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토시는 코우의 어떤 것이 좋아?"
말간 얼굴로 물어오자 사나운 눈매의 남자의 얼굴에 곤란한 빛이 스친다.
남자는 시선을 피하며 붕대 감긴 조그만 손을 만지작거린다.
대답 대신 손등에 떨어지는 다정한 입맞춤에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카게야마는 까끌하게 수염이 올라온 얼굴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히나타가 보았다면 분명 깔깔 웃으며 놀렸을 것이다.
높은 톤의 맑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아 카게야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살고 싶었다.
카게야마는 평생을, 그 살고싶다, 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죽기가 싫어서, 살고 싶어서.
그러나 히나타를 만난 후, 처음으로, 카게야마는 이 사람을 위해 죽겠다고 생각했다.
카게야마는 언제나 스스로를, 스스로가 구원해야 했다.
아무도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고, 기대 조차 한 적 없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내밀어온 그 손길에 카게야마는 도리어 죽음을 결심했다.
너를 위해 살게.
카게야마는, 처음으로 죽기 싫어서라는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살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것은, 또 죽는다는 것은 이상하게도 더욱 행복해서, 카게야마는 항상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게야마가 목숨을 바치겠다 한 소년은, 너무나 아픈 아이라, 카게야마는 마음이 찢어졌다.
사랑 받기를 어색해 하면서, 사랑을 주기만 하는 아이.
아프면 멋쩍은 미소를 띄우며, 괜찮다 말하는 아이.
그러다 가족이 다치면 저가 다쳤을 때보다 더 고통스러워 하며 울먹거리는, 히나타.
카게야마는 면도날에 베인 턱에서 한줄기 선혈이 흐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것은 거품에 섞여 분홍빛으로 변한다.
따끔따끔 여린 얼굴의 피부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뿌렸다.
히나타는 잠결에 자주 눈물을 흘렸다.
누군지 모를 이에게 저항하며 눈물을 떨구는 모습에 카게야마는 언제나 심장이 내려앉았다.
이마를 조심스레 쓸어주며 괜찮아, 괜찮아, 하고 말해주면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고른 숨을 내뱉던 히나타.
카게야마는 그 얼굴에 항상 밤잠을 설쳤다.
누구보다 강하나 누구보다 위태로운, 깨지기 직전의 주인은 카게야마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난 히나타를 사랑해.
문득, 정말로 문득 길을 걷다 뇌리에 스친 한 문장에 카게야마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래, 나는 너를 사랑하는구나.
삶이 다 하는 순간까지도 전하지 못할 말을 카게야마는 그날 홀로 몇번이고 되내었다.
사랑해, 사랑해
너를 위해 살고, 너를 위해 죽는 것으로, 그것으로 내 사랑은 괜찮은거야.
카게야마는 잠든 소년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며 생각했다.
그런 카게야마이기에, 자신의 옆에 히나타가 없는 상황은 초조하기 그지 없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짐승이, 제 주인을 데려가 제것으로 놀리고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뜯기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저를 향해 웃어주는 얼굴이 너무나 보고파 카게야마는 우는 듯한 얼굴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히나타의 고통을, 반의 반의 반이라도 같이 할 수 있다면, 덜어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카게야마는 피가 섞여 꺼림칙한 색으로 변한 거품을 씻어냈다.
거울 속의 사내는 흉폭한 짐승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삐를 쥐고 있던 주인의 부재가 짐승을 미치게 만들었다.
굶주린 듯한 눈동자에 잔잔하고 차가운 분노가 깔렸다.
히나타, 히나타
그저 주인의 이름을 부르며, 카게야마는 진득한 자신의 어둠에 몸을 맡겼다.
..........
보쿠토의 도움으로 편월각에 손님으로 위장해 들어간 츠키시마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자신을 보는 편월각의 여주인의 얼굴에 열기가 번지는 것을.
아, 저건 쓸만하겠다.
츠키시마는 거짓 웃음으로 무장한 채 다정하게 굴었다.
여자, 남자 따질 것 없이, 외로운 사람들은 쉽게 무너진다.
이 도시의 대부분은, 위험한 분위기에 경계가 심하지만, 또 그것이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그래서 조그만 틈을, 아주 조그만 틈을 파고들어가면, 결국 쉬이 무너진다.
무게 없는 가벼운 사랑의 말은 허공에 연기처럼 흩어진다.
뱀의 것과 다를 바 없는 혓바닥에서 만들어낸 가짜 연정은 그녀를 홀린다.
거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녀가 되어야 했던, 사람을 사고 팔아야만 했던 여자를, 특별하다 소중하다 말해주는 거짓에 조그만 틈은 걷잡을 수 없이 커다래진다.
속으로는, 독수리들은 다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사랑의 말을 조곤거리며.
품안의 여자에게서 풍기는 짙은 향수 냄새에 비릿한 미소를 띄우며, 츠키시마는 차가운 키스를 나눈다.
그 품안에 완전히 무너진 여자에게 츠키시마는 속삭인다.
나를 위해 한가지만 알려줄래?
한가지 비밀은, 두가지, 세가지가 되어 그녀의 목을 옥죈다.
걱정마, 내가 지켜줄테니.
네가 말해주면, 난 당신이랑 행복해질 수 있어.
우리 도망가서 평범한 행복을 누리자.
커지는 거짓말, 여자는 아마 죽을 것이다.
츠키시마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질 못한다.
오히려 우시지마에 잡혀있는 히나타의 생각에 그와 연결된 여자마저 가증스럽다.
달콤한 거짓말로 하나 둘, 츠키시마는 히나타를 구하기 위해 여자를 죽인다.
독수리들에 대해 말해줘.
그래, 그래.
당연히 사랑하지.
그렇게 말하며 츠키시마는 생각한다.
아, 히나타, 네가 보고싶어.
..........
"안녕? 네가 츠토무?"
스가와라의 하얀 얼굴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벽에 몰아붙여진 고시키는 오들오들 떨며 형형한 시선을 피했다.
하얀 병원의 벽에는 죽은 이들의 피로 가득했다.
붉은 손자국들을 등진 스가와라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살벌했다.
"왜 그런 표정이야? 너네는 할 수 있고 우리는 못할 줄 알았어?"
미형의 얼굴은 조소를 띄우며 고시키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그렇지? 우시와카가 우리 애를 건드렸으니까, 우리라고 못할 건 없잖아?"
찢어지는 듯한 웃음소리로 스가와라는 겁에 질린 소년을 비웃었다.
"아, 바들바들 떠는 꼴을 좀 보라지. 온실 속 도련님은, 차라리 죽지 못하는 고통이라는 걸 알까나?"
스가와라는 나이프의 끝으로 사악- 고시키의 볼을 그었다.
"어차피 모두 붉은 피가 흐르는 인간인데 말야... 독수리들은 너무 오만방자해."
미소를 싹 지우고 얼굴을 굳힌 스가와라의 얼굴에는 광기에 찬 분노가 어려있었다.
"그, 그래봤자...! 그래봤자 이제 히나타 쇼요는 없어...! 걔, 걔는 이제 당신들을 보면 죽이려 들걸?"
떨면서도 당돌한 눈빛으로 말하는 고시키에 픽 웃은 스가와라는 단단한 구두 굽으로 마른 가슴팍을 짓이기듯 밟았다.
"하하, 뚫린 입이라고 다 내뱉으면 말이 되는게 아냐."
스가와라는 억지로 고시키의 입을 열어 훅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코를 잡아 비트는 통에 숨이 막혀 입을 다물 수 없게 된 고시키는 무력하게 스가와라의 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혀를 잘못 놀리면, 명을 재촉한다는 걸, 아는게 좋아."
스가와라는 고시키의 혀를 잡아 빼 자그마난 나이프로 그 붉은 살덩이를 죽죽 그어버렸다.
넘치는 핏물에 고시키는 컥컥거리며 기침을 해댔다.
피가 목구멍에 차오르는 탓에 비명 소리는 괴상스런 꺽꺽거리는 소리로 내뱉어졌다.
"어라, 어린애가 무슨 인상을 그렇게 쓰니? 주름 생기겠다."
깔깔거리며 미간을 상처가 날 정도로 손톱으로 긁는 스가와라에 고시키는 울며 도리질을 했다.
"뭔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해 줄게."
스가와라는 간헐적으로 떨리는 몸을 보고 피식 웃으며 이미 넝마가 된 셔츠자락을 벗겨냈다.
"깨끗하기도 해라. 정말 사랑받고 자랐나봐."
스가와라는 메스를 꺼내 하얀 가슴팍에 한글자, 한글자 새겨나갔다.
Sunset Raven 이란 글자를.
"우와, 잘 어울리네."
우리도 마피아란 말이지?
키득키득 웃은 스가와라는 피가 줄줄흐르는 상처를 마른 손으로 거칠게 쓸었다.
비명도 못지르고 몸을 트는 꼴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스가, 이제 슬슬 데리고 가자."
뒤에서 나타난 아사히는 스가와라 못지 않은 꼴을 하고 있었다.
피에 푹 절어서 평소의 단정하게 묶어올린 머리를 산발한 채 서 있는 아사히는, 그 자체로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냈다.
"아아, 그래."
스가와라는 엉엉 울며 비명을 지르는 고시키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었다.
"아무래도 병원들은 대체로 경비가 허술하네. 우리쪽도 그랬고... 정비가 필요하겠어."
나른한 말투로 말하는 스가와라에 고시키의 비명은 닿지 않는 듯 했다.
그때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빨리 도련님을 놔줘!"
병원 복도 끝에서 도미넌트 이글의 조직원 몇명이 나타나자 아사히는 힘없이 늘어진 고시키의 몸뚱이를 들어 앞에 세웠다.
"쏴봐? 여기 좋은 방패가 있는데?"
"앗, 아사히. 밖에도 놈들이 깔렸는데?"
스가와라가 흘끔 창밖을 보며 말했다.
"그래? 곤란하네..."
건조한 얼굴로 중얼거린 아사히는 빠르게 총을 꺼내 복도에 비치된 소화기들을 쏴버렸다.
하얀 가루가 퍼져 복도가 뿌옇게 흐려지자 그 틈에 아사히와 스가와라는 복도에 드문드문 세워진 소화기들을 계속 터뜨리며 달렸다.
맞은 편에서 놈들이 달려오자, 아사히는 잠깐 멈칫하더니 고시키의 몸을 그쪽으로 획 던졌다.
사람의 몸뚱이가 날아오자 놀란 그들은 고시키를 받으려 허둥거렸다.
"뭐, 가져가던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 아사히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섬광탄의 핀을 뽑아 그쪽으로 데굴 굴려보냈다.
눈이 멀 정도의 섬광에 적들이 주춤한 틈에, 아사히와 스가와라는 유유히 병원을 빠져나갔다.
"아, 다이치? 응, 여기는 스가와라. 고시키 츠토무의 몸에 무사히 위치 추적기를 달았어. 응? 전속 병원이 이 꼴이 났는데 놈들이 뭘 어쩌겠어. 본가의 주치의가 치료를 맡게 될 테니까. 응, 알았어. 금방 돌아갈게."
스가와라는 다이치와의 통화를 짧게 끝내고 더러워진 몸으로 차에 올랐다.
"차가 더러워지겠네."
나즈막한 콧노래와 함께, 자동차는 유유히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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