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에요?"
히나타는 손가락 세마디 정도 크기의 유리관 안에서 찰랑거리는 분홍빛의 액체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도미넌트 이글이 사용하는 약으로 추정되는 녀석이야. 브레인 멜터라는 이름으로 불이는 모양인데, 이만큼이면 자기 이름도 기억 못할 만큼 바보가 된다나봐."
하나마키의 말에 히나타는 조심스레 관을 받아들었다.
"성분은?"
"글쎄, 일단 지금 분석하고 있어. 그런데, 유통 경로를 거슬러서 제조자를 찾아내려고 했거든? 근데 영 꼬리가 안 밟히네."
히나타는 분홍색의 투명한 액체를 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걸 쓰면, 완전히 망가져서 돌아오지 않는 건가요?"
"흠...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일명 리셋이랄까? 정신 신경계를 마구 휘저어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걸 싹 포맷시키고, 기능들이 서서히 회복되는 동안 세뇌를 시키는 거지."
하나마키의 말에 히나타는 불쾌한 액체를 살짝 살짝 흔들어 보았다.
"제조자에 대한 단서라도 무언가 없나요?"
"이와이즈미가 전하라고 한 건 이게 다야. 이것도 얻어내느라 완전 개고생 했다고."
히나타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서둘러야 한다.
독수리들이 다시 힘을 회복하기 전에, 남은 날개 하나 마저 꺾어버려야 하는데.
히나타는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위협이 되는 모든 것을, 최대한 배제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불안감이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집어 삼킬 것 같았다.
"피차 원하는 것은 같으니, 무언가 알아내면 바로 알려줘요."
히나타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하나마키에게 말했다.
"그래. 솔직히 도미넌트 이글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야, 기꺼이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누가 아니겠어요. 다 그렇게 생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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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보내온 지도와 사진들을 훓어보았다.
'도축'된 인간들의 조각이 널브러진 지독한 풍경이 찍힌 사진을, 이와이즈미는 얼굴을 찌뿌리며 바라보았다.
같이 보내온 짧은 쪽지에는, 사람들이 잡혀오면 자신이 숨어들어 보안을 뚫어놓을 테니 현장을 덮치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항상 제멋대로지..."
이와이즈미는 너절한 종이 쪼가리를 구기며 중얼거렸다.
혼자서 뭘 어쩌겠다고, 가장 위험한 일을 홀로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라니.

도미넌트 이글의 녀석들은 죄다 터무니 없눈 괴물들 뿐인데, 혼자 무얼 어쩌려고.
이와이즈미는 지겹도록 익숙한 제 소꿉친구의 행동에 짜증이 치밀었다.
"너만 뛰어들면 되는게 아니라고..."
이마를 싸맨 이와이즈미는 뿌득 이를 갈았다.
오이카와는 동료들의, 부하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자신의 안위는 최하위에 둔다.
게다가 자신이 짊어질 리스크에 대해선 항상 통보식으로 알려오고, 자세히도 말하지 않아 어떻게 손 쓸 틈도 없다.
항상 뻔뻔한 얼굴하고 있는 주제에, 뺀질거리는 면상으로.
실은 제일 너덜너덜한 자식이 빙글빙글 웃는 꼴은 옛날부터 참 보기가 싫었다.
강하다고, 남들 보다 더 뛰어나다고 일부러 더 짊어질 필요는 없는데, 그는 항상 그랬다.
빌어먹게 똑똑하기는 해서, 그 영악한 머리로 자신을 제외한 모두의 안전을 고려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뽑아낸다.
하지만 효율성이란 것은, 언제나 희생을 요구해서 거진 대부분은 오이카와가 그 리스크를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런 친구의 모습이 싫어 스스로도 더 강해지려 이를 악물고 노력했으나, 오이카와는 더욱 자신을 내던졌다.
그 사람을 열받게 하는 반질반질한 미소를 띄운 채.
매정하질 못해 미련하게 구는 친구의 모습에 항상 속이 썩었다.
그자식은, 사람 속 긁어놓는 그 웃음을 배우느라고 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머저리, 응가 같은 놈.
그러나 또한, 이와이즈미가 반한 것도 그의 등이요, 그의 정의라 이와이즈미는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쳐들었다.
맘대로 날뛰는 오이카와를 막을 수 없다면, 자신이 커버한다.
죽지 않도록, 그가 자신의 정의로 괴물들은 모조리 죽여버릴 수 있도록.
이와이즈미는 담배를 꺼내려던 손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리할 일이 많았다.
멍청한 소꿉친구 놈을 무사귀환 시키기 위해선, 이와이즈미는 온몸으로 뛰는 수 밖에 없다.
내가 아니면 누가 널 커버하겠어.
이와이즈미는 다시금 자신의 박복한 인복에 대해 탄식하며 자신의 소꿉친구의 험담을 중얼거리듯 늘어놓았다.
성가시기 짝이 없는 자식.
응가 같은 놈.
썩을 놈, 망할 오이카와...
나보다 먼저 죽으면 내가 또 죽여버릴 거야.
진짜로 짜증나는 녀석 같으니라고.
빌어먹을 영감이 될 때까지 절대 못죽어, 내가 허락 안해.
그 손으로 반드시 죽여.
우시와카를, 도미넌트 이글을 완전히 무너뜨려.

이와이즈미는 친구 잘못 사귄 자신의 탓이라 한탄하며,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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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시장이라면, 이런 걸 취급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도."
"야마구치, 그게 무슨 말이야?"
"거긴 안파는게 없으니까... 몰래 빼돌려진 물건은 죄다 거기로 모이고, 제조자가 한명이 아니라면, 누군가 빼돌렸을 수도 있잖아요? 유통 과정에서도 충분히 훔쳐낼 수 있고."
"흐음... 암시장...? 가볼 가치가 있을까... 야마구치, 일단은 카게야마 오면 차 준비해 놓아라고 좀 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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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여기에 애들 장난감은 팔지 않는단다."
짙은 수염의 남자가 후드를 눌러쓴 히나타에게 비웃듯이 말했다.
그 말에 작게 헛웃음을 내뱉은 히나타가 작게 턱짓을 하자, 성큼 걸어나온 카게야마가 남자의 미간에 총구를 들이댔다.
"어이,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지. 우리가 좀 바쁘거든."
두 손을 든 남자는 모자의 캡 아래로 보이는 카게야마의 형형한 눈빛에 흠칫 몸을 떨었다.
"뭐, 뭘 찾으러 왔는데?"
"약사, 를 찾으러 왔는데."
히나타의 말에 남자는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마약이라면 여기 말고, 마약굴에 따로 가보는게..."
"아니, 마약 말고. 정신나간 물건을 마구 만들어 낸다는 정신나간 약사가 있다던데, 좀 안내하지?"
남자는 히나타의 품에 들린 권총을 보더니 덜덜 떨며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도망가거나 그러진 마. 난 몰라도, 얘는 순식간에 당신을 죽여버릴 걸?"
카게야마를 가리키며 쿡쿡 웃자, 남자는 사색이 되어 횡설수설 거렸다.
"저기, 그게... 그놈이 있기는 한데, 그게 또 업무상... 비밀 유지가 원칙이라고 할까... 암시장의 룰이란게... 생산자를 직접 만나는 건..."
"그래? 그러면 그 비밀, 저승까지 안고 가던가."
남자는 순간 자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칼날에 소리를 지르며 털썩 주저 앉았다.
"우리 시간 낭비하지 말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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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손님? 직접 나를 찾아오는 손님은 드문데... 어쩐 일이야?"
남자가 이끈 곳에는, 짧은 단발 머리의 여자가 새하얀 가운을 입고 보안경을 낀 채로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신을 나카지마 마코토라 소개한 여자는 정신없이 떠들며 히나타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찾는 물건이 있어서, 당신이라면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왔는데."
히나타는 슬쩍, 분홍색 액체가 든 관을 꺼내들며 말했다.

나카지마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더니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거라면 확실히!"
여자는 빙글 돌아서 정신없이 서랍을 뒤적거렸다.
"당신이 만든 건가?"
"아? 아니, 아니. 반은 내가 만들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가 샀지. 지금은 없어진 죠젠지라는 녀석들이, 유키가오카의 자료라면서 사지 않겠냐고 그러더라고. 유키가오카는 이쪽 세계에선 꽤 잘나갔으니까."
"죠젠지가...?"
"응. 뭐, 여러가지 자료들이 섞여있었지만... 그거는 내가 자료에 있던 걸 토대로 개량한 거야. 유키가오카에서 만든 거는 자체 효력이 영 구리더라고."
"그럼 코트 내에 돌아다니는 모든 브레인 멜터의 출처도 당신?"
"놉! 난 그저 제조 방법이랄까, 레시피를 판 것 뿐이야. 이런 약, 재료비도 많이 들고, 영 매니악해서 수지타산이 안맞으니까."
여자는 중얼거리며 서랍안의 박스에서 구깃구깃 지저분한 종이 한장을 꺼내왔다.
"여기, 조제 방법."
히나타는 꼬질한 종이를 펼쳐 슥 훓어보았다.
"어디에다가 팔았지?"
"어느 홍등가의 커~다란 유곽에서 사갔어. 아무래도 비싸니까, 만드는 거. 앵간한 놈들은 만들 줄 알아도 별로 쓸일도 없을 걸."
"이름이나 생김새라도, 뭐 기억나는 건...?"
"흐음...? 이름은, 이런 곳에선 밝히지 않지. 뭐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마구 알려주지만! 아무튼, 별로 이렇다 할 감상은 없는데... 엄청 예쁜 사람이었다는 것 말고는?"
"특징이라던가, 뭐라도 좋으니."
"음... 손이 엄-청 예쁘고, 손목에 꽃이 그려져 있었다. 무슨 꽃이더라... 달맞이? 아마도 달맞이꽃이 맞을 걸?"
'도미넌트 이글 수하에 있는 유곽을 다 둘러보는 수 밖에 없나...'
히나타는 작게 혀를 차며 주머니 안쪽의 유리관을 만지작 거렸다.
"아, 하나 생각났다. 그 여자가 하는 유곽에서, 그 여자가 유일한 홍일점이라고 그랬어. 막 혼자 한떨기 꽃이라고 옆에 쫓아온 놈이 쫑알거리던데."
'여성 포주 한명이서 운영하는, 남창들만 모인 유곽인가...? 확실히 범위는 좁혀졌군.'
"아! 맞아, 맞아. 그 약에 쓰이는 재료, 이 도시에선 구하기가 엄청 힘들거든? 그래서 구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어. 거길 가보면, 누가 사갔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당신, 고맙지만... 왜 이렇게 순순히 협력하는 거야? 굳이 묻지 않은 것 까지. 이 도시에서 입이 가벼운 건, 좀 큰일인데."
히나타가 물끄럼히 시선을 보내자 벙찐 표정을 짓던 나카지마는 이내 킥킥 웃으며 의자에 점프하듯 앉았다.
"내가 말했잖아? 죠젠지에게서 유키가오카의 자료를 샀다고. 실험 보고서 같은 자료도 있던데? 실험체 번호 Y6-22? 익숙한 얼굴이라 놀랐지. 살아있다니, 그런 실험을 견디고 말야! 그야말로 산증인!"
짝짝 박수를 치는 나카지마의 모습에 히나타는 책상에 올려져 있던 주사기를 던졌다.
그녀의 머리칼을 스치고 산산히 부숴진 파편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마. 명을 재촉할 뿐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엄청나다구? 어째서 살아있는 거야? 진짜 인간이 맞는지, 연구해보고 싶어."
"히나타, 죽여버릴까? 시끄러운 건, 질색인데."
낮게 말하는 카게야마에 히나타는 고개를 저었다.
"내버려둬. 상종할 시간도 없어. 일단 재료 공급처를 조사하던가 해야지."
히나타는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걷어차고는 카게야마에게 빨리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뒤돌아 나가던 히나타는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나카지마에게 다가와 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
"그래, 그럴걸? 하지만 추천하지는 않아. 진짜 위험한 짓거리니까. 응응, 아주 조금씩, 아마도 한 5씩?"

히나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허리를 세웠다.

나카지마의 웃음기 섞인 얼굴애 불쾌함이 일었다.

죽으면 해부하게 해줘, 라고 히나타의 뒤통수에 외치며, 나카지마는 찢어지게 웃었다.
히나타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카게야마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매캐한 담배 연기로 가득한 지저분한 골목의 공기에 눈이 따가웠다.
큰 단서를 얻은 것 치고는, 영 개운치가 않았다.

파고들고 또 파고들어도 끝이 없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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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부, 일전에 이야기한 것은?"

"무사히 들어갔습니다. 조금씩 때를 노리고 있답니다."

"그래. 더이상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네. 모쪼록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하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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