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요, 너를 가졌을 때, 엄마는 커다란 태양을 삼키는 꿈을 꾸었단다.
히나타 쇼요는 어린날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엄마, 태양을 삼키면 뜨겁잖아!
으응, 엄마가 삼킨 태양은, 엄-청 밝고, 엄-청 따스했어.
쇼요는 그 태양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주고, 빛을 비추어주는 사람이 될거야.
다정한 손길에 배싯 웃으며, 잠이 들었던 어느 봄날의 햇살.
태양을 삼켜 태어난 아이는, 남들보다 많은 빛을 가지고 태어났다.
빛에게서 거부당한 이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을 만큼.



"보게! 빨리 일어나!"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이불을 확 걷어내며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히나타는 갑자기 사라진 온기에 몸을 웅크리며 잠꼬대를 했다.
"으응... 추워..."
영 정신을 못차리는 히나타에, 카게야마는 히나타를 번쩍 들어올려 욕실에 던져버렸다.
자다가 봉변을 당한 히나타는 따뜻하게 데워진 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흐아아악! 뭐, 뭐야! 카, 카게야마! 이게 무슨 짓이야!?"
깜짝 놀라며 깬 탓인지 쿵쿵, 심장 소리가 크게 울렸다.
놀란 가슴과 다르게 적당한 온도로 데워진 목욕물에 히나타는 깨어나야 하는지 늘어져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버벅거리는 히나타를 보고 한숨을 내쉰 카게야마는, 샤워기를 들더니 이리저리 뻗친 곱슬머리에 냉수를 들이부었다.
"흐히히힉! 으아앗! 하지마! 하지마! 일어났어! 일어났으니까!"
얼굴로 쏟아지는 냉수에 히나타는 어푸어푸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첫 날부터 지각하기 싫으니까 깨우라던게 어느 동네의 누구더라?"
카게야마가 싸늘한 말투로 쏘아 붙이자 히나타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씻기 시작했다.
"빨리 씻고 나와."
획 몸을 돌려 나가는 단정한 뒷통수에 구시렁 구시렁 불평을 늘어 놓으며, 히나타는 동생이 자취 선물이라고 사준 딸기향 샴푸를 머리에 주욱- 짰다.
달달한 향기가 피어오른 수증기 속에서 퍼져나갔다.
친구인 카게야마와 둘이서 자취한지 한달, 프리랜서로 주택근무를 하는 카게야마에게 백수라고 구박 당하던 일상이 히나타의 취업으로 드디어 끝나게 되었다.
이젠 더이상 백수 취급 못하겠지!
히나타는 협회에서 보내온 합격증을 카게야마에게 보여주었을 때를 떠올렸다.
굉장한 얼굴로 경악을 표하는 카게야마에 굉장히 뿌듯했었지.
"너... 너..."
채 말을 잇지 못했던 카게야마.
그건 좀 너무했다.
자신을 얼마나 무시했는지,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나보지?
심지어는 조금 떨기도 했던 것 같다.
사람을 무시하는 거에도 정도가 있지!
한 오분 정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카게야마는 엄-청나게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머리를 쥐어싸고 하는 소리가
"너, 너같은 건 일주일도 안되서 잡아먹힌다고?"
라니!
이래뵈도 A 랭크로 합격했는데, 소꿉친구의 저에 대한 취급은 23년째 너무했다.
협회 공인의 사냥꾼, 그것도 A랭크!
곧바로 중앙 본부로 파견된, 일명 엘리트인데도 친구는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자신을 살폈다.
이 히나타 쇼요가 있는 한, 이 일대의 흡혈귀들은 다 큰일난 거라고!
히나타는 두근거리는 설렘에 콧노래를 부르며 거품을 씻어냈다.
코 끝에 딸기향이 달콤하게 머물렀다.



엄마 마냥 잔소리를 해대는 카게야마에 귀를 막고 집에서 뛰쳐나온 히나타는, 밝고 간질간질한, 따쓰한 햇살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음, 날씨도 좋네!
첫 출근의 예감이 아주 좋았다.
제목을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들은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히나타는 폴짝폴짝 첫 출근길을 나섰다.
이름에 태양이 들어가는 것도,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흡혈귀들은 햇빛 아래 설 수 없으니까, 내가 사냥꾼이 되는 건 운명이야!
왜, 엄마가 태몽에서도 태양을 삼켰다잖아?
동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선배들이 무서우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어 떨리는 마음으로 히나타는 중앙의 본부에 다다랐다.
"으-아... 역시 중앙! 엄청 크네."
히나타는 고개를 들어 커다란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번쩍거리는 건물에 아까까지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긴장이 되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으으... 뭔가 압도되는... 흐억?!"
뒷걸음질을 치자 무언가에 부딪힌 히나타가 고개를 꺾어 뒤를 보자, 금발에 장신인 사내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흐, 으아앗! 죄, 죄송합니다!"
"중학교는 이쪽이 아니라 저쪽인데."
금발의 사내가 커피를 든 손으로 반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에? 엣, 중학생 아닌데요!? 저 24살인데! 게다가 저 여기 찾아온 거 맞거든요?"
히나타가 중학생이란 소리에 흥분해 외치자 남자는 인상을 구겼다.
"뭐야, 그럼 신고하러 왔어?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다 되니까 앞으론 참고하지?"
뭐야, 이자식!
엄청 재수없어!
"아니거든요! 저 여기 취직했거든요?"
"뭐? 행정 쪽에 사람 뽑는다는 말 못들었는데... 아, 개발부 신입인가."
"제가 취직한 부서는 사냥과에요!"
"에?"
"에? 가 아니라! 이래뵈도 A 랭커인데요!"
히나타의 말에 남자는 사기치지 말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상하단 눈빛으로 자신을 위 아래로 훓는 시선에 히나타는 발을 동동 굴렀다.
"...네가?"
"면허 보여드려요?"
남자는 히나타의 면허를 확인한 후에도 여전히 못미더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면허증을 돌려주고 획 돌아 건물 내부로 성큼성큼 들어가는 남자에, 히나타는 어이를 상실했다.
오늘 일진 더럽네!
...라고 생각했었는데...
"뭐야, 너도 신입이잖아!"
남자의 이름은 츠키시마 케이, 히나타의 동기로 그 역시 사냥과의 신입이었다.
심지어 빠른 년생이라 히나타가 나이도 더 많았다.
"행정에 사람이 어쩌구 하더니!"
"우리 형이 여기서 일해서 들은거야. 그보다 너, 시끄러우니까 소리 좀 그만 지를래?"
히나타는 완전히 기가 빨려 추욱 늘어졌다.
뭐 저런게 다 있어...
소파에 애매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요상스럽고 멋쩍은 정적이 맴돌았다.
째깍거리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어-이! 아키테루의 동생이라는 녀석이 누구냐!"
엄청난 기새로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제멋대로 삐죽삐죽 솟은 머리의 시커먼 남자였다.
그 역시도 장신이었는데, 눈매가 사나워 히나타는 바짝 긴장해 몸을 움츠렸다.
"접니다만."
츠키시마는 표정 하나 안바꾸고 덤덤히 말했다.
"뭔가 형이랑은 다른 재미없는 스타일이네. 안경군."
"츠키시맙니다."
"아는데, 츠키시마가 둘이니까."
"저는 츠키시마 케인데요."
"첫만남에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 거야?"
"형을 아키테루라고 부르고 계시지 않습니까?"
"안경군 딱딱해~"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츠키시마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해서, 히나타는 신입이 첫 날부터 선배에게 저렇게 개겨도 되는 것인가 잠시 고민했다.
"이쪽의 치비쨩은? 아, 네가 그 히나타 쇼요?"
"아? 아, 예! 히, 히나타 쇼요입니다!"
"오! 기세가 좋네! 아주 마음에 들어. 사격에서 빵점을 맞고도 A 랭크를 손에 넣은 전설의 신입!"
"빵점이라니! 5점이에요!"
"그거 최하점이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빵점이란 말에 츠키시마는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빵점이요? 그런데 면허가 나왔... 아니, 심지어는 A?"
"우리 치비쨩이 그렇게 전설이 되었지."
닭벼슬같은 머리의 남자가 히나타의 머리를 꾸욱 누르며 말했다.
"...협회에도 낙하산이 있군요."
"아니야!"
츠키시마의 납득했단 표정에 히나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음양사란 말이야!"
"음양사...?"
"그래! 동양계 주술사! 요즘 서양계가 판을 치지만! 나름 전통 깊은 음양사 가문의 후계라고!"
"음양사가 아직도 남아있기는 하네."
츠키시마는 놀란 빛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주술계라는 이유로 A를 받을 만큼 협회의 허들이 낮았던가?"
"뭐, 그만 투닥거리고. 나중에 시험 영상이라도 보던가. 다 보관되어 있으니까."
"난 쿠로오 테츠로다. 네놈들 선배니까, 깍듯하게 대하도록."
남자가 츠키시마와 히나타의 머리를 흩뜨리며 말했다.
"그리고 치비는 사격 연습 좀 하고, 아무리 그래도 빵점은 좀..."
"네..."
쿠로오의 말에 히나타는 시무룩한 얼굴로 추욱 늘어졌다.
"아, 신입들 왔습니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수려한 얼굴의 미남이었다.
쿠로오나 츠키시마 만큼 커다랗지는 않았지만, 역시 장신이었다.
'나만 작아...!'
히나타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츠키시마 케이라고 합니다."
"나는 아카아시 케이지. 잘 부탁해."
아카아시는 살짝 미소 지으며 츠키시마에게 악수를 건냈다.
"저, 저는 히나타 쇼요라고 합니다."
"히나타? 아아, 음양사라는..."
아카아시는 뻣뻣하게 내민 작은 손이 귀여와 살풋 웃었다.
떨리는 것이 육안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오늘은 다들 협회의 세미나에 가서, 사람이 많이 없어. 아마 우리로 끝일거야."
"그래! 내가 거기 안가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아카아시의 말에 쿠로오가 당당히 외쳤다.
"쿠로오상, 한심한 소리 크게 말하는 거 그만두시지 않겠습니까."
아카아시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쿠로오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딴청을 피웠다.
"우린 기본적으로 낮에는 할 일이 없으니까, 그냥 편하게 둘러보고 있어."
"출근이 4시라니!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아카아시의 말에 히나타가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퇴근을 해 뜰때까지 못하는데 좋다고...? 외국에 나간 것도 아닌데 시차에 시달린다고!"
쿠로오는 투덜거리며 아카아시가 사온 커피를 들이켰다.
"저기, 개발부는 어딘가요? 거기에서 무기를 발급 받으라고 하던데."
츠키시마가 안경을 살짝 들어올리며 말했다.
"개발부는 지하에 있어. 거기 엄청 까칠한 놈 있는데, 후타쿠치라고. 얼마나 시비를 거는지... 뭐, 그래도 실력은 좋지만."
쿠로오의 말에 히나타는 아무리 까칠해도 츠키시마 만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같이 가서 무기 받아올까?"
"저, 저는 무기 발급 허가가..."
아카아시의 말에 히나타가 쥐죽은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다. 재심험 통과 전까지는 총기류는 지급 못한다고 그랬지."
아카아시의 말에 히나타는 고개를 픽 떨꿨다.
"얘 진짜로 낙하산 아니에요?"
츠키시마가 히나타를 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런 모질이가 어떻게 중앙의 본부로 발령이 나지?
"차라리 낙하산이면 덜 쪽팔릴까..."
스스로 땅굴을 파고들어가는 히나타에 움찔한 츠키시마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음... 확실히 빵점은 심했지만, 심사에 참여했던 선배 말로는 S 랭크도 아깝지 않을거라고 그러던데."
아카아시는 그리 말하던 선배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얼굴에는 경외감이 깃들어 있었다.
무얼 봤기에.
아카아시는 작은 청년을-소년이라는 호칭이 훨씬 잘 어울리는-바라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금방 볼 수 있겠지.'
아카아시는 작은 기대감이 해소될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했다.



"쌈닭씨가 지하까진 어쩐 일로? 벌써 총알이 다 떨어졌다느니 총을 부숴먹었다느니 떠들면 다음 보급은 핫핑크로 도배해서 줄 거에요?"
쿠로오가 말했던 것 처럼, 개발부의 직원이라는 후타쿠치는 무진장 건들거리며 시비를 걸어왔다.
"오오, 사냥과 신입들은 너무 극단적인거 아닙니까? 멀대 안경이랑 땡그란 꼬맹이라니."
"츠키시마 케이입니다."
"꼬맹이 아닌데요!"
두사람의 반응에 후타쿠치는 시비 털기에 시동을 걸려 했으나 중재하고 무기나 보여달라는 아카아시에 무산되고 말았다.
"저 쬐그만 손으로 방아쇠를 당길 수는 있는거야?"
서랍을 뒤적거리며 후타쿠치가 말했다.
"얘는 필요 없어. 사격 빵점이거든."
"이익! 쿠로오상, 소문내지 마세요!"
"얘가 그 전설의 빵점이야?"
"이미 소문 났어!?"
분주하게 보급 서랍을 뒤지던 후타쿠치가 뒤를 확 돌아보았다.
"우와, 나 음양사는 처음이야. 나 점 좀 봐줄래?"
"음양사는 점쟁이가 아닙..."
"복채는 주셔야 하는 거 아시죠?"
히나타의 손을 꼬옥 잡고 말하는 후타쿠치를 저지하려던 아카아시는 히나타의 대답에 얼이 빠졌다.
"저 타로도 볼 수 있어요!"
"치비, 음양사가 무슨 타로야!"
"쿠로오상, 요즘같은 글로벌 시대에 전통만 고수하면 안팔려요."
"팔긴 뭘 팔아?"
"아무튼! 복채 안주시면 부정타니까... 다른 부서지만 선배니까 할인은 조금..."
왜인지 장사를 시작한 히나타에 쿠로오도 츠키시마도, 아카아시도 넋이 나가 신나게 떠드는 두사람을 바라보았다.
"후타쿠치군? 네 연애운 같은 건 나중에 개인적인 시간에 알아보고, 우리 신입 총 좀 줄래?"
쿠로오가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내뱉었다.
'텐션 이상한 후배가 들어왔네.'
"좋아! 꼬맹이는 나중에 나 찾아와! 그리고 안경은..."
"군도 안붙여주는 거냐."
쿠로오가 뻔뻔한 후타쿠치의 뒤통수에 말했다.
"흐음... 분석표를 보니, 총알을 많이 소비하는 타입은 아니고... 확실한 한방을 노리는 효율 중시 타입... 그럼 위력이 좀 세지만 장전이 번거로운 녀석으로 줄게."
"위력도 세고 장전도 쉬운 녀석은 없습니까."
"우리가 만드는 건 다 훌륭하거든? 번거롭다는 건 상대적인 거야. 말이 그래도 웬만한 물건보다는 성능이 뛰어나다고."
"...네."
츠키시마는 후타쿠치가 대충 던져주는 것들을 받아들었다.
"꼬맹이는 뭐 필요 없어?"
"아, 저는 직접 제작한거 아니면 사용 안해요."
후타쿠치의 말에 히나타가 겉옷 안쪽에 넣어둔 칼을 꺼내며 말했다.
"우왓, 칼? 이거 은이야?"
"아뇨. 그냥 쇠에요."
후타쿠치는 어딘가 흥분된 얼굴로 칼에 손을 뻗었다.
"쯧, 저 무기 덕후 자식.
쿠로오는 상기된 후타쿠치의 얼굴을 보며 혀를 찼다.
"아! 손대지 마세요!"
-키이이이이익!
히나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칼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으아악! 뭐 뭐야?"
"이거 나름 저주 받은 녀석이라..."
히나타는 질겁하며 손을 뗀 후타쿠치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생긴거랑 다르게 꽤 과격한 걸 쓰네."
후타쿠치의 말에 히나타는 멋쩍게 웃었다.
"그나저나, 칼이 의미가 있어? 흡혈귀들은 성인 남성 10배의 힘을 낸다고? 그래서 우리가 총을 쓰는거기도 하고."
쿠로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저는 괜찮은데요? 이게 더 확실하기도 하고."
"확실하다? 뭐가?"
"총알로는, 심장을 정확히 꿰뚫지 않으면 살아날 가능성이 생기잖아요."
쿠로오의 말에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히나타에, 츠키시마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꼬맹이 은근 상남자네."
쿠로오는 순간 히나타의 눈에 서렸던 이채에 꿀꺽 침을 삼켰다.
점점 이 작은 신입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그렇게 본부 여기저기를 돌아보다 보니 어느새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석양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히나타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은 지기 직전까지 아름답네.
히나타와 같은 주황빛의 노을이 비치자 히나타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모습을 본 아카아시는, 그가 마치 석양 속에 녹아들어 사라질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신입들? 첫날부터 미안하지만, 출동이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쿠로오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쉬며 일어나 주섬주섬 장비를 챙겼다.
"히나타, 츠키시마. 일단 실전은 처음이니까, 나나 쿠로오상 뒤에 붙어있어."
첫날부터 흡혈귀와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던 히나타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츠키시마도 살짝 굳은 표정으로 아까전 받아온 총을 점검했다.
"아직 채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그림자 아래에선 움직일 수 있으니까."
츠키시마가 그리 중얼거리자 쿠로오가 말했다.
"조심하고, 죽지 말라고?"

어느새 석양도 지고 보랏빛을 띈 남색의 하늘이 되어 있었다.
차에서 내린 네사람은, 조심스럽게 신고가 들어온 장소로 접근했다.
신고에 따르면 목격된 흡혈귀는 둘로, 하나가 신생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어둑한 골목 안쪽의 폐건물로 들어서자, 싸늘한 공기에서 쾌쾌한 먼지 냄새가 났다.
조용한 건물 안에서, 희미하게 무언가를 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로오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어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다다른 곳에는, 여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피를 빨고 있는 신생 흡혈귀가 한마리 있었다.
파란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생각하자 마자, 총성과 함께 흡혈귀가 나가 떨어졌다.
"자~ 한마리. 나머지는 어디로 갔나~"
"쿠로로상, 이럴꺼면 조심스럽게 들어올 필요 있었나요?"
츠키시마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신생 한마리에 무슨... 그냥 니네 긴장 좀 해보라고 그런거야."
뻔뻔스런 쿠로오의 표정에 츠키시마는 인상을 구겼다.
"꼬맹이 쫄았어? 왜 이렇게 조용해?"
쿠로오가 이상스레 잠잠한 히나타에 웃으며 말했다.
"...두마리, 라고 그랬죠?"
히나타는 어딜 보고 있는지 초점이 이상한 곳에 맞춰져 있었다.
"뭐...?"
아카아시는 문득 불안감이 스쳤다.
"두마리, 세마리, 네마리... 아니, 적어도 열마리는 있어요."
어두운 공간에서 히나타의 주황색 눈동자가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
쿠로오는 슬쩍 고개를 들어보았다.
구석구석 어둠이 내려앉은 곳에, 붉게 빛나는 눈동자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어도 10쌍은 되어보였다.
"이게 무슨...!? 젠장, 이쪽으로 붙어!"
쿠로오와 아카아시는 츠키시마와 히나타를 감싸듯 서서 총을 들었다.
"저도 총 있는데요."
츠키시마는 동요 없이 자세를 취했다.
"이렇게 서계시면, 저는 아무것도 못하는데요?"
히나타는 칼을 꺼내들고 아카아시 옆으로 나왔다.
"우리 신입들, 끝내주는구만."
전혀 겁먹지 않는 두사람에 쿠로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쿠로오의 총성을 시작으로, 흡혈귀들이 날뛰며 달려들었다.
10마리의 흡혈귀, 넷이서 헤치우기에 결코 적지 않은 숫자였다.
정신없이 피하며 총을 쏘던 아카아시는. 츠키시마와 히나타를 살폈다.
츠키시마는 나름 잘 버티고 있었고, 히나타는, 그저 칼을 겨누고 서 있었다.
"히나타, 뭐하는...!"
아카아시가 히나타에게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어딘가에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차르르르, 딸랑딸랑, 요란하게 점점 빠르고 커지는 소리에 흡혈귀들이 고개를 들었다.
허공에는 수많은 불덩이들이 방울 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떠다니고 있었다.
어두웠던 실내는, 단숨에 대낮처럼 밝아졌다.
"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악!"
놀랍게도 그 불빛에, 흡혈귀들은 태양 아래에서 처럼 타서 재가 되어버리지는 않았지만, 얼굴을 붙잡으며 괴로워했다.
꿈틀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흡혈귀들을 멍하니 처다보던 쿠로오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들에게 총을 갈겼다.
은탄에 흡혈귀들이 하나하나 죽어나갔다.
모든 흡혈귀들이 재가 되어 사라지자, 방울 소리와 함께 불덩이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이내 다시 어두워진 실내에는 놀라움과 정적만이 가득했다.



"괜히 A 랭크가 아니구만?"

쿠로오는 자신이 사준 햄버거를 와구와구 먹는 히나타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작은 뺨이 터질둣이 부푼게 마치 햄스터 같았다.

"하지만 오늘건 자주 못쓰는 종류에요. 밀폐된 공간이고, 다수인데다가 에너지가 넘쳐서 쓴거지, 항상 이렇게는 못해요."

히나타는 허겁지컵 콜라를 들이켰다.

"평소에는 그냥 체술로 붙어야 되요. 보시다시피 체력 소모가 심한 기술이라."

히나타의 말마따나, 곧바로 울리기 시작한 히나타의 배꼽시계에 쿠로오가 햄버거를 사다 바친 참이었다.

한 사흘 굶은 사람마냥 흐느적거리는 모습에 식겁해 가장 가까운 식당에 들어왔더니, 이제는 거의 마신다는 수준으로 햄버거를 해치우고 있었다.

"음양사가 그런것도 할 수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는데."
츠키시마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아아, 그건 딱히 내가 음양사라서 할 수 있는 건 아냐."
다 삼키지 않고 말하는 히나타에 츠키시마는 미간을 찌뿌렸다.
"음양사라서가 아니라니, 무슨 뜻이야?"
아카아시가 히나타에게 티슈를 건내며 물었다.
"저희 선조 중에 야타가라스가 있어서, 격세유전이랄까, 제가 물려 받았거든요."
히나타의 말에 콜라를 들이키던 쿠로오가 푸흡, 하고 검은 액체를 뿜어냈다.
"엣, 더러워."
흠칫 몸을 피한 히나타가 쿠로오에게 휴지를 건냈다.
"야, 야타가라스라면... 태양의 화신 아냐? 신의 사자라 불리는 까마귀 신수...?"
"예, 뭐. 일단은."
담담히 말하며 다섯개째의 햄버거를 집어드는 히나타를, 쿠로오는 경악스레 바라보았다.
"그거 그냥 가문의 설화, 뭐 그런거 아냐?"
"저, 날개도 있어요."
히나타는 손으로 파닥거리는 모양새를 흉내내며 말했다.
쿠로오는 히나타의 말에 그의 등짝을 살폈다.
"지금은 인간 모습이라 안보여요."
"으아아... 태생부터가 엘리트구만?"
"그래봐야 지금까지 나타났던 격세유전 중에 가장 약하다는 것 같지만요."
히나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드물지 않게 있잖아요? 사냥꾼들 중에서 혼혈들은. 네피림이라던가."
"우리 팀에도 한 분 계시지. 네피림."
"사와무라상이죠?"
아카아시의 말에 히나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야, 아는 사이?"
"시험 때 긴장해서 화장실 들락거렸더니, 힘내라고 비타민 주셨어요!"

"사와무라군의 사역마, 본 적 있어?"

"에? 네피림이 사역마?"

"뭐야, 몰랐어?"

네피림이 악마를 사역할 수도 있구나.

히나타는 신기해하며 우물우물 햄버거를 삼켰다.

"그래도 설마 신수의 혼혈이라니..."

"혼혈이라고 하기도 좀 그래요. 선조대 이후로는 쭉 인간 밖에 없었고... 이제와서 격세유전이 나타나서 집안이 뒤집어졌거든요."

아카아시의 말에 히나타가 손을 내저었다.

"음양사도 사역마 비슷한 걸 다루지 않아?"

아카아시는 떠오르지 않는 단어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식신이요? 저는 아직 없어요. 별로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아아, 퇴근 멀었는데 벌써 지친다아~"

쿠로오는 테이블에 미끄러지듯 엎어져 징징거렸다.

그렇게 출근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와무라상!"
"히나타, 출근 첫날부터 엄청났다며?"
"헤헷, 별거 아니였어요!"
히나타는 다이치에게 도도도 달려가 반가움을 표했다.
"전에는 다이치상이라고 부르더니, 왜 사와무라상이 되었지?"
"아, 그건... 다이치가 성인 줄 잘못 알아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히나타에, 다이치는 부드럽게 곱슬머리를 헤집었다.
"계속 다이치상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나는 아직도 사와무라군인데!?"
"너도 다이치'상'이라고 부르던가."
커다란 키로 다이치 어깨에 팔꿈치를 올린 쿠로오를, 다이치가 거칠게 쳐내며 말했다.
"칫, 아무튼! 그보다도, 분위기 훈훈한 와중에 미안한데, 외곽의 폐공장에 흡혈귀가 숨어있는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왔어.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이 밝은 대낮에 사냥을 가야해."
쿠로오는 몹시 유감이라는 듯이 말했다.
"아카아시랑 츠키시마는 따로 합류하기로 했고, 우리 셋이서 가면 될 것 같은데."
쿠로오는 유연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그 모습이 거대한 고양이 같다-라고 히나타는 생각했다.
"요즘 신고가 엄청 많네. 한동안 좀 줄었나싶더니."
다이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신생놈들도 갑자기 확 불어난 것 같아."
쿠로오는 불만을 쏟아내며 중얼중얼 연장을 챙겼다.
"앗, 드디어 다이치상의 사역마를 볼 수 있는건가?!"
"히나타, 내가 악마를 사역하는 걸 어떻게 알았어?"
"저번에 들었어요."
"그래? 기대를 져버리긴 싫은데, 사역마는 잘 안꺼내. 거기까지 가면 진짜 심각한 상황이지."
"에에에, 보고싶은데..."
"하하, 나중에 인사 시켜줄게."



"꼬맹이, 오늘도 그거 쓸 수 있어?"
"쿠로오상, 지금 저번에 그 도깨비불 말하는 거에요?"
"그거 이름이 도깨비불이야?"
"으음... 오늘은 만들어봐야, 3개?"
"엑, 저번꺼의 반의 반도 안되잖아?"
"저번에 유달리 컨디션이 좋았던 거에요."
"너 괜찮은거냐... 여전히 사격 최하점인데."
"전 칼로 괜찮다니까요?"
히나타는 쿠로오와 투닥거리며 폐공장의 내부로 진입했다.
"두사람, 좀 조용히 좀 해."
다이치가 쉿,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그때, 무언가가 강하게 히나타의 후드를 획 잡아챘다.
"흐억!"
히나타는 누군가의 손에 잡아채여 2층으로 점프해 있었다.
"히이이익!"
"어이! 꼬맹이!"
"히나타!"
히나타가 위를 올려다보니, 붉은 눈동자의 흡혈귀가 입맛을 다시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좀 작긴 하지만, 맛있는 냄새가 나."
혀를 할짝거리는 흡혈귀에, 히나타는 확 열이 받았다.
작다고 말한데다가, 이미 먹을거라고 확신하고 있어!?
히나타는 후드를 쥔 흡혈귀의 손목을 탁 잡았다.
"작다고 무시하면, 큰일난다?"
흡혈귀는 잡힌 손을 빼내려 했으나 히나타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인간이 어떻게...?!"
히나타는 흡혈귀의 멱살을 잡고 번쩍 들어 벽에다 집어 던졌다.
굉음과 함께 처박힌 흡혈귀에게 달려간 히나타는 칼을 꺼내 높이 쳐들었다.
"그깟 쇠쪼가리로 무얼 할 수 있다고...!"
분노에 차 소리를 지르며 히나타에게 달려든 흡혈귀의 손바닥에 칼이 깊숙히 박혔다.
"아? 으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칼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흡혈귀의 피를 빨아들였다.
칼이 붉게 빛을 낼 때만다 옅은 방울 소리같은게 울려 퍼졌다.
"이게 뭐야! 으억, 흐으어억! 싫, 싫어! 아파, 아파아!!!"
흡혈귀는 자신의 손을 붙들고 절규하다가, 이내 바짝 말라 부숴져 버렸다.

히나타는 칼이 내는 기쁨에 찬 방울소리에 살짝 미간을 찌뿌렸다.
"얜 너무 시끄러워!"
히나타는 혀를 쯧 찬 후 아랫층의 쿠로오와 다이치를 향해 붕붕 손을 흔들었다.
"쿠로오상~! 다이치상~! 올라오세요!"
쿠로오는 맨손으로 흡혈귀를 집어던진 히나타에 얼이 빠진 채였다.
"쟤... 쟤 뭐야...!?"
"히나타는 주술을 사용하는 음양사가 아냐. 영력을 몸에 둘러 신체를 강화하는 무투파지."
다이치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시험때는 맨손으로 흡혈귀 아가리를 뜯어버렸어. 그게 임팩트가 엄청나서, A 랭크를 받는 것에 아무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지."
다이치의 말에 쿠로오는 몸을 흠칫 떨며 윗층에서 신나게 손을 흔드는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너무 놀리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쿠로오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꼬맹이, 그 검은 도대체 뭐야?"
"이건 혈검이에요. 하루에 한번 피를 먹이는데, 효과는 좋은데 영 요란스러워서... 게다가 좀 모기같지 않아요?"
히나타의 투덜거림에 다이치는 풉 웃음을 터뜨렸다.
"바짝 말라 죽을 정도로 피를 빠는 모기라면 사양이야..."
쿠로오는 칼에 닿을까 슬쩍 거리를 벌리며 걸었다.
"보통 주술사들은 흡혈귀의 움직임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싸우지, 주박이라던가."
"그런거, 저는 감질나서 싫더라고요. 주술서들 다 한자에 고어고, 읽기 힘들어서."
다이치의 말에 히나타가 불만스레 말했다.
"츠키시마랑 아카아시도 뒷문으로 들어왔대, 넓으니까 빨리 빨리 살펴보고 돌아가자."
쿠로오가 휴대전화를 슥 보며 말했다.
"히나타가 끝낸 녀석, 신생은 아니였지?"
"네, 붉은 눈동자였으니..."
"요즘 무분별하게 신생을 만들고 있는 녀석이 누군지 밝혀내야 할 텐데... 아무래도 영 조짐이 이상해."
다이치가 어두운 표정으로 턱을 쓸었다.
"꼬맹이, 점으로 그런 건 못알아내?"
"쿠로오상! 그런게 가능하면 이미 돗자리 깔았죠!"
"히나타, 그런데 저번에는 칼이 아니라 긴 봉? 막대기 같은 거 아니였어?"
"아, 그거... 그거 영 힘 조절이 힘들어서, 좀 더 훈련한 후에 사용하려고요. 지금도 가지고는 있지만..."
다이치의 말에 히나타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격세유전으로 받은 힘을 아직 다 컨트롤을 못해서요. 그걸 쓰면 종종 폭주해서..."
"아, 그렇구나. 확실히 나도 내 천사쪽 힘을 컨트롤하기 어렵기는 했지."
다이치는 히나타의 말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점으로 이런 건 할 수 있어요!"
히나타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방울...? 너 방울 참 좋아하네."
히나타가 꺼낸 것은 구리로 된 막대 끝에 방울이 잔뜩 달린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것은 아무리 흔들려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저랑 상성이 좋은 것들 중에 방울 달린 녀석이 많은 뿐이에요. 자, 이걸 이렇게..."
히나타가 사방으로 막대를 휘젓자, 소리 없던 방울이,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자 약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차르륵 차르륵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소리였다.
"에... 이쪽?"
"...저거 수맥 찾는 거랑 비슷하단 느낌이네..."
그렇게 말하며, 쿠로오와 다이치는 히나타의 방울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울이 이끈 곳으로 가자, 커다란 철문이 있었다.
문 앞에 선 다이치는 크게 몸을 떨었다.
"...안좋은 예감이 드는데..."
"아카아시상이랑 츠키시마를 기다렸다가 들어가는게 좋을 것 같네요."
역시 굳은 표정으로 히나타가 말했다.
"뭐야, 이 쿠로오상은 평범한 인간이라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쿠로오가 스윽 문 위에 손을 얹자, 다이치가 화들짝 놀라며 그 손을 쳐냈다.
"뭐가 나올 줄 알고 손을 대?"
"연 것도 아니고 그냥 손만 얹은거야!"
"가만히 있어봐, 좀!"
"껏해봐야 흡혈귀 몇마리... 날 무시하는 거야? 내가 이래뵈도...!"
"그래, 네가 쩔어주는 사냥꾼인거 잘 아는데, 기다려 봐, 좀."
다이치는 손가락을 살짝 베어 피를 낸 후, 철문에 십자가와 함께 복잡한 문양을 그려나갔다.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는 다이치의 등에서 커다란, 새하얀 날개가 나타났다.
"읏!"
갑작스레 느껴지는 고통에 손은 떼자, 다이치의 손 끝에는 화상으로 물집이 잡혀 있었다.
문에 그려진 문양들도, 연기와 함께 서서히 타들어가고 있었다.
"전혀 안보이는데... 아카아시를 당장 불러. 꽤 상위 클래스의 녀석이 숨어 있을지도 몰라."
치이익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핏자국에 쿠로오는 재빨리 아카아시에 연락을 취했다.
"지금 오겠데."
그때, 문 너머로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사람은 순간 굳어 입을 딱 다물었다.
똑똑, 바로 문 너머에 누군가가 있었다.
히나타는 칼을 고쳐 잡았다.
방울이 미친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히나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세게 요동치며 저 혼자 흔들렸다.
히나타는 결국 방울이 달린 막대를 떨어뜨렸다.
다시금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내를 가득 메우던 방울 소리는,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방울들이 깨져버리며 뚝, 멈추었다.
-콰과광!!
방울소리가 멈춤과 동시에, 두꺼운 철문이 반으로 접히며 떨어져 나와 벽으로 던져졌다.
놀랄 시간도 없었던 세사람은, 동시에 문이 날아온 안쪽을 바라보았다.
황금색 눈동자의, 흡혈귀.
적어도 몇세기를 살아온, 엘더 클래스.
그리고, 수백의 신생 흡혈귀들.
히나타는 말없이 칼을 도로 집어넣었다.
이걸로는 택도 없어.
히나타는 한 손에 들어오는, 부적으로 꽁꽁 싸맨 막대를 꺼내들었다.
"다이치상, 제가 폭주하면, 그냥 총으로 쏴버리세요. 기절하기 전에는 스스로 통제 못하니까."
히나타가 막대를 휘두르자, 탁한 금빛의 봉이 휙 늘어났다.
"제가 돌진할테니, 엄호해주세요."
쿠로오나 다이치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히나타가 내부로 뛰어들었다.
"히나타? 젠장! 쿠로오, 총 들어. 엄호해!"
다이치는 은 십자가가 박힌 총을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쿠로오도 그 뒤를 따랐다.
히나타가 봉을 휘두를 때마다 불꽃이 일었다.
엘더 클래스의 흡혈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쿠로오와 다이치는 히나타의 뒤에서 달려드는 흡혈귀를 처치하며 한마리 한마리, 그 수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다이치의 총알은, 성수의 결정이 박혀 있어 총알이 심장에 닿지 못해도 그것에 맞은 흡혈귀는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굴렀다.
기도문을 외우며 총을 쏠 때마다 흡혈귀들의 머리통이 하나씩 날아갔다.
히나타가 휘두르는 봉에 우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날듯이 뛰어 빠르게 공격하는 모습은 인간의 것이라 보기가 어려웠다.
봉에서 이는 불꽃은 점점 크게 자라났다.
어느새 불꽃은 히나타의 몸에도 옮겨 붙어, 밝게 타올랐다.
점점, 점점 히나타의 몸을 불꽃이 감싸며 타올랐다.
두근두근, 히나타는 박동이 점차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뜨거워, 뜨거워
불이 붙은 피부는 뜨겁지 않았다.
그러나 명치 안쪽은, 뜨겁게, 마치 불이 타고있는 것 처럼 뜨거웠다.
이제는 더이상 달려드는 흡혈귀들을 보며 봉을 휘두르고 있지도 않았다.
히나타는 스스로가 본능으로 움직이는 짐승이 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요즘 폭주가 점점 빨라지는데...'
히나타는 우득 이를 갈며 정신이 날아가려 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스가!"
그때, 다이치의 외침과 함께 바닥에 생겨난 진에서, 회색 머리칼의 남자가 뿅 튀어나왔다.
"스가와라 코우시 등장! 엣, 나 다시 들어갈래!"
다이치의 사역마로 보이는 그는, 주변을 슥 살피더니 불평하듯 말했다.
"스가, 좀 부탁해!"
다이치의 외침에 불만스레 작은 날개를 편 스가와라는, 입술을 내민 채 날아다니며 흡혈귀들을 공격했다.
"어라, 못보던 애가 있네?"
불쑥 눈 앞에 나타난 스가와라에 히나타는 폭주하던 기운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히, 히나타 쇼요라고 합니다!"
"아! 귀여운 애가 신입으로 들어왔네? 난 스가와라 코우시야. 보시다시피 다이치의 사역마지."
"스가! 자기 소개는 나중에 해!"
다이치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스가와라는 툴툴거리며 다시 흡혈귀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그림자들이 움직이며 흡혈귀들의 발목을 감아 속박했다.
공격에 여유가 생기자 히나타는 숨을 돌리며 여유롭게 움직였다.
그의 몸을 감쌌던 불꽃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쿠로오상!"
헐떡거리며 도착한 아카아시와 츠키시마도 곧바로 공격을 지원했다.
아카아시는 저번과는 다르게 신부복을 입고 있었다.
"으으, 끝도 없네... 도대체 몇마리야?!"
분명히 수도 없이 쓰러뜨렸는데도, 흡혈귀의 숫자는 전혀 줄지 않았다.
쿠로오는 짜증스레 외치며 마구 총을 갈겼다.
"야호~! 완전 엉망진창이네? 우리 애기들, 왜 이렇게 힘을 못써?"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에는, 아까전 잠깐 보였다 사라진 금안의 흡혈귀가 서 있었다.
수려한 얼굴에 큰 키, 흡혈귀만 아니라면 마치 왕자님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엘더....!"
모두가 굳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사냥꾼들도, 신생 흡혈귀들도.
"이야... 네피림이 사역마? 게다가 흡혈귀랑 몸으로 치고박는 애도 있고... 사냥꾼들, 정말 괴짜 집합소네."
금안이 번뜩이자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훅, 하고 순식간에 히나타의 앞으로 온 흡혈귀는, 히나타의 주황색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예쁜 색이네. 내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태양의 색이야."
살짝 고개를 내려 히나타의 목에 코를 가져다 댄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어 그의 체향을 맡았다.
"맛있을 것 같아."
그 모습에 다이치는 손을 뻗으려 했지만, 몸이 뻣뻣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스가!"
"미안, 다이치. 저건 엘더 중에도 말도 안되는 괴물이야. 난 네 힘으로 움직이는데, 저거랑 맞서면 넌 죽어."
스가가 유감이라는 듯 말했다.
금안의 흡혈귀는, 히나타의 목에서 동맥이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박동하는 것을 보며 낮게 웃었다.
"긴장하는 거야?"
웃으며 그리말한 흡혈귀는, 히나타의 얼굴을 보고 움찔 놀랐다.
주황색의 투명한 눈동자가, 짙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무슨...?"
쿵, 쿵, 쿵, 쿵
인간들 보다 배로 뛰어난 그의 귀에 커다란 박동의 소음이 들렸다.
긴장이나 공포로 인한 삼장 박동이라기엔, 어딘가 이상했다.
그는 검은 눈동자를 커다란 손으로 탁 가린채,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었다.
저도 모르게, 홀린 듯이.
여린 살결이 찢기며, 피가 입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는, 긴긴 세기동안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황홀한 기분에 휩쌓였다.
설명 불가능한 쾌감이 뇌를 마비시키는 듯한, 맛도, 향기도 의미를 잃는 쾌감에 그는 벌벌 떨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들어와 속이 울렁거렸다.
그때, 강한 힘과 함께 그는 벽쪽으로 퍽 밀려났다.
주황색 눈동자도, 머리카락도 모두 짙은 검은 색으로 물든 히나타가, 삐딱한 자세로 서 흡혈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던 기다란 봉은, 빛나는 창이 되어 들려있었다.
"인간이, 아냐...?"
윤기가 흐르는 검은 날개가, 작은 등에 어울리지 않는 크고 아름다운 날개가 활짝 펴져 있었다.
마치 까마귀와 같은.
창백한 피부와는 다른 칠흑 같은 날개가 아름다웠다.
엘더의 흡혈귀가 손짓하자 신생 흡혈귀들이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었다.
날개에, 그 작은 몸에 달려든 흡혈귀들에 히나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사냥꾼들도, 엘더의 흡혈귀도, 갑자기 눈이 부셔 윗쪽을 바라보았다.
쿠로오는, 일전에 히나타가 만들어낸 불덩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의 것들에 떠억 입을 벌렸다.
그것들은 빙빙 돌며 하나가 되고 있었다.
커다란 광구, 불타는 공, 그것은 마치 태양을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히나타의 목에서 부터 검은 글자같은 것들이 뱀처럼 기어올라왔다.

불덩이는 이 세상을 다 태울 것 처럼 계속해서 커졌고, 창을 휘두르는 히나타의 두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히나타가 폭주하면 총으로 쏴버리라고 했는데, 저거 위험한 거 아냐?"

다이치가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다이치, 지금 저 몸으로 버틸 수 있는 힘 이상을 쏟아내고 있어. 저러다간 산산조각이 나버릴거야."

스가와라의 말에 다이치는 움직이지 않는 몸에 힘을 주었다.

주륵, 히나타의 턱을 타고 붉은 선혈이 흘렀다.

"벌써 몸 안쪽이 무너지고 있어. 다이치, 서둘러."

다이치는 몸부림을 치며 방아쇠를 당기려 온 힘을 기울였다.

광구가 내뿜는 빛에, 이미 신생의 흡혈귀들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엘더의 남자는, 그저 멍하니 빛나는 불덩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거의, 거의 다..."

부들부들 떨리며 다이치의 팔이 느리게 움직였다.

"움직임이 자유로워지면 바로 도망가. 휩쓸릴거야."

스가와라는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다이치는 방아쇠를 당기는데 성공했다.

굉음과 함께 신성한 총알이 반들거리는 검은 날개를 관통했다.

그러자 총알이 만든 구멍에서부터 검은 색을 빨아 들이듯이 소용돌이가 일며 히나타의 주황빛을 되돌려 놓았다.

히나타는 비틀거리다가 풀썩 쓰러져 버렸다.

"움직일 수 있어!"

쿠로오가 그렇게 외친 순간,

"도망가!"

스가와라의 그림자가 쿠로오와 다이치, 아카아시, 츠키시마를 붙들고 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광구가 폭발하며 불길이 확 치솟았다.

"히나타?!"

불길은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며 공간을 채웠다.

훅 뜨거운 열기가 끼쳐왔다.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빛과 녹아버릴 듯한 열기에 견디기가 힘들었다.

"스가! 어떻게 못해?"

"저건 신불이야. 난 악마라구! 건들면 정화되서 소멸해버린다?"

불은 10분 정도 후에 갑자기 휙 사라졌다.

언제 불이 났었냐는 듯 멀끔한 내부에 쿠로오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다급히 뛰어들어가자, 히나타는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었다.

히나타만, 오직 히나타 하나 뿐이었다.

그 많은 흡혈귀들이, 한마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히나타, 히나타?"

아카아시가 히나타를 살짝 흔들자 히나타는 작게 신음하며 움찔거렸다.

"으으... 배, 배고파아..."

순간 우렁차게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아카아시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히나타는 이틀간 앓은 후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출근했다.

히나타의 말에 따르면, 흡혈귀에게 물린 순간 정신을 잃었으며 눈을 뜨니 아카아시가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이빨 자국도 없고... 내상은 입었지만 외상은 또 없고, 어떻게 되먹은거래?"

쿠로오의 말에 히나타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리며 튼튼한게 최고 장점이라고 너스래를 떨었다.

"그날 하루 종일 토하고 코피 나고... 또 폭주하면 진짜 무슨일이 일어날지..."

히나타는 소름끼친다는 듯 몸을 떨며 말했다.

"왜 폭주가 일어나는 거야?"

아카아시가 무기를 정비하며 물었다.

"몸이 자라는 것보다, 힘이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힘의 사용에 제한을 걸어놨는데, 이젠 그거로도 못막을 정도로 힘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거래요. 조금씩 개방하고는 있지만...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몸이 못버티고 부숴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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