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조들이 일구신 신성한 황가의 땅을 감히 더럽히려는 자가 누구냐."
아카아시는 순간 거대한 태양이 드리우는 것을 느꼈다.
지저분한 진창의 밑바닥까지 도달한 그 고결한 빛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카라스노의 황자로서 명한다. 더러운 죄로 폐하의 나라를 욕보이는 자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죄인들은 모두 잡아들였습니다. 지금은 잡혀온 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사옵니다."
"그래. 잘 처리하여 억울한 일을 당하는 자가 없게 하거라."
히나타는 얼굴에 튄 피를 닦아주는 시종 아이의 손길을 받으며 말했다.
"죄인은 어찌할까요. 모두 이송할까요?"
"감히 폐하의 백성들을 사고 팔려한 자들이다. 우두머리들은 목을 베어 저자에 걸어 자식을을 잃은 부모들을 위로하고, 나머지는 변방의 종으로 만들어라."
"예, 황자님."
시종의 손길을 물린 히나타는 병사들의 도움으로 구속에서 풀려난 이들을 살펴보려 걸음을 옮겼다.
"쯧, 이리 작은 아이까지도... 괜찮으냐? 많이 다쳤구나."
히나타는 몸을 숙여 엉망이 된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화, 황자님...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천하의 모두가 폐하의 자식과 다름없다. 나는 폐하의 자식들을 구한 것 뿐이다."
히나타의 말에 모두가 울며 절을 올렸다.
카라스노의 제 3황자, 히나타 쇼요는 성인식을 치루기 전부터 직접 전국을 돌며 억울한 백성들을 구제하고 악한 무리들을 소탕하는 등의 의로운 행실로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았다.
이번에도 나라 안에 백성들을 사고 파는 도적이 백성들을 유린한다는 소식에 직접 나선 히나타가, 그들을 소탕하고 백성들을 구해낸 것이었다.
"황자님, 대부분 고향과 이름을 알아냈사온데..."
"무슨 일이냐?"
히나타는 말을 흐리는 병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벙어리가 하나 섞여있사온데, 말을 못하니 고향을 알아낼 길이 없어, 어떻게 돌려보낼지..."
"벙어리? 어디 한번 보자꾸나. 그게 누구냐?"
"황자 저하의 앞으로 데려오겠습니다."
"아니다. 분명 몸이 좋지 않을 것인데, 어찌 그러겠느냐. 그저 손으로 가리켜 보아라."
히나타의 말에 병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지저분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아래 수려한 얼굴과 총명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혹, 글을 쓸 수 있느냐?"
히나타가 상냥하게 묻자 사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붓과 종이를 가져오너라."
히나타는 사내에게 자신의 물을 건내 마시게 해주었다.
"황자님, 어찌하여 저런 미천한 것에게 황자님의 물을..."
"그리 말하지 말거라. 내가 천은을 입어 황가에 태어나 귀히 여겨지고 있다고 하여, 다른 목숨을 가벼히 여겨선 안되는 법니다."
히나타는 시종이 가져온 종이와 붓을 사내에게 건내주었다.
"네 이름과 고향이 어딘지 적어보거라. 내 반드시 돌려 보내줄 터이니."
잠시 히나타를 쳐다보던 사내는 이내 붓을 받아들고 조심스레 글자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사내가 적은 글에는, 이곳에 도적들에게 잡혀오기 이전의 기억이 없으며, 따라서 이름도 고향도 모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큰일이구나. 얼마나 심한 일을 당했으면 제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가..."
안타까운 빛으로 생각에 잠긴 히나타는 이내 사내에게 손을 뻗었다.
"글자를 적는 솜씨를 보니 보통 인물은 아니다. 괜찮다면 나와 함께 가겠느냐?"
사내는 놀란 듯 건내온 작은 손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손을 잡았다.
"그래. 하지만 부를 이름이 있어야겠지... 아! 능소화가 아주 곱게 폈구나. 앞으로 널 능소라 부르마."
능소화, 하늘을 업신여기며 피는 꽃.
고고하고 고결한, 아름다운 꽃.
하늘을 향해 치켜들며 피는 꽃은, 누구 보다도 태양의, 그 찬란한 광구의 빛을 잘 알고 있다.


"형님! 저 왔습니다!"
"막내가 이제서야 돌아왔구나!"
다이치는 집무실로 뛰어들어온 히나타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를 반겼다.
"형님, 어찌 야위신 것 아닙니까? 역시 업무가 너무 고된 것이지요?"
"하하, 스가와라는 내게 살이 쪘다며 구박을 했는데, 히나타 네가 가서 말 좀 해주거라."
"살이 찌시다뇨! 더 많이 드시고 기운을 받으셔야죠."
"3황자께 의자를 내어드려라."
다이치의 말에 태감 하나가 빠르게 화려한 수로 장식된 의자를 가져왔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 그래서... 도적들을 모두 잡아들였다고?"
"예. 우두머리들은 목을 베어 부모들을 위로하고, 잔당들은 종으로 만들어 변방의 추운 곳으로 보냈습니다."
"음, 잘했구나. 네가 아주 고생이야. 원래 법도대로라면 성인식도 치루지 않은 너를 이토록 부리면 안되는 것인데..."
"폐하께서 편찮으시니, 형님께서 그 일을 다 맡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이런 자잘한 것들은 도와야죠."
"하지만 몸을 좀 아끼거라. 사랑하는 막내 동생이 벌써부터 전장을 누비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건강을 빼면 그다지 남는 것도 없습니다."
"내가 복이 많아 하늘이 이런 훌륭한 아우를 주셨구나."
다이치는 싱긋 웃으며 히나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이번에 사내를 하나 주워왔다고 하더구나."
"벌써 형님께 전해졌습니까?"
"궁인들이 카게야마와 츠키시마의 반응을 두고 내기를 하길래 타일러 주었지. 그래서, 어떤 사내를 주워왔느냐?"
"지금 씻긴 후, 태의에게 보이라고 명해 놓았습니다만, 글자에서 느껴지는 기품이 보통이 아닌 듯 하여, 이름도 고향도 모르기에 일단 데려왔습니다."
"그래? 궁금하구나. 다음에 한번 데리고 오너라."
"네."
"그럼 이만 네 궁으로 들어가 쉬려무나. 고된 여정이 아니었느냐?"
"그럼 전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형님."


"그래서, 태의가 보기에 능소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예. 영양이 부족해 다소 허약해지기는 했으나, 병이나 큰 이상은 없사옵고, 말을 못하는 것 또한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태의의 말에 히나타는 의문을 표했다.
"예. 아마도 큰 충격을 받아 기억과 함께 말을 잊은 것 같사옵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까?"
"예, 3황자님."
"흠..."
히나타는 능소에게 시선을 돌렸다.
멀끔하게 씻고 나온 그는 짙은 눈썹을 가진 수려한 미남이었다.
키도 히나타보다 머리 하나 이상 컸으며 몸도 탄탄해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글자를 쓰는 것도 그렇고, 외견도 그렇고 고귀함이 느껴지는데... 아아, 그래. 나라 안에 자식을 잃어버린 귀족들이 있는지 알아보거라."
비단옷을 입은 사내는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능소야, 내 종이와 붓을 너에게 줄터이니, 무언가 할 말이 있다면 그것으로 전하거라."
히나타의 필기구를 받아든 능소는 곧바로 종이에 감사의 인사를 적었다.
"기억이 돌아오면 반드시 고향으로 돌려보내줄 터이니, 일단은 나의 궁에서 편히  지내거라."
히나타는 일향궁에 딸린 작지만 깨끗한 방을 그에게 내주었다.
몇번이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절을 올리는 능소를, 히나타는 그저 웃으며 일으켜 세웠다.
"내가 좋아 데려왔으니, 너무 그러지 말아라."
능소는 홀린 듯 그 아름다운 미소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어두컴컴한 지옥에서 자신을 건져올린, 찬란한 태양을.
"어이, 히나타!"
"공자님! 제발 그렇게 쾅쾅 들이닥치치 마세요!"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궁녀들의 한탄이 들려오자 히나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밖으로 나갔다.
"카게야마, 안녕?"
"안녕은 무슨 안녕...! 너 또 무슨 쓸테없는 짓거리...!"
"아, 능소를 데려온거? 그거 도대체 어디서 소문이 난거야? 요란 떨며 들어온 것도 아닌데. 그리고, 나도 법도를 잘 지키는 편은 아니지만... 나름 황궁이고, 3황자의 궁에 소리지르면서 등장하는 거 그만둘래?"
히나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궐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기인부터야. 일개 민인을 네 궁에 들이는 이유가 뭐야? 넌 사람을 너무 믿는다고!"
"어후... 잔소리는. 내사람 내가 골라 들이는데 무슨 상관이야? 내 궁의 아이들은, 기인이 아닌 아이들도 있지만 다들 착하고 일도 잘해!"
"네가 사방팔방 퍼주니까, 만만하게 보는 녀석들이 생기잖아!"
"나한테 들키지만 않으면 만만하게 보든 말든."
"내가 싫어."
카게야마는 심통난 표정으로 히나타 뒤에 선 능소를 노려보았다.
"이름도 능소라! 참 건방진 이름을 붙여줬군."
"아, 또 왜!"
"하늘을 업신여긴다, 라는 이름을 지어주고선 황궁에 들이다니, 무슨 생각이야?"
"그냥 마침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펴있었어."
"좀 더 위엄을 보여. 우습게 보이지 말라고."
"네가 옆에서 인상쓰고 있는데 굳이 뭘 나까지."
카게야마는 쯧, 혀를 차며 히나타의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나보다 먼저 들어가냐?!"
"시끄러. 차나 한 잔 내와."
카게애마는 히나타 옆에 앉고서는 맞은편에 능소를 앉혔다.
험상궂은 인상으로 노려보는 통에 능소는 슬슬 시선을 피했다.
"미간에 주름 잡혀."
히나타가 검지 손가락으로 카게야마의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돈이나 좀 쥐어주고 보냈으면 되었을 것을 ,굳이 궁안에 들인 이유가 뭐야?"
"그 지저분한 모습으로도 기품이 흐르니까, 아, 뭔가 있는 사내구나- 해서 데려왔지."
"너, 츠키시마 녀석도 비슷한 이유로 데려왔으면서?"
"츠키시마는 완전 적중했잖아! 형님께 무진장 도움되고 있고."
"어디서 그런 성격 더러운 것 줏어와서는."
"너나 걔나..."
"뭐?"
"아, 아닙니다..."
카게야마는 깊은 한숨을 뱉으며 머리를 흩뜨렸다.
"너, 나흘후에 성인식인 건 알지?"
"아아, 복진을 들이라 아주 말이 많아. 다행히 형님들이 아무도 복진을 들이지 않으셔서 다행이지."
"성인식도 전에 무슨 복진이야?"
"그러니까! 장가가면 좀 덜 떠돌아다닐 거라고, 복진이고 측복진이고, 벌써 왕부를 세울 작정인가봐."
히나타가 투덜거리며 차를 들이켰다.
"...1황자께, 네 개인 호위로 붙여달라 청을 드렸어."
"뭐?! 대장군이 그걸 허락하셨어? 넌 심지어 적자잖아!"
"어차피 네도 나라를 지키러 돌아다니는 몸, 나도 옆에서 널 거들며 이 땅을 지키고 싶다고 말씀드렸어."
"흐아아..."
"네게 목숨을 빚졌으니, 제대로 지켜드리란 말까지 들었다."
"우왓, 대장군 대단하시네... 가문의 적자를, 황제도, 1황자도 아닌 3황자의 호위로 기꺼이 내주시다니... 형님은 뭐라셔?"
"네놈이 하도 몸을 굴려 걱정이니 부디 잘 부탁한다고 하시더라. 성인식을 마치면, 정식으로 일향궁으로 들어올 거야."
"뭐야, 아예 입궁?"
"아직 나도 혼인할 생각은 없으니까, 별로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으아... 진짜 괜찮아? 세력 가문의 적자를 역마살 낀 황자한테 주시다니... 너 대장군께 억지로 박박 우긴 거 아냐?"
"넌 나를 뭘로 보고...!"
"농담이야, 농담. 네 거처를 마련해 놓으라고 할게."
"그래서, 저자는 네 궁에서 무얼 할건데?"
"음? 능소?"
"그래."
"그냥 내 시종으로 있으라고 하지 뭐."
"...시종이 몇명이야? 그만 좀 데려와!"
"하지만, 다들 잘되서 나가잖아? 패아도 얼마전에 좋은 혼처를 얻어서 나갔고... 환아도..."
"네 궁이 무슨 구제 시설이야? 베푸는 것도 정도껏 해! 죄다 빌붙어오면 어쩌려고?"
"나쁜놈이 깔짝거리면 카게야마가 도와주겠지~"
카게야마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능소를 위아래로 훓어보았다.
"확실히 몸은 잡혀있군. 호리호리하지만... 손."
능소가 멀뚱히 쳐다보자 카게먀나는 혀를 차며 능소의 손을 가리켰다.
"손, 줘보라고."
능소가 손을 내말자 카게야마는 손목을 거칠게 잡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손가락의 굳은살, 활을 잡는 사람의 모양이군. 활을 사용할 수 있나?"
"능소는 기억이 없다구? 그보다도, 너무 괴롭히지마."
"너의 호위를 맡게 될 사람으로서, 네 주변을 경계할 필요가 있어."
"3황자를 누가 노린다고..."

히나타는 못마땅한 얼굴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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