게 퍼지는 독.
의식이 있을 리 없는 환자에게 굳이 족쇄를 채울리가 없다.
죽을지 살지를 결정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족쇄는 커다란 장애물이니까.
붙잡힌 동안 일부러 욕하고, 저항하고, 무시했지만 물리적으로 날뛰지는 않았다.
견고한 구속이라 생각했겠지.
머저리들.
누가 누굴 붙들려는 거야?
히나타는 급한 손길로 독을 빼내며 해독제를 집어넣고 수혈을 준비하는 의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여전히 의식 없는 척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죽을 괴물이 아니야, 나는.
온 몸에 퍼진 독에 관절이 뻐근하게 아파오지만, 놈들 뒷통수를 칠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밖에서 웅성거리며 어디론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아, 이제 슬슬 때가 되었나보네.
자, 마음껏 날뛸 시간이야.

히나타는 번쩍 눈을 떴다.

치료실의 불빛에 눈이 부셨다.

곳곳에 꽂힌 관, 이딴 건 필요 없어.

다급한 의사들의 숨소리는, 이내 고통에찬 비명으로 바뀌었다.
히나타는 피에 절은 옷을 벗고는 주섬주섬, 쓰러진 의사들의 옷을 벗겼다.
메스를 주워 피가 튄 하얀 가운 주머니에 넣고, 초록색 수술복에 하얀 가운을 입은 히나타는 치료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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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이카와."
"...이게 뭐야."
"선물이야. 작별 선물."
"마츠카와 잇세이! 이게 무슨 짓거리냐고!"
오이카와가 악에 받혀 소리 질렀다.
도미넌트 이글을 둘러싼 경계선 숲은, 여전히 활활 타고 있었다.
"복수. 제 욕심으로 날 구원한, 아버지에 대한 복수."
마츠카와는 홀가분해 보였다.
불길이 거세지는 가운데, 간간히 폭음이 들리며 연기와 함께 새로운 불길이 타올랐다.
"용서를 빌지는 않을게. 그럴 염치도 없으니까."
마츠카와의 목소리가 폭음에 웅웅거리며 묻혔다.
오이카와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그 폭발과 불길을 등지고 선 마츠카와를 괴로워하며 바라 보았다.
"왜... 왜...!"
"뭐라 떠들어도 다 변명일 뿐이잖아. 네가 필요한 건 변명이 아니지. 그냥, 미친 도시에서, 불쌍한 버러지로 태어나서, 같이 미쳐버린 거야. 그래, 그거면 되었던 거야. 달리 변명을 대거나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어. 그냥, 그런 쓰레기로 난 자란 거니까."
마츠카와는 아예 하하, 하고 가볍게 웃어보였다.
내가 진 죄를 업고, 나는 도망갈래.
도미넌트 이글에서, 이 도시에서, 이 세상에서.
나는 도망 갈거야.
너는 계속 이 지옥을 견뎌야 하는데, 나는 도망가네.
그것도 미안해.
마츠카와는 더이상 미련이 없었다.
차가운 총구를 관자놀이에 가져다 대자, 더운 공기에서 서늘하게 닿아오는 감촉이 좋았다.
"하나마키에게 필요할 만한 것들을 전해줬어. 후처리에 필요할 것 같아서."
"하지마, 하지마!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정정당당히 재판 받고! 감옥에 가던 뭘 하던...! 하지마, 그거 당기지 마!!!"
매캐한 연기와 일렁이는 불꽃에 마츠카와의 모습도 위태로이 흔들렸다.
오이카와는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 질렀다.
미안하다고 하지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도망가지마.
재가 날린 하늘은 더욱 어두워졌다.
"아, 꼬맹이는 잘 도망갔을 거야. 건강... 할지는 잘 모르겠다."
마츠카와는 불길 속에 서 있었다.
낼름거리는 불꽃에 오이카와는 다가설 수 없었다.
"다음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다음은 없어, 등신아..."
탕-
커다란 불 속에 건물이 무너지고, 숲이 타는데,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이 소란스러운데,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귀가 얼얼한데, 어째서 너가 도망가는 소리가 이리도 선명하게 들리는지.
마츠카와가 선택한 건 친구도, 아버지도 아니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도망 가는 것.
불길 속에 쓰러진 마츠카와는 이제 흔적 조차 없이 사라질 터이다.
스스로의 뇌를 관통하도록 총을 쏘고, 시체조차 남지 않도록 불 속에 몸을 던진 마츠카와는 웃고 있었다.
드디어 목줄을 끌러 달아난 것에 대한 기쁨으로.
이기적인 새끼.
오이카와는 멍멍한 귀를 막고 소리를 질렀다.
소리치는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 부숴놓고, 무너뜨려 놓고서 혼자 도망갔어.
비열한 자식.
등신.
머저리.
어째서, 왜, 어째서.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달려와 그를 끌어낼 때 까지 그 불타는 숲어서 소리를 질렀다.
총성에 귀가 멀은 듯, 아무것도 그에게 닿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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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작전이야.
히나타는 달리며 생각했다.
자신이 독을 삼켜 족쇄에서 벗어나 도망가는 동안 마츠카와는 중추 시라토리자와를 불살라 놈들을 유인하고, 도주로에는 우리쪽 인원이 대기한다.
음, 훌륭해.

히나타는 그와의 대화를 회상했다.

"시라토리자와를 날려 버릴거야."
어둠 속에 숨은 마츠카와가 말했다.
히나타는 크게 놀라거나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몸 안에 독을 숨겨 놓았어요. 원래 암살에나 쓰려고 넣어 놓은 거지만..."
"그래? 그럼 너는 독을 삼키고 병원으로 이동해. 병원에서는 구속이나 경계가 느슨할테니... 레이븐에는 우시지마 일행의 예상 경로를 일러 놓을테니까, 도주 후 그리로 합류하면 될 거야."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 되었다.
히나타가 피를 토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고, 시선이 쏠린 사이 마츠카와가 시라토리자와를 폭파 시킨다.
폭발 쪽으로 시선이 옮겨지면 히나타는 도주하고, 그땐 이미 폭발과 방화로 시라토리자와는 엉망진창, 빠져나가는 인원은 도주로에서 대기하는 레이븐이 박멸한다.
심플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독이라면... 죽지 않아도 싸우는 건 무리 아냐?"
"나 무시하지 말라니까요? 참는 게 특기라, 몸에 칼이 박혀도 뛸 수 있으니까 난 신경 꺼요. 당신이나 차질 없이 잘 하라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하는 히나타에 마츠카와는 허탈하게 웃었다.
"오이카와 한테 전해줘. 고마웠다고."
"그런 걸 전하다니, 당신 성격 진짜로 나쁘네요."
"하나마키는... 아니, 히로랑은 이야기 끝났어."
마츠카와는 부디 어머니의 무덤에 꽃 한송이를 전해달라고 하나마키에게 부탁했다.
이제 곧 불타 사라질 땅에 묻힌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대신 전해 달라고.
실은, 어머니에게 하나마키를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엔 우리 둘 뿐이구나, 라고 말한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날때 그가 혼자 될 것에 미안해 했기에.
어린 아들이 더이상 혼자가 아님을, 이런 좋은 친구를 사귀였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완벽하네.
꼬맹이는 도망가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나는 죄 많은 땅과 함께 사라지고, 어머니는 아들 친구 얼굴 보고...
마츠카와는 모든 것이 부질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탈력감과 허탈함에 부숴져 가루가 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이리도 괴로워했는가.
진작에 이럴 것을.
이 도시의 모두가 부질없는 것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빼앗으며 살아가고 있구나.
마츠카와는 소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너도 참 불쌍하기도 하지."
뭐라 반박하려던 히나타는 그의 눈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 마음대로 떠들라지.
"안녕, 맛층상."
"나 그 별명, 꽤 좋아했으니까."
히나타는 남자가 지은 소년 같은 미소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남자는 어둠을 타고 사라져버리고, 방에 홀로 남은 히나타는, 차오르는 공허감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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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도망가려고?"
다급하게 빠져나가는 차량의 앞바퀴에 총알이 박혔다.
끼이익- 소름끼치는 소리로 회전하며 멈춘 차에서 비틀비틀 사람들이 기어나왔다.
붉은 불빛에 다이치의 얼굴이 흉흉한 빛을 띄었다.
다이치도, 아사히도, 타나카도, 엔노시타도, 카게야마도, 다들 험악한 빛으로, 유일하게 불이 번지지 않은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텐도와 세미가 우시지마를 보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자, 우시지마는 가죽 장갑을 끼며 그들 앞으로 나섰다.
"네놈들 짓인가."
"하? 아니! 너네 충성스런 멍멍이가 한 짓인데, 우리는 숫가락만 얹었어."
다이치의 눈은 이미 핀트가 나간 듯 초점이 제대로 박혀있지 않았다.
아니, 레이븐의 그 누구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작게 울리는 알림에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마츠카와에게서 온 문자였다.
"은혜도 모르는 짐승이..."
우시지마의 얼굴에 힘줄이 섰다.
"그보다도, 우리애 훔쳐가놓고, 불나니까 니들끼리만 도망?"
다이치가 말하는 동안, 엔노시타는 본 적도 없는 흉악스런 무기들을 겨누었다.
졸린 듯한 눈에 번들거리는 이채가 서려있었다.
"병원에는 비상 시스템이 마련 되어있다. 버릴 생각도, 돌려줄 생각도 없다."
우시지마가 손짓하자 도미넌트 이글의 조직원들도 전투 태세를 취했다.
"내것이다."
우시지마의 말에 레이븐의 모두가 인상을 굳혔다.
폭발음과 비명만이 감돌며, 두 조직이 대치하며 조용히 서로를 살폈다.
양쪽의 주인들 모두, 분노와 광기에 차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 병원, 오늘부로 폐업이야."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피범벅이된 히나타가, 초록색 수술복에 의사 가운을 걸친 채 서 있었다.
입가에 말라붙은 피에선 씁쓸한 맛이 났다.
"어떻게...! 치사량을 넘긴 양이라고 했는데...?!"
경호원에 둘러쌓인 고시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연기에 숨이 막힌 듯 콜록거리며 거칠게 기침을 해댔다.
"미안, 치사량 기준이 난 좀 다르거든."

우시지마의 얼굴이 빠르게 굳었다.

형형한 빛이 뚫어지듯 그를 응시했다.

힘줄을 자르더라도 그곳에 가둬놓았어야 했는데.

우시지마는 꽈악 주먹을 쥐었다.

또 빠져나가.

또 도망간다.

더이상 유령이 아닌데도, 잡을 수가 없다.

소유욕은 분노로 화한다.

부숴진 조각이라도 손에 넣어 다시 가둘 것이다.

우시지마는 그리 생각하며 그를 눈에 새겼다 

다이치는 히나타의 모습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언뜻 보아도 엉망인 몸이었다.
손목과 발목에는 족쇄가 남긴 흔적이 빨간 색으로 부어올라 있었고, 독을 배출하지 못한 몸은, 온 몸의 관절에서 비상을 울려대었다.
옷이 가리지 못한 부분에는, 잇자국의 모양대로 딱지가 앉아 있었다.
피멍이 들어 얼룩덜룩한 몸뚱이에, 다이치가 우득 이를 갈았다.
"아빠! 막내 왔어요~!"
헤실, 웃으며 그리 말하는 히나타에 다이치는 분노로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또, 왜 또 저 아이가 상처 받는가.
안그래도 가족을 지키겠다며 스스로를 내던지는 아이를, 어째서.
아프면서도 웃어보이는 아이의 표정은 언제나 그를 슬프게 한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가장 그를 아프게 하는 것은 아이의 참는 모습이다.
엉엉 울며 매달리면 좋을텐데.
다이치는 분노와 슬픔에 잡아먹혀 괴물이 되었다.
온 가족이 괴물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우리끼리만 행복하면 그만이지, 짐승이던 괴물이던 무슨 상관이야.
총소리가 매캐한 대기를 가르고, 귀가 멀어버릴 듯한 소리들이 크게 진동했다.
화약이 허공에 날렸다.
먹구름이 끼인 듯 불길과 연기에 가린 하늘이 답답하리 만치 희뿌연 색을 띄었다.
전쟁의 밤은 언제나 소란스러우나 결국 정적 뿐이다.
결국에는,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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