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즈미는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새 소년은 이전보다 훨씬 지쳐보였다.

밝은 색 눈동자 깊숙히에 새겨진 짙은 어둠이, 마치 모든것을 삼켜버릴 블랙홀과 같았다.

가느다란 실에 메인 인형보다도 소년은 불안정해 보였다.

그 옆에 찰싹 붙은 카게야마의 눈빛도 불안해 보였다.

"코트 내로 팔려온 사람들은 우리가 조사해 볼테니, 바깥을 좀 살펴줘요. 일단 이나리자키의 약물건은 한시름 놨잖아요?"

지독하게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하는 얼굴에 겁이 났다.

작은 몸에 꽉꽉 구겨넣은 감정이 얼마나 끔찍하고 커다란 것일지 가늠도 되지않아 알 수 없는 공포가 일었다.

"아, 알았어. 그렇게 하지. 이나리자키는, 미야 호시나가 죽고 쌍둥이가 완전히 장악했어. 거동을 보니, 도미넌트 이글과는 등을 질 것 같아."

느릿하게 고개를 든 소년의 눈은 공허하고 공허해 숨이 막혔다.

"미야 호시나의 시신을, 화장해서 코트에 뿌린다죠?"

히나타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다시 돌아오는 걸까... 그렇게 지독하게 뿌리치고 나갔으면서..."

잠긴 목으로 중얼거리는 히나타의 얼굴은 창백했다.

너무 흐릿해서 공기 중으로 흩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도 좀 알아봐요. 도미넌트 이글이 쓴다는 약."

"아아, 그것에 대해서라면 이미 조사를 시작했지만, 아직은 별게 없으니 뭔가 나오면 알려주지."

이와이즈미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일어나자는 제스쳐를 취했다.

"다음은?"

"없어. 집에 가."

카게야마는 거뭇거뭇한 눈밑을 보며 인상을 찌뿌렸다.

요즘 히나타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이 든다.

아니, 아예 부쩍 잠이 늘었다.

그런데도 점점 피곤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카게야마는 굳게 닫힌 저 입이, 무엇도 말해주질 않아서 겁이 났다.

제발 뭐든 좋으니 말해줘.

속에 고여 썩어가는 것들은 히나타를 오염시킬 것이다.

그러니 제발, 뭐든 말을 해.

히나타의 뒤를 따르며, 카게야마는 울컥울컥 치미는 것들을 눌러삼켰다.

.................................................................................

"...저거, 괜찮은 겁니까?"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사라진 빈자리를 보며, 킨다이치가 조심스레 물었다.

"글쎄, 본인만 알겠지만... 누가봐도 엉망이지, 저건."

이와이즈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씁쓸하게 말했다.

"갑자기 길가다 쓰러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상태던데요."

"뭐, 천성이 나쁘질 못한 것들은 망가질 수 밖에 없지, 이 도시에선..."

그래.

오이카와도 마찬가지다.

닳고 닳아도 천성의 다정이 사라지질 않아서 괴로워한다.

스스로 뒤집어 쓴 괴물의 탈에 몸부림치는, 처절한 사람들.

"...마피아, 라는 것을 알아도... 학살에 가까운 살인을 해온 범죄자라는 것을 알아도, 저녀석을 보면 왠지, 왠지 좀 그럽니다."

킨다이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그런거지. 누가봐도 꼬맹이고, 작고 여린데, 살인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녀석이니까, 안타까운거지."

불운한 아이는 불운한 어른으로 자란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유년의 기억이란 것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녀석이니까.

이와이즈미는, 히나타의 이야기를 하며 우는듯 웃는듯 애매한 얼굴을 하던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비참하고 서글픈 녀석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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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차."

부드러운 울림에 고개를 드니, 무언가 불만에 찬 츠키시마의 시선이 부딪혀 왔다.

"응? 왜, 츠키시마? 나 뭔가 했어?"

살짝 웃으며 이야기 했지만, 어쩐지 감각이 둔해 입꼬라가 제대로 올라갔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왜, 아니, 요즘 엄청 자면서... 얼굴이 왜 그래요? 송장같은 얼굴 하고선."

커다란 손이 조심스레 얼굴을 감싸며 요리조리 돌려본다.

"왜 점점 야윕니까?"

찌뿌려진 미간으로 말하는 츠키시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어라? 야위었나? 보통 아니야?"

태평스레 말하는 히나타에 츠키시마는 작게 혀를 찼다.

"갑자기 너무 자는 것도 이상해요. 어디 몸이라도 안좋은거 아니에요?"

"그냥 파곤해서 그래. 몸은 엄청 건강한데? 이상 있으면 주치의가 곧바로 보스한테 달려갈 걸."

"...주치의가 몇명이나 붙어있는 사람이 안색이 이게 뭐야."

"걱정마. 진짜로, 그냥 지친거야."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년은, 말마따라 정말로 지쳐보여서 츠키사마는 심장이 내려앉을 것 같았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저기, 츠키시마..."

츠키시마는 망설이는 손길로 옷소매를 잡아오는 히나타에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저, 음... 미안, 바쁜거 아는데... 저, 나 잠들 때 까지만 옆에 좀 있어줄래?"

츠키시마는 요즘 히나타가 카개야마에게 어리광이 늘었다며 부럽다 말하던 스가와라의 말을 떠올렸다.

"그늘, 은 어디에..."

"카게야마는 일이 있어서... 요즘 카게야마가 자기 전에 있어주거든... 저, 내가 좀 불안해서."

불안하다.

드물게 감정을 토하는 히나타의 모습이, 츠키시마는 너무나 불안했다.

"...깨끗히 씻고 옷 갈아입어요. 침실에서 기다릴테니."

츠키시마는 작은 머리통을 두려움과 걱정을 담아 쓸어주었다.

스스로 불안하다 말하는 소년은, 얼마나 궁지에 몰린 것일까.

츠키시마는 몸이 떨리는 것을 참으며, 이부자리를 편하게 정리했다.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향초를 꺼내와 불을 붙이고, 커튼을 쳐 방 안을 어둑하게 만들었다.

젖은 머리에서 물방울을 떨구며 나온 소년을 타올로 감싸 보송보송하게 만들며, 츠키시마는 여린 맨살에 남은 죽음의 흔적들을 몰래 엿보았다.

저 중에는 자신을 구하려다 생긴 것도 섞여있을 터였다.

츠키시마는 잠옷의 단추를 하나하나 채워주고선 이불 속에 폭 파뭍히도록 히나타를 뉘였다.

"좋은 향기가 나..."

"향초가 선물로 들어와서요. 수면에 도움이 된답니다."

무뚝뚝한 말투에는 상냥함이 깃들어져 있어 히나타는 살풋 미소를 지었다.

"손, 잡아줄래?"

츠키시마는 정말로 겁이 났다.

얼마나 몰렸기에, 얼마나 절박하기에 스스로 매달려오는지, 너무도 무사웠다.

"아무도 날 못 데려가게, 꼭 잡아줘..."

당신의 꿈속엔 도대체 누가 나오기에, 무엇을 이토록 두려워할까.

"어디 안가니까, 없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아요."

츠키시마가 쥐어짜듯 말하자 히나타는 고개를 조금 돌려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일어나면 또 차가운 족쇄에 메여있을까 두려워."

아.

끊어내지 못한 과거의 사슬은, 여전히 히나타를 옥죄고 있었다.

"아무도 없어요. 당신을 괴롭게 할 사람."

"...침대에서 잘 수 있을때는, 항상 누군가 옆에 있었어. 난 아무것도 입지 못하고, 그래서 사슬이 더 차가웠어. 그 사람들은 뜨겁고 기분 나빠서, 난 오히려 추웠어."

잠긴 목소리에 츠키시마는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츠키시마. 나는 너무 추워..."

히나타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조그만 손을 꽉 잡은 채, 츠키시마는 얻어맞은 것 처럼 얼어붙었다.

"...이제 그 사람들은 없어요. 당신이랑, 당산 가족들 뿐이에요."

츠키시마는 더듬더듬, 떨면서 말했다.

"맞아. 유키가오카와 아이나의 아이는 이미 죽었어. 나는 히나타 쇼요야..."

히나타는 이제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내 가족들...."

츠키시마는 히나타의 손등을 이마에 부볐다.

너무 작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지만, 또 엄청나게 괴로워."

히나타는 눈울 감은 채 말했다.

"난 보스랑, 스가와라상이랑, 아사히상, 그리고 나츠를 가장 사랑해. 그리고 내가 그 사람들에게 가진 감정을, 카게야마는 나에게 가지고 있지."

그것 때문애 카게야마가 괴로워질까?

힘없이 묻는 질문에 츠키시마는 그저, 고개를 저으며 작고 부드러운 손에 입을 맞췄다.

크고 작은 흉터들이 남은 손이 애처로웠다.

"적어도 나는, 당신을 만난 건, 내 인생에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츠키시마의 말에 히나타는 바보같다며 웃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버지의 집이거나 투견장이라서 엄청나게 절규하다가 깨고는 했어. 그런 꿈, 조금 심하지."

"심하네요. 난 어렸을때, 시험 시간에 잠들어서 끝나기 오분전에 깨는 꿈을 꾸고는 했어요. 그러고선 일어나가지고, 꿈이러 다행이다, 하고 다시 자고."

"그런 지독한 꿈은 법으로 금지 시켜야해."

"그랬으면 좋겠네요."

츠키시마는 하얀 이마에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부드러운 온기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녀석은 보통 뭘 해줘요? 밤에."

"그녀석이라니, 카게야마?"

"네."

"토비오는 서투니까. 그냥 꼭 껴안고 있다가 자기가 먼저 잠들어."

"...그런 덩치랑 자다가는, 압사 당합니다."

츠키시마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맞아, 걔 무겁더라."

"저, 잠든 후에도 계속 있을테니, 어서 자요."

눈을 뜨자마자, 당신이 지옥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테니.

츠키시마는 동그란 이마에 살짝 키스했다.

조막만한 얼굴이 야위어 마음이 저렸다.

좋은 꿈을 꿔요.

제발.

.................................................................................

오이카와는 질척한 바닥에 쩌억쩌억 발자국 소리가 나 숨을 멈췄다.

습한 지하의 바닥은, 어두워서 그 색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끈적거리는 느낌과 악취로 미루어보아 피가 깔린 것 같았다.

어지러울 정도로 독한 약품의 냄새와 썩어들어가는 피와 살점의 악취가 오이카와를 휘청이게 만들었다.

쨍그랑, 하는 소리에 내려다보니, 더러워진 메스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침침한 빛의 손전등을 비추어 주변을 살피자, 간간히 누군가의 신체 일부였던 것들이 분명한 덩어리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울렁울렁 비위가 상하는 것을 억누르며, 오이카와는 앞으로 나아갔다.

"...여긴, 계속 사용하는 건가."

아직 뜯지않은 약품들과 일회용 주사기 따위가 박스에 쌓여있었다.

"도미넌트 이글... 도대체 무슨 짓을...!"

오이카와는 절망적으로 자신이 들어와있는 공간을 훓어보았다.

도미넌트 이글 쪽에선, 도축장, 이라고 불리는 곳.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장기로 분해되어 팔려나가는, 지옥같은 공간이었다.

오이카와는 분노 때문인지 악취 때문인지 뒤집어지는 속에 배를 움켜쥐었다.

짐승들도 이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짐승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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